올해 들어 나타난 전 세계 증시 동반 급락은 자본시장의 두 가지 신뢰의 축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하나는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한 신뢰이고 또 하나는 성장 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신뢰다. 사진 셔터스톡
올해 들어 나타난 전 세계 증시 동반 급락은 자본시장의 두 가지 신뢰의 축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하나는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한 신뢰이고 또 하나는 성장 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신뢰다. 사진 셔터스톡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현 한국은행 외환자산운용위원회 외부위원, 투자전략 부문 최다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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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적 관계가 그렇듯, 자본시장 역시 참여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합리적 자산 가치보다 비이성적 가격이 시장을 지배하기가 쉽다. 이런 상황에서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지면 자본시장은 순식간에 공포 국면으로 치닫는다.

올해 들어 나타난 전 세계 증시 동반 급락은 두 가지 신뢰의 축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하나는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한 신뢰다. 불신의 중심에는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있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갑작스럽게 인플레이션 평가에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렸다. 인플레이션에 관한 명백한 오판을 인정한 셈이다. 이런 연준의 행보에 연준만 믿고 따랐던 시장 참여자의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신뢰가 무너진 또 다른 축은 성장 기업이 성장한다는, 곧 ‘성장’ 자체에 관한 의구심이다. 이는 미국에서 일부 대표 빅테크가 ‘어닝 쇼크(earning shock·실적 충격)’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메타(옛 페이스북)와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전 분기 대비 가입자 순증이 250만 명에 불과했다. 580만 명 순증을 기대했던 시장 예상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메타 역시 설립 후 처음으로 매출액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자신감 없는 모습을 내비쳤다. 실적 발표 후 이들 기업의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성장에 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동성 환경은 악화하는데 미래 성장도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투자할 것인가. 


1│
연준을 둘러싼 정책 신뢰는 회복되는가

배신감은 잠시 내려두고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불신을 냉정히 판단해보자. 우리가 주식 투자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을 위한 전략적 대응을 위해서다. 우선 향후 연준의 정책에 관한 신뢰 회복 여부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오판을 인정하면서까지 내세운 긴축 행보의 속내를 들여다봐야 한다. 현재 시장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는 금리 인상 횟수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금리 인상과 일정 시점부터 양적 긴축(QT)을 동시에 진행하고자 하는 의도에 있다. 

연준은 도대체 왜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을 전례 없이 동시에 언급했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장단기 금리 차가 역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에 있다고 본다.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보다 높은 비정상적인 자금 시장 환경은 역사적으로 기억될 만한 큰 위기의 사전 신호로 작용해왔다. 1990년대 말 IT(정보기술) 버블 쇼크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가깝게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다. 장단기 금리 차 역전 현상이 이어지면 멀쩡하던 자산시장도 붕괴할 수 있다. 연준이 만약 기준금리 인상만 지속하면 단기 금리는 상승하고, 경기 침체 우려에 반응할 장기 금리는 하락하게 된다. 

현재 50베이시스포인트(bp·1bp=0.01%p) 내외에 불과한 미국의 장단기 금리 차는 쉽게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 연준은 장기 국채에 재투자하지 않는 의미(장기 국채 수요 감소→장기 금리 하락 압력 완화)의 양적 긴축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더 큰 위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다. 금리 인상 국면에도 자금 시장은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양적 긴축에 관한 과도한 해석도 자제해야 한다. 즉 양적 완화(QE)의 대칭적 의미로 사용해선 안 된다. 팬데믹 이후 2년간 풀린 약 4조달러(약 4800조원)의 양적 완화와 같은 규모의 자산을 매각하는 양적 긴축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3년 반에 걸쳐 약 3조달러(약 3600조원) 규모의 자산 축소를 추정하는데, 이 수치는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2조5000억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7850억달러)에 재투자하지 않는 자연적인 청산 규모에 근거한다. 시장에서 우려하는 인위적인 자산 매각이 아니라는 뜻이다. 



2│빅테크 성장에 관한 신뢰는 회복되는가

시중 유동성 환경이 나빠지면 성장 기업에 대한 투자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건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리가 상승하면 조달 비용이 커져 더 높은 성장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 상승=성장주 하락’이라는 단편적인 인식은 바로 잡아야 한다. 수학적으로 금리 상승이 분모의 할인율(미래 가치를 현재 가치와 같게 하는 비율)을 높여 자산 가치가 떨어진다는 공식적인 대입이지만, 이는 분자에 이자처럼 현금 흐름이 일정하게 유입되는 채권에만 해당하는 논리다. 만약 금리 상승률보다 미래 현금 흐름의 성장률이 더 높으면 자산 가치는 더 커지게 된다.

최근 일부 빅테크의 어닝 쇼크는 성장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모든 빅테크의 성장이 멈춘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아마존과 애플, 구글같이 우리에게 더 친숙한 거대 빅테크는 오히려 시장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 성장을 보여줬다.

유동성이 넘쳐나면 성장 기업의 스토리텔링에 환호하고 투자자는 이를 쉽게 받아들인다. 팬데믹과 함께한 지난 2년간이 그랬다.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 분위기에 돌입한 지금, 유동성 환경이 악화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앞으로 성장의 수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기업과 그러지 못한 기업의 주가가 본격적으로 차별화할 것임을 시사한다. 다만, 차별화가 모든 성장 기업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메타(vs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 ‘바이트댄스’)와 넷플릭스(vs 디즈니 등)처럼 일부 경쟁 구도에 들어간 기업의 성장 후퇴 현상에 불과하다. 반대급부로 성장 차별화를 보여주는 기업은 더 높은 신뢰를 받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성장 산업의 몰락이 아닌 성장 기업 간의 차별화 구간이다. 이를 인식하면 우리의 투자 전략은 명확해진다.

물론 자본시장이 단번에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게 우리네 인간사가 아닌가. 필자가 추정한 연준의 속내가 맞는다면, 자본시장이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연준은 3월 FOMC에서 그 첫 단추를 잘 풀어나가야 한다. 연준이 시장과 잘 소통해야 한다는 얘기다. 투자심리가 안정을 찾아가면 차별화한 성장 기업을 찾는 노력도 재개될 것이다. 지금은 이런 순리적 흐름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