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우미우가 202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Y2K 룩. 사진 미우미우 2 샤넬 패션쇼 런웨이에서 모델이 ‘Y2K’ 룩을 선보이며 걷고 있다. 사진 샤넬
1 미우미우가 202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Y2K 룩. 사진 미우미우 2 샤넬 패션쇼 런웨이에서 모델이 ‘Y2K’ 룩을 선보이며 걷고 있다. 사진 샤넬

2021년 봄·여름 시즌이 ‘Y2K 패션’ 귀환의 예고편이었다면, 2022년 본편이 시작됐다. Y2K의 Y는 연도(year), K는 1000을 뜻하는 킬로(kilo)를 의미해 2000년도 시작 시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컴퓨터 오류 ‘밀레니엄 버그’를 이르는 약자다. 당시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인식하던 컴퓨터가 2000년이 되면 ‘00’만을 인식해 1900년과 혼동하면서 사회적 대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돌고 도는 패션 유행의 사이클이 1990년대를 지나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반의 세기말 패션 시대에 도달한 것이다.

2000년 초반에는 어떤 스타일이 패션 스트리트를 점령하고 있었을까. 가장 대표적인 빅 키워드는 로라이즈(low-rise·골반에 걸쳐 입는 밑위가 매우 짧은 스타일)와 크롭트(cropped·짧은 길이의 상의)다. 그 혼돈의 시대에 청춘을 보낸 현재의 중년은 기억할 것이다. 벗겨질 듯 아슬아슬한 로라이즈 팬츠에 크롭톱을 입은 브리티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에이브릴 라빈, 벨벳 소재의 로라이즈 팬츠와 크롭 후드 톱의 주시 쿠튀르 트레이닝슈트를 입은 패리스 힐턴 그리고 국내에선 당시 최고의 여성 아이돌이었던 보아와 효리가 로라이즈 팬츠와 크롭톱의 인기를 이끌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서울 체크인’에서 보아와 이효리가 자신들의 전성기에 입었던 로라이즈 팬츠를 둘러싼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이라이즈가 유행이었다. 극단적으로 짧아진 로라이즈의 등장에 롤러코스터를 탄 듯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듯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적응력은 빠르다. 2021년부터 벨라 하디드, 켄달 제너 같은 유명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스트리트 룩으로 시작된 Y2K 패션은 이제 일반 패션 추종자들의 인스타그램, 틱톡에까지 도배돼 있다.

3 블랙핑크 제니가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광고 촬영에서 그린 컬러의 벨벳 소재 트레이닝 후드 재킷과 팬츠의 트랙슈트 룩을 입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4 가수 태연이 크롭톱 등 Y2K 룩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3 블랙핑크 제니가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광고 촬영에서 그린 컬러의 벨벳 소재 트레이닝 후드 재킷과 팬츠의 트랙슈트 룩을 입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4 가수 태연이 크롭톱 등 Y2K 룩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국내에선 블랙핑크의 제니가 Y2K 패션 유행의 신호탄이 됐다. 제니는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광고 촬영에서 입은 그린 컬러의 벨벳 소재 트레이닝 후드 재킷과 팬츠의 트랙슈트 룩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는데, 파급 효과는 컸다. 20년 전 전세계 패션 스트리트를 점령했던 트레이닝슈트 룩과 Y2K 패션이 이제 국내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갈 것을 예상하게 했다. 가수 태연은 두건과 ‘틴티드 선글라스(연하게 컬러가 코팅된 선글라스)’, 트레이닝슈트를 자신의 새 싱글 앨범을 위한 패션으로 선택했고, 레드 벨벳의 조이는 2000년대 인기 가요를 리메이크한 스페셜 앨범 커버 패션으로 Y2K 패션을 입었다. 무엇보다 Z 세대(1997~2010년생)가 Y2K 패션에 열광하며 유행을 리드해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코로나 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해 소셜미디어(SNS) 의존도가 더 높아진 Z 세대가 2000년대 초반의 화려한 대중문화와 패션에서 신선한 매력과 재미를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Z 세대만의 튀는 개성과 자유로움으로 재해석되고 업그레이드된 ‘세기말 감성’의 Y2K 패션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묶여있던 Z 세대의 자유분방한 패션 감성을 마음껏 펼치게 하고 있다.

특히 2022년 국내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되는 Y2K 패션은 크게 로라이즈 팬츠, 마이크로 미니스커트, 크롭톱 세 가지 아이템이다. 202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대부분의 유명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로라이즈 팬츠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바지통이 넓은 와이드 핏의 로라이즈 팬츠들로 2022년식의 힙(hip)한 매력을 더했다. 2000년대 패리스 힐턴, 브리티니 스피어스가 유행시킨 로라이즈 팬츠는 일자의 스트레이트 핏, 아랫단으로 갈수록 살짝 퍼지는 세미 부츠컷 등 다리에 달라붙는 스키니 핏이 대부분이었다. 골반에 걸쳐 입는 로라이즈 팬츠의 매력은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곡선의 보디 실루엣을 드러내, 허리는 더 가늘고 골반은 더 나와 S라인을 강조해주는 것이다. 이때 바지통이 넓은 와이드 핏의 팬츠를 입으면, 2000년대와 다른 2022년의 Z 세대 감성으로 새롭게 로라이즈 팬츠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짧은 기장의 크롭톱은 로라이즈 팬츠를 돋보이게 하는 최고의 패션 파트너라 할 수 있다. 크롭톱은 로라이즈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 먼저 인기를 끌고 정착된 트렌드 아이템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과 달리 이번 시즌의 크롭톱 유행은 어느 때보다 대담해 보인다. 이전에는 하이라이즈의 하의와 매치되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슬쩍 윗배가 드러나는 정도였다. 그러나 로라이즈 팬츠나 미니스커트와 만나면서 노출은 어느 때보다 더 대담해졌다. 가슴 아래부터 골반까지 배와 등 부분 전체가 노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크롭톱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면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가슴 아랫 부분을 드러내는 언더붑(underboob·가슴 아래 라인을 드러내는 패션) 스타일도 등장했다. 이 언더붑 패션의 유행이 국내에 상륙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왔는데, 최근 국내 아이돌 가수와 셀러브리티들이 연이어 언더붑 패션을 자신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려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Y2K 패션 유행을 리드하는 블랙핑크의 제니, 가수 비비, 신인 그룹 르세라핌의 리더 김채원, 가수 현아 등이 언더붑 패션이란 모험을 즐기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모델 출신 배우 정호연은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린 ‘2022 멧 갈라(Met Gala)’의 레드카펫 룩으로 가슴 아래 라인을 절개한 루이비통의 드레스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언더붑 패션을 실제 국내 스트리트 룩으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유행이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캠페인의 연장이라고 보는 평가도 있다. ‘프리 더 니플’은 여성들의 자유로운 브래지어와 상의 탈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다. 

또한 마이크로 미니스커트도 Y2K 패션의 핵심 아이템으로 패션 스트리트에 퍼져나갈 예감이다. 미우미우가 202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미니스커트는 스커트보다는 밴드에 가까울 만큼 매우 짧았다. 허리 라인은 배꼽 아래 골반에 걸쳐져 있고 힙을 겨우 덮는 기장이었다. 돌체앤가바나, 샤넬, 베르사체, 블루마린 등 수많은 디자이너가 이 극도로 짧은 마이크로 미니스커트를 패션쇼에 올렸기에, 한여름이 되면 2000년대 초반에 보았던 미니스커트들을 다시 스트리트 패션 룩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세기말의 Y2K 패션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2000년대 스타일은 누군가에게는 잠시 잊었던 20년 전 청춘의 추억으로,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패션의 활력이 될 것이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