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을 이끌었던 경험을 수소 시장에 적용하고 있다. 탈탄소화를 목표로 단계별 이행안을 설정했고, 전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수소 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발걸음을 뗀 것이다. 호주는 한국과 일본에 수소를 제공함으로써 녹색수소의 최대 수출국 중 하나로 거듭나고 있다. 수소에 대한 세 국가 간 논의는 이미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일본은 자국 내 7개 기업으로 구성된 ‘HySTRA(기술연구조합 CO₂ 프리 수소 공급망 추진 기구)’와 최대 전력사 제라(JERA) 등의 시험 사업과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통해 호주와 수소 동맹을 현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내에 수소 생태계가 실제로 작동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수소 밸류체인 내 불확실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수소 관련 기준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도 미미하다. 미드스트림(midstream·수송 단계) 업체 역시 운송 기술의 미비라는 난제를 마주하고 있으며, 오프테이커(off-taker·구매 계약자)들은 수요의 불확실성과 비싼 운송 비용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내 수소 기반 경제와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로, 정부가 나서 명료한 기준과 규제를 확립해야 한다. 정부의 표준과 지침이 없으면 기술 장비 업체들은 상당한 기회비용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규모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규제가 없다면 운송 단계에서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수소 관련 기술 표준을 제정하는 데 평균 4년이 걸리므로, 정부는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2030년 액화수소 국제 거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를 하루빨리 취해야 할 것이다. 먼저 수소 운반체와 수소 선박 등의 디자인과 건설에 대한 표준을 명확하게 수립해야 한다. 일본과 호주의 수소 시험 사업인 ‘HySTRA’는 각국 정부 간 긴밀한 협업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 사례다. 특히 수소는 LNG와 달리 단일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어 국제 무역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수소의 장점을 활용해 정부는 빠르게 기준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정부 주도하에 부채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것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대부분의 수소 연구개발(R&D)과 시험 사업들은 정부의 보조금이나 자본을 통해 지원받는다. 장기적인 사채 금융을 통해 수소 사업을 상용화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채권 금융은 수소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다. 수소 시장 업체들은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을뿐더러 경험이 풍부한 기술 자문의 부재로 인해 채권 금융이라는 자금 조달 방법을 쉽사리 택하지 않는다. 정부는 신용 향상과 가격 고정 메커니즘을 고안하고 이행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기술 자문 조직을 구성하거나 타 산업의 숙련된 기술 자문이 수소 분야로 옮겨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또한 방법이다. 독일은 이미 ‘H2Global’이라는 지속 가능한 자금 조달 수단을 마련해 수소 사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구조 속에서 수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세 번째는 상승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생산 업체들 간 클러스터(cluster)를 형성하는 것이다. 수소 생산 시설들은 막대한 설비투자액(CAPEX)을 필요로 하지만, 생산자들은 여전히 수요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클러스터가 형성되면 생산자들은 설비 투자액에 대한 재정적인 부담을 덜 수 있고, 시장 초기의 수요 리스크 또한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C2PAT 프로젝트는 한 클러스터 내에서 수소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결합한 경우다. 녹색수소를 이용해 재생 가능한 합성 연료와 올레핀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특히 호주는 발전 가능성이 큰 지역들에서 다양한 종류의 수소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네 번째로 생산 업체들은 중요한 설비 업체들과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
전해조는 수소 생산의 핵심적인 설비로 꼽히지만, 현재 시장에서 이를 생산하는 믿을만한 제조 업체들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제조 용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생산자들은 전해조의 충분한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자들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해조 제조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더 나아가 이들과 협업을 통해 최첨단 연구개발과 혁신적인 시험 사업을 추진하는 등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다섯 번째로 운송 업체들은 초기 단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해 기술 리더십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장 내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수소의 생산과 수출입 관련해 야심 있는 청사진들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계획들이 미드스트림 단계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LNG나 암모니아 산업은 초기 단계부터 발 빠르게 움직인 운송 업체들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기술 라이선스나 EPC(설계·조달·시공) 업체나 선박 회사들과 협업해 초기부터 차근차근 실적을 쌓으면서 향후 운송 분야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
여섯 번째로 규모의 경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활성화하기 위해 ‘공동 구매’할 수 있다. 수소 운송 분야 전문가들은 무역 거래량이 최대 사이즈의 선박과 탱크의 용량에 달할 때 비로소 액화수소와 암모니아가 운송과 저장 측면에서 규모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예측한다. 하지만 시장 초기의 예측 수요가 분열돼 있으며, 오직 소수의 오프테이커들만이 그만큼의 대용량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적은 용량의 수소를 구매하고자 하는 오프테이커들이 함께 모여 구매량을 합친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프테이커들이 최종 고객들까지도 끌어모을 수 있도록 사업 모델을 새로 개척해야 한다. ‘녹색 프리미엄’을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고객들의 태도, 브랜드 관리와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 대한 시장 파트너들의 관심, 그리고 친환경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토대로 여러 이해 관계자들과 협업한다면 위험은 줄이고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수소 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