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대학(로스쿨) 고학년이 되면 ‘어음·수표법’이란 것을 배운다. 대부분 학생이 어음과 수표를 구경조차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 과목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암기과목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들도 어음과 수표를 사용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교수들이 사업을 해보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교수와 학생 모두 경험이 불완전하다 보니 독일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가 말하는 타자의 지평과 나의 지평이 융합(Horizontverschmelzung)되기 힘든 것이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음과 수표의 실물도 구경하고 브로델이나 퍼거슨의 역사책도 읽고 나서 알게 된 일이지만, 어음과 수표 심지어 약속어음과 환어음은 경제적 기능과 법적 기능이 전혀 다르고 발생사적 기원도 매우 상이하다.
1295년 마르코 폴로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서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경이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쿠빌라이 정부가 중국인에게 금속화폐 대신 종이돈 사용을 강요했다는 사실이었다. 황제는 서명과 날인만으로 종이를 금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이러한 종이는 순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위엄과 권위를 지녔다. 누구나 기꺼이 이 종잇조각을 사용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대칸(大汗)이 지배하는 모든 지역에서는 이러한 종잇조각이 유통되기 때문이었다. 대칸이 지배하는 모든 지역에서는 누구나 이것을 사용해 상품을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다. 이러한 종잇조각은 순금으로 만든 주화처럼 모든 거래에 사용됐다.”
동양의 사례에서 영감을 얻은 유럽의 골드스미스(성채와 용병을 거느린 금 보관업자)들은 새로운 약속어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골드스미스에 금을 맡기면 골드스미스는 금 지급을 약속하는 약속어음을 발행해준다. 소지인은 약속어음을 은행에 제시해 금 인출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배서(서명)를 통해 다른 상품의 구매에 사용할 수도 있다. 비록 런던, 피렌체 등 제한된 범위 내에서였지만 약속어음은 오늘날의 은행권(지폐)처럼 거래하는 데 통용됐다. 그러나 기존 화폐 시스템에 훨씬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14세기에 출현한 환어음이었다. 원래 환어음은 작성자가 타국에 소재하는 대리인 또는 은행에 자신을 대신해 제삼자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였다. 예를 들어, 영국 상인이 프랑스 공급업자로부터 와인을 수입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영국 상인은 영국 소재 은행에 주화를 지급하거나 신용(외상)으로 환어음을 구입한다. 영국 상인은 프랑스 소재 은행에 환어음을 제시하고 동일한 금액을 정해진 환율로 인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인출한 금화로 프랑스의 와인 상인에게 와인 대금을 지급하면 된다.
당시 환어음에는 10% 내외의 수수료가 부과됐고, 어음 금액은 에쿠(Ecu)라는 가상의 회계 단위로 표시됐다.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에쿠를 통화 단위로 사용한 적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연유한다. 에쿠는 각국의 화폐(예를 들어 파운드, 프랑 등)에 대해 단일한 국제 통화 역할을 했다. 이는 실제 통화 각각에 두 개의 환율(파운드-프랑, 파운드-에쿠)이 존재함을 의미했다. 환어음의 가장 큰 장점은 주화를 이용하지 않고 국제 거래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주화는 운송 속도가 느렸고, 쉽게 도난당했으며, 교환 비용이 많이 들었다. 주화는 종종 품질을 의심받았다. 유통 중에 주화의 표면을 긁어내기도 하고, 발행 당시부터 금과 은의 순도를 낮추기도 했다. 1529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스페인에 포로로 잡힌 두 아들의 몸값으로 1200만에스쿠도를 지불했으나, 주화를 인도받은 스페인인들이 주화를 세고 품질을 검사하는 데 4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4만 개 주화는 품질 불량으로 수령이 거부됐다.
15세기에 이르자 환어음은 국제 무역에 참여하는 유럽의 신흥 상인계급이 선호하는 화폐 대용 수단이 됐다. 분기마다 리옹과 같은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거대한 무역박람회에서는 주화가 필요 없게 됐다. 상인들이 물품 거래를 완료하면, 은행가들이 한데 모여 장부를 조정하고 정해진 환율에 따라 미결제 잔액을 정산했다. 은행가들은 상이한 국가 통화로 표시된 국제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환어음을 서로 교환했다. 만약 누군가 현금이 부족하면 그는 환어음을 팔아서 현금을 빌릴 수 있었고, 다음 박람회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도 있었다. 전쟁 기간에는 국가 간 통화 가치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환어음을 이용한 투기적 거래가 성행하기도 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매우 강력한 경제제재를 부과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외화(달러) 자산의 동결’과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 봉쇄’였다. 무역대금은 SWIFT를 이용해 달러로 결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러시아의 원자재 수출을 봉쇄해 경제적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도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산 석탄과 석유의 수입을 크게 늘렸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서방의 경제제재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무역대금을 결제한 것일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중세로 돌아가면 된다. 즉, 중세 시대 국왕의 압제를 피해 유럽 상인들이 사용했던 환어음을 이용해 무역대금을 결제한 것이다. 7월 8일 자 로이터 보도를 토대로 그 메커니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도 수입업체 A는 인도 상업은행 B를 이용하고, 러시아 수출업체 C(중립국인 스위스에서 설립)는 중국 상업은행 D를 이용하되, 무역대금은 환어음으로 중국 위안화를 통해 결제하기로 한 것이다(물론 실제 거래는 송장, 신용장, 환어음, 선적서류 등이 오가며 조금 더 복잡하다). 최첨단 금융기술 이용이 봉쇄된 러시아는 중세적 방식을 이용해 원자재 수출을 계속할 수 있게 됐고, 인도와 중국은 서방의 경제제재를 위반하지 않고도 값싼 러시아산 원자재를 마음껏 수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거래는 모스크바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의 달러 자산을 동결하는 형태이므로 이런 무역방식을 이용하면 러시아는 달러 결제 없이도 해외에 자국 상품을 계속 판매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중심 경제질서에서 독립하기를 원하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와 남미 여타국가들이 이러한 방법을 모방할 가능성도 크다. 중국과 인도는 값비싼 중동 석유 대신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를 엄청나게 수입하면서도 ‘급격한 수입 중단은 물가 상승을 초래’하므로 무고한 자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러시아산 원자재 무역대금의 결제에 위안화를 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서방의 제제가 무력화되므로 모스크바는 더 안전하게 되고, 위안화를 국제화함으로써 세계 무역에서 미국 달러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중국의 노력은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향인 예산(禮山)의 오일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말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형님네 오이도 싸야 단겨(형님이 파는 참외도 값이 싸야 달게 느껴진다)!” 명분이냐, 실리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