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느낀 흥분이었다. 설렘과 흥분 같은 단어를 마음에 품기엔 꽤 많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2022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의 시간은 과거에 머물 줄 알았던 그 단어들을 다시 꺼내게 했다. 페스티벌이 돌아온 것이다. 여름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 부활의 기지개를 켠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믿지 않게 된 숫자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집회 참석 인원. 주최 측은 늘리고 경찰은 줄이는 마법의 숫자다. 또 하나는 주최 측이 발표하는 페스티벌 관객 수. 현장에서 보면 어림짐작으로 몇천이 고작인데 보도자료를 보면 곱하기 10은 된 것 같다. 어른의 사정이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8월 5일부터 7일까지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는 몇 달 전부터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얼리버드 티켓이 오픈 직후 매진되더니, 추가로 티켓이 오픈될 때마다 계속 매진됐다. 여러 경로로 확인해 본 바, 유료 티켓 판매량이 4만 장 이상이었다. 초대권과 이벤트 등 여러 경로로 입장하는 인원을 대략 추산해보면 10만 명 안팎이 몰릴 게 확실했다. 트라이포트페스티벌 1999부터 매해 여름 록 페스티벌을 빠짐없이 다녔던 입장에서, 이 숫자는 컸다. 매우 컸다.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현장 어디에나 많은 인파가 있었다. 무대 앞의 잔디밭은 물론이고, 텐트나 돗자리를 펼 수 있는 캠핑존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음식과 음료 부스에는 종일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머천다이즈를 판매하는 부스까지도 줄이 길었다. 체감상 이 정도의 인원이 몰렸던 국내 페스티벌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라디오 헤드의 첫 한국 내한이었던 2012년 지산록페스티벌. 이 행사 라인업이 발표되는 순간, 소셜미디어(SNS)에 쓰나미가 덮쳐오는 듯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연이 열렸던 7월 마지막 주 금요일의 압도적 인파 또한 생생하다.
그런데 펜타포트의 흥행 성공 요인은 2012년과는 달랐다. 라디오 헤드 같은 초A급 헤드라이너가 없었음에도 일찌감치 흥행 가도를 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펜타포트가 꾸준히 흥행이 됐던 페스티벌도 아니다. 2006년 첫 행사가 열리고 2009년 주최 측의 분열로 여름 록 페스티벌 시장이 펜타포트와 지산록페스티벌로 나뉜 이래, 펜타포트는 흥행 대박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떨 때는 유료 관객보다 초대권으로 온 관객이 많아 보일 때도 있었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기 전 열린 2019년 행사는 심지어 한산한 느낌마저 있었다. 게다가 음악 시장의 대세가 힙합, EDM 등으로 넘어가고 페스티벌 소비층도 서울에서 열리는 재즈·어쿠스틱 성향의 행사로 몰리면서 펜타포트의 위치는 갈수록 축소되는 듯했다. 만약 이 행사가 지자체가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 주최했다면 진작 존폐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안 좋은 흐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3년 만에 열린 행사는 어떻게 부활한 것일까.
우선 ‘개더링(gathering)’에 대한 욕망이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는 공연 산업에 보디 블로와 어퍼컷 그리고 하이킥을 3연타로 날렸다. 크고 작은 공연들이 연달아 취소됐고, 줄줄이 폐업했다. 공연 산업, 또는 여가 산업의 꽃인 페스티벌은 말할 것도 없다. 집합 금지로 인해 4인, 심할 때는 2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는 상황에서 수백에서 수만 명이 운집하는 공연과 페스티벌은 배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피해를 본 게 업계 종사자뿐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대중의 욕망도 억눌려 있었다. 약 2년간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으로 전환되는 순간, 욕망이 터질 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대중의 욕망은 왜 펜타포트를 향했을까. 엔데믹 전환을 즈음해서 열린, 적지 않은 페스티벌이 소리 소문 없이 참패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팬데믹 이전의 대세 장르로 라인업을 채웠음에도.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오프라인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펜타포트는 온라인으로나마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해외 라인업은 없었지만 어쨌든 실제 행사장 무대와 동일한 환경에서 유튜브를 통해 페스티벌을 중계했다. 스튜디오나 제3의 공간이 아닌 실제 무대에서 중계되는 페스티벌에 2년간 적지 않은 시청자가 몰렸다. 그 시청자 중 상당수가 온라인 중계를 통해 욕망을 대리 충족했을 것이다. 펜타포트라는 브랜드를 비대면으로나마 인지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둘째, 라인업의 변화다. 앞서 말했듯 올해 펜타포트에는 특A급 해외 라인업이 없었다. 아니, 해외 참가팀의 비중도 예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았다. 대신 다양한 국내 팀들을 배치했다. ‘록’이라는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 검증된 팀들이 있었다. 크라잉 넛, 자우림, 넬 같은 팀이다. 분위기의 보증수표다. 페스티벌이 멈춰 있는 동안 시장에서 성장한 팀들이 있었다. 잔나비, 새소년, 아도이 같은 팀이다. K팝과는 완전히 다른 시장에서 그들은 자생력을 키웠고 때론 차트를 정복하기도 했다. 프레임에서 벗어났으되 이곳저곳에서 라이브 실력을 증명한 팀들이 있다. 비비와 이승윤 같은 이들 말이다. 그 외에도 빛과 소음, 효도앤베이스처럼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는 젊은 에너지들까지, 다양하되 실속 있는 라인업으로 타임테이블을 채웠다.
또 페스티벌이 ‘음악 산업'에서 ‘여가 산업’으로 변화한 점, 대중의 문화 소비가 자기만족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인증했을 때 과시욕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상품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 같은 요소들도 생각해볼 수 있다.
기획과 욕망의 교차로에서 펜타포트는 폭발했다. 크라잉 넛은 자신들의 페스티벌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자우림 또한 어느 페스티벌에서 본 것보다 더 강력한 호응을 끌어내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2014년 신인 오디션을 통해 첫 펜타포트 무대에 섰던 잔나비는 둘째 날 메인스테이지 서브헤드라이너 자격으로 설 만큼 성장한 게 미디어와 마케팅의 힘이 아니었음을 거대한 떼창으로 증명해냈다. 록 밴드의 성장을 소재로 하는 창작물에서나 만날 법한 자신감은, 오랫동안 한국 록 페스티벌의 증인을 자처한 사람으로서 뿌듯하기 그지없는 순간이었다. 발런티어스의 무대에서 보컬 백예린은 처음 겪어보는 록 페스티벌 관객 앞에서 그 어떤 무대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했으며 이디오테이프는 객석을 헤비메탈 밴드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펜타포트에 처음 서는 팀이건, 여러 번 섰던 팀이건 모두 잊지 못할 여름을 선사하고 또한 스스로 얻었다. 토요일 헤드라이너이자 세 번째 내한인 미국 밴드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보컬, 에즈라 코에닉은 그 분위기를 칭송하며 모두가 행복하다 느낄 수밖에 없는 음악과 사운드를 들려줬다.
3년 만의 펜타포트는 역대급이었던 수도권 폭우를 거짓말처럼 단 하루 남기고 끝났다. 8월 8일부터 쏟아지는 비를 보며 생각했다. 3년 만의 여름 록 페스티벌을 음악의 신이 지켜줬다고. 마일스톤 하나를 달성하고 다시 내년을 준비할 이 행사의 미래는 아직 마침표를 찍을 때가 아니라고.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