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쿠 가쓰지(能作克治) 노사쿠 사장. 주석 식기 등 노사쿠 주요 제품들. 사진 노사쿠
노사쿠 가쓰지(能作克治) 노사쿠 사장. 주석 식기 등 노사쿠 주요 제품들. 사진 노사쿠
최인한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전 일본 유통과학대객원교수, 전 한국경제신문 도쿄특파원
최인한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전 일본 유통과학대객원교수, 전 한국경제신문 도쿄특파원

지난여름 ‘일본 알프스’ 여행길에서 도야마(富山)현 다카오카(高岡)를 지나다가 낯익은 간판과 마주쳤다. 중소기업계를 취재하며 많이 접했던 ‘노사쿠(能作·NOUSAKU)’ 본사를 안내하는 표지판이다. 여행 목적지인 다테야마(立山)로 가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었지만, 자동차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현지 안내인이 얼마 전 그 회사에 가봤는데, 레스토랑이 아주 근사하다고 추천했다. 승용차의 방향을 틀어 그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노사쿠 본사 공장에 도착한 뒤 먼저 두 가지에 놀랐다. 공장이 붙어 있는 사옥 빌딩이 매우 예뻤다. 1, 2층 제품 전시실과 판매점의 인테리어는 글로벌 대기업 수준으로 깔끔했다. 또 하나는 빌딩 1층 안쪽에 들어선 레스토랑 ‘이모노키친(IMONO KITCHEN)’이다. 식당 인테리어는 물론 음식 맛이 뛰어났다. 품질 대비 가격도 훌륭했다. 레스토랑의 대외 평판도가 좋아 회사 인근 주민은 물론 외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점심을 먹고 나서 전시실과 체험관을 둘러보며 ‘장수 기업’의 숨은 저력을 곳곳에서 확인했다. 

노사쿠는 우리나라 업계나 경영학계에 꽤 알려진 중소기업이다. 회사 규모가 커서가 아니라 강소 기업의 교과서 같은 ‘모델 케이스’로 알려져 있다.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의 대표 격인 주물업체로 출발했다. 지금은 디자인과 패션이 뛰어난 식기와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유명한 업체다. 이 회사는 1916년 창업 이후 몇 차례 위기를 극복하고 제2 전성기를 맞았다. 간판 상품은 주석(錫)으로 만든 구부러지는 그릇이다. 주석은 변형되기 쉬운 부드러운 금속이어서 지금까지는 순도 100% 주석 제품이 없었으나 4대 사장인 노사쿠 가쓰지(能作克治·64)가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도야마(富山)현 다카오카(高岡)에 있는노사쿠 본사 공장 내 제품 전시장. 사진 최인한 소장
도야마(富山)현 다카오카(高岡)에 있는노사쿠 본사 공장 내 제품 전시장. 사진 최인한 소장

전통과 혁신의 ‘모노즈쿠리 도시’ 다카오카

도야마현은 우리나라 동해 건너편에 있다. 도야마현 북서부에 위치한 다카오카는 인구 17만 명으로 현 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초카마치(성하 마을)’로 1611년 주물공장들이 들어선 게 다카오카의 기원이다. 당시 이곳에서 그릇과 차 도구 등 생활용품과 농기구, 불구(佛具) 등을 주로 만들었다. 지금도 다카오카는 주물 생산에서 일본 1위를 차지한다. 사찰에서 사용되는 불구와 차 도구 등 소형 제품부터 동상, 범종 등 대형제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13년째 이어지는 일본의 인구 감소와 장기 침체로 쇠퇴하는 다른 지방 도시들과 달리 다카오카는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모노즈쿠리(장인 정신을 담은 제조)’ 덕분이다. 


노사쿠, 역발상 신제품으로 부활

노사쿠는 1916년부터 주물 제조를 시작해 차 도구, 꽃을 담는 그릇을 만들었다. 이 회사는 1965년 사양 산업인 주물 제조에서 벗어나는 전기를 맞는다. 일본이 고도 경제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국민 소득이 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진 덕분이다. 당시 노사쿠가 생산한 모던한 디자인의 꽃병(花器)이 대히트하며 회사 규모가 한 단계 도약했다. 

그렇지만 좋은 시절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경기 침체와 생산 거점의 해외 이전 등과 맞물려 전통적인 꽃병, 차 도구, 불구 수요가 점차 감소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 노사쿠도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창업 가문의 4세대인 노사쿠 가쓰지 사장은 1984년에 입사했다. 18년간 기술자로 주조 작업을 했던 가쓰지 사장은 오랜 기간 축적돼온 회사 기술을 활용, 자사만의 독특한 제품을 개발했다. 2001년 도쿄 하라주쿠에서 개최된 ‘풍경(방울)·숲·아름다움’ 전시회를 계기로 드디어 길이 열렸다. 주석 소재의 아름다움을 살린 풍경이 전문가와 소비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회사 로고를 새겨 넣은 풍경을 만들자 매달 1000개 이상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가쓰지 사장은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는 신제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 회사 간판 상품이 된 주석 100% 식기도 ‘식기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판매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만든 것이다. 주석 제품은 경도를 내기 위해 다른 금속을 첨가해 만드는 것이 기존 상식이었다. 하지만, 가쓰지는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주석 100% 가공’에 도전했다. 매우 어려운 개발 작업이었으나, 어느 순간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휜다면 휘어도 사용할 수 있는 식기를 만들자.’ 이런 역발상으로 ‘KAGO 시리즈’ 등 히트 상품을 잇달아 내놨다.

노사쿠는 전통 기술과 지식, 장인 정신을 기초로 조명기기, 건축자재, 의료기기 등으로 생산 제품군을 확대했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일’과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산업관광 사업도 시작했다. 그 거점이 되는 다카오카 신사옥이 2017년 완공됐다. 공장 견학 및 주물 제작 체험, 지역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석기(錫器)로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독자적으로 편집한 관광 정보 코너를 갖췄다. 

 

4, 5대 부녀 경영자가 손잡고 사업 다각화

노사쿠는 최근 10년 동안 사업 다각화에 적극적이다. 전체 직원은 30여 명에서 170여 명으로 늘어났다. 매출은 2.5배 증가한 16억엔(약 156억원)에 달한다. 전국에 3개였던 직영점은 13개로 확대됐고, 대만 타이베이에 해외 직영점을 열었다. 3년 전 도쿄에 개설한 플래그숍 ‘노사쿠 코레드 무로마치 테라스점’이 회사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누적 20만 개 이상 팔린 식기 ‘KAGO’ 시리즈와 움푹 들어간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두면 손이 편한 ‘NAJIMI 텀블러’ 등이 히트 상품이다. 회사의 상품 종류는 10년 전 70종에서 300종으로 늘어났다. 노사쿠는 3년 전 여행 사업에도 신규 진출했다. 공장 견학, 주물 체험, 현지의 오래된 민가 호텔 숙박을 세트로 하는 ‘추억 여행’ 상품이다. 호텔에서 사용하는 식기는 모두 노사쿠의 주석 제품이다. 이런 혁신 작업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사장의 딸인 노사쿠 치하루(36) 전무다. 그는 회사 공장과 생산 제품, 주석의 매력을 고객들에게 알리는 일을 맡고 있다. 

치하루 전무는 12년 전에 노사쿠에 입사했다. 그가 요즘 공을 들이는 신규 사업은 ‘석혼식’이다. 결혼 10주년을 축하하는 ‘석혼식’을 주석을 다루는 ‘노사쿠’만의 독자적인 세리머니로 기획, 운영하는 것이다. 석혼식 요금은 최저 8만8000엔(약 86만원, 의상·사진 별도)부터다. 지금까지 60쌍 이상이 식을 올렸다. 그는 “이들이 평생 고객이 될 것”이라며 “노사쿠의 새로운 핵심 사업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창업 가문의 4대째 사장인 아버지와 5대째 딸이 손을 맞잡고 노사쿠의 ‘200년 기업’ 초석을 다지고 있다. 노사쿠의 창업, 쇠퇴와 부활은 중소기업이 100년 이상을 버티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