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부동산 시장이 불황일 때 사람들은 상급지로 갈아타는 것을 꿈꾼다. 갈아타기는 자신이 사는 집보다 비싼 지역, 혹은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불황기에는 주거 프리미엄이 줄어든다. 흔히 말하는 블루칩과 비(非)블루칩과의 가격 차이가 감소한다는 얘기다. 과소비보다는 실속 소비를 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지금은 갈아타기를 시도하기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올 들어 아파트값이 상급지보다는 중급지 혹은 하급지에서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갈아타기 실속 있을까
KB국민은행 시세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인천과 경기도 아파트값은 각각 0.35%, 0.22%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값은 0.53% 올랐다. 그렇다면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기는 갈아타기는 괜찮을까? 올 들어 9월까지 노원·도봉·성북구 아파트값이 0.74~0.89% 하락해 상대적으로 낙폭이 컸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같은 기간 2% 이상 올랐다. 이처럼 수도권과 강북의 낙폭이 큰 것은 2030 세대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들 지역으로 몰려들어 가격이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최근 2~3년간 주택 시장 키워드는 ‘탈서울 내 집 마련’과 ‘비강남의 반란’이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집값도 많이 오르면 많이 떨어지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서 서울로 진입하거나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하는 상급지 갈아타기는 실속이 없을 수 있다. 내 집은 싸게 팔고 남의 집은 비싸게 사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2012년 당시 집값이 하락할 때만 해도 상급지로 갈아타기 여건이 좋았다. 버블세븐(강남 3개구, 분당, 용인, 평촌, 목동)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버블이 붕괴됐다. 이 여파로 강남과 비강남 간의 가격 차이가 크게 줄어 갈아타기에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앞으로 시장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다. 정부가 내년 5월 9일까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한시적 감면을 시행하고 있는데, 다주택자들이 비인기지역 주택을 먼저 처분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와 인천지역에서 아파트 입주 물량도 부담이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 114에 따르면 올해 경기와 인천지역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5만2908가구로 지난해보다 17%나 많다. 이에 비해 서울지역의 올해 입주 예정 물량은 2만3555가구로 지난해보다 30% 정도 줄어든다. 상대적으로 경기와 인천지역 입주 물량 압박이 더 크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집값은 서울보다는 수도권 아파트값이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갈아타기를 하고 싶다면
서울이나 강남권으로 진입하고 싶다면 대단지 랜드마크를 노려보는 것도 좋다. 하락기에 랜드마크 아파트값이 더 많이 빠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 집을 싸게 팔고 다른 집을 싸게 사는 전략을 구사해도 무난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랜드마크 대단지 아파트는 가격이 잘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는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랜드마크 대단지 아파트는 시세 포착이 잘 되는 게 특징이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5000가구 이상의 대단지는 한두 건은 거래가 이뤄질 것이다. 단순히 급매물이 아니라 급급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질 것이다. 급급매물은 다른 매물에 영향을 줘서 호가를 떨어뜨린다. 급급매물이 급급매물을 부르는 꼴이다. 이러다 보니 대단지 랜드마크 아파트는 하락할 때는 생각보다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 홀로 아파트나 소규모 단지는 하락기에는 거래가 없으므로 시세 포착이 어렵다. 물론 시장이 회복세로 접어들면 대단지 랜드마크 아파트의 상승 폭이 클 것이다. 최근 강남권에서 잠실지역의 아파트값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5000가구 이상의 대단지가 밀집해 있는 지역적 특성이 작용한 것 같다. 실거주 외에 갭투자 수요가 접근하기 어려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것도 급락의 또 다른 요인이다. 하지만 대단지의 시세 포착이라는 특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상급지로 갈아타기를 하려는 수요자들은 2000가구 이상의 대단지의 급급매물을 골라보는 것도 좋다. 급급매물은 시세보다 크게 싼 매물이므로 쏟아질 만큼 많지는 않다. 따라서 미리 여러 곳의 중개업소에 연락해서 급급매물이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해놓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선매도 후매수 원칙’을 지켜라
규제지역에서 대출을 내면 종전 집을 2년 이내에 팔고 새 집에 전입을 해야 한다. 규제지역에서 일시적인 1가구 2주택 양도세 비과세 기간 역시 2년이다. 새 집을 산 뒤 종전 집을 2년 이내에 처분해야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비규제지역은 3년으로 여유가 있다. 지금처럼 거래절벽 상황에서는 새 집을 먼저 사놓고 종전 집이 팔리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종전 집을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전세를 놓았다면 더 큰 골칫거리다. 주택 가격이 하락할 때는 갭투자 수요가 적어 전세를 안고 있는 집은 거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팔기와 사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령 오전 10시에 매도 계약금을 받았다면 당일 오후 4시 매수 계약금을 지급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집을 판 뒤 늦어도 열흘을 넘기지 않고 집을 다시 사는 게 좋다. 벽돌을 빼냈으면 더 늦기 전에 다시 끼워 넣는 것이다.
일이 꼬이면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새로 산 집을 다시 되팔아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올 수 있다. 특히 같은 아파트 내에서 옮기는 것은 그나마 낫지만, 환금성이 떨어지는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길 때는 ‘선매도 후매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갈아타기의 또 다른 포인트
이제 곧 월세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갈아타기를 할 때는 가급적 월세 수익률이 높은 곳을 고르는 것이 유리하다. 월세 시대가 되면 아파트 평가도 전세 시대와 다를 것이다. 투자금 대비 월세 수령 액수(월세 수익률)가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아파트도 미래 예상되는 수익을 기초로 적정 가격을 추산하는 수익환원법이 각광받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은 주로 다세대나 다가구(원룸)주택 등 수익형 부동산을 사고팔 때 매겨왔으나 이제는 아파트도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아파트는 수익형 부동산보다는 시세 차익형 부동산에 더 가깝다. 갭투자가 하나의 재테크 방식으로 자리 잡았던 것은 바로 전세제도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갭투자는 현금흐름보다 자본이득으로 보상받는 구조다.
하지만 월세 시대가 되면 현금흐름 중심으로 가격을 따진다. 전세형 주택이 주식형 주택이라면, 월세형 주택은 채권형 주택이다. 채권 이자처럼 정기적으로 임대료를 받는 것이다. 이제는 전세보다 월세가 잘 나가는 아파트를 눈여겨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포털이나 부동산 모바일 앱에서 월세 거래량과 금액을 비교 대상 단지와 대조해보라. 같은 금액의 아파트라도 월세 수익이 더 높은 곳이 장기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월세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더블역세권이나 업무지구에 위치한 ‘대단지+새 아파트’면 금상첨화다. 월세를 잘 받는 아파트는 교통, 편의시설 등에서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향후 월세가 잘 나오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 간의 매매 가격 차이가 커질 것이다. 아파트를 새로 사거나 갈아타기를 할 때는 처음에는 거주하더라도 나중에 월세로 돌릴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고르는 게 좋을 것이다. 이른바 ’월세 전환형 아파트‘다. 반복하건대 향후에는 월세 수익률이 집 고르기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므로 이에 맞춰 옮기는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