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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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투자의 자세’ 저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어둠이 세계를 뒤덮자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황금시대가 끝났다. 금리는 돈의 시간가치다. 금리가 급하게 올라가자 미래에 받아야 할 돈의 가치가 변화했고, 각각의 자산은 이를 반영해 재배치되고 있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잉태하고, 불안은 또다시 불확실성을 키운다. 경제가 흔들리자 정치가 흔들리고, 정치가 흔들리자 경제가 더 흔들린다. 정치와 경제의 악순환 고리가 작동되자, 유럽이 시스템 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불확실성이 금융 시스템 위기로 연결될까? 필자의 판단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작다’이다. 물론 여전히 다수는 현 상황이 더 악화하고, 시스템 위기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기는 소수의 길로 가야 한다. 이번에도 우리는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야 이 시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성 커지는 유럽

유럽의 정치적 불안은 극우 정치 세력의 약진에 있다. 그 시발점은 9월 25일(이하 현지시각) 무솔리니 집권 이후 100년 만에 탄생한 멜로니의 이탈리아다. 이번 총선에서 우파 연합 승리의 주요 원인은 고물가, 유럽연합(EU)과 정부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렇다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이탈리아가 EU에서 이탈할까? 당장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EU는 2026년까지 이탈리아에 1915억유로(약 273조6535억원) 규모의 코로나19 회복지원기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탈리아의 우파 연합은 이를 외면하기 힘들다. 다만 이번 이탈리아 총선을 기점으로 유럽 내 극우 정당들의 연합 강화 및 중장기적으로 EU 정책과 충돌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국 역시 정치가 경제를 흔들고 있다. 9월 23일 영국 재무부가 1972년 이후 최대 감세 예산안을 발표했는데, 금융시장의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국채가 급락했고, 파운드화 약세는 가속화됐다. 각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매진하는 상황에서 영국이 엇박자 행보를 이어간 결과다. 정책 불확실성은 바로 금융시장으로 번졌다. 저금리에 기반한 파생 투자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정부 감세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지속되자 리즈 트러스 총리는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경질했고, 법인세 및 소득세 인상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이 모든 우려의 시작점은 인플레이션이다.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시대에서 무슨 일을 해도 물가가 잘 잡히지 않는 시대에 들어섰다. 물가를 잡기 위한 가파른 금리상승은 저물가·저금리에 기반해 작동돼온 부채 의존 경제의 약한 고리를 흔들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당장 파산 가능성 작아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경기침체 우려가 확대될 때 투자자들이 유심히 지켜봐야 할 지표 중 하나로 CDS 프리미엄을 꼽을 수 있다. CDS(Credit Default Swap·신용부도스와프)란 기업이나 국가의 부도 사태를 대비하려고 만들어진 파생상품이다. 부도 위험을 회피하는 주체가 지불하는 수수료를 CDS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과거 리먼 브러더스 부도 사태나 유럽의 재정위기가 발생했을 때 금융권의 연쇄부실 우려가 확대되면서 금융기관들의 CDS 프리미엄이 크게 상승한 바 있다.

그런데 2022년 스위스 2위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에서 리먼 사태의 징후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달 사이에 크레디트스위스의 CDS 프리미엄이 급등한 것이다. 주가 역시 최근 6개월간 40% 이상 하락했다. 주주와 채권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회사 경영진은 30억달러(약 4조3860억원) 규모의 채권을 조기에 상환하고,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호텔)을 매각하기로 했다. CDS 프리미엄과 주가는 일단 진정세에 들어섰다.

상황이 왜 이리 악화된 것일까? 2022년에 드러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구간에서 투자은행 사업부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결과다. 금융시장 불안 양상이 심화하고 글로벌 경기침체가 현실화될 경우 크레디트스위스의 재무건전성 우려는 계속 불거질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당장 파산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적이 부진한 투자은행 부문을 제외하면 기타 핵심 사업부는 꾸준히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제하고 리스크 관리 조치를 강화할 경우 추가적인 손실 규모는 축소될 것이다. 과거 발생한 대규모 비용 요인 역시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할 전망이다.


국내 영향도 제한적일 것

일각에서는 크레디트스위스 사건을 금융권 전반의 부실 확대, 혹은 금융 시스템 리스크의 전조로 확대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당시와 비교하면 글로벌 금융기관의 자본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개선됐다. 크레디트스위스의 경우 유럽 은행에 요구되는 자본 비율인 보통주 자본 비율이 2022년 6월 말 기준 13.5%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 말 11.4%, 2020년 말 12.9%에 비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건전성 우려가 다른 금융기관 부실로 전이될 가능성도 작다. 대표적으로 유럽 및 미국 금융권의 CDS 프리미엄 수준을 보면 2022년 들어 전반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여전히 코로나19 확산 초기 수준을 넘어서지 않고 있다. 유로존 내에서 금리 수준이 가장 낮아 수익성 우려가 빈번히 제기되는 도이치뱅크의 경우도 과거 대비 CDS 프리미엄은 낮은 상태에서 유지되고 있다.

물론 금융시장 불안 양상이 지속되고 글로벌 경기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금융권 전반의 위험도는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 상황에서 판단해보면 크레디트스위스 이슈는 향후에도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아닌 개별위험 요인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비우호적인 유동성 환경에도 불구하고 유럽 및 미국 은행 간 리보금리(Libor) 동향 등을 살펴보면 현재 글로벌 금융권 내 자금경색 신호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국내 금융시장 및 금융권 측면에서도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한국의 국가 및 금융권 CDS 프리미엄 역시 유럽 및 미국과 유사하게 최근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과거 위기 시기와 비교하면 현격히 낮은 수준이다. 국내 은행권 또한 유럽과 마찬가지로 강화된 자본 규제(바젤 3) 적용을 받아 자본력이 크게 개선된 상태다. 사모펀드 사태 이후로는 공격적인 레버리지 투자가 엄격히 제한되고 있어 크레디트스위스와 같이 재무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할 가능성이 작다.

과거 리먼 브러더스 파산이 가져온 충격과 공포가 여전히 일부 투자자들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크레디트스위스 부실 우려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크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