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미국 텍사스오스틴대 법학 석사, 전 김앤장 법률사무소 해사자문역, 전 일본 산코기센 선장 사진 고려대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미국 텍사스오스틴대 법학 석사, 전 김앤장 법률사무소 해사자문역, 전 일본 산코기센 선장 사진 고려대

10월 15일 오후 7시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의 조선·해운업 관련 종사자들이 온라인 화상 회의 플랫폼 ‘줌(Zoom)’에 하나둘 모였다. 이곳은 일명 ‘바다, 저자와의 대화’라는 온라인 공부 모임. 매주 조선, 해운, 선박 금융, 수산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조선 산업 트렌드’ ‘유럽 해운 물류가 강한 이유’ 등의 강의를 열고, 각 산업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2020년 9월 처음 만들어진 이 모임은 이날 100번째 모임을 맞이했다. 안광헌 현대중공업 사장, 유창근 전 현대상선(현 HMM) 대표, 김종덕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 정필수 전 KMI 부원장 등 1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성 회원인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세계 어디에도 이런 모임은 없다. 내가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 모임을 2년 넘게 이끌고 있는 인물은 국내 대표 해상법 전문가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그는 항해사와 선장 출신으로 10년간 상선에서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날 서울 안암동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각 해양 산업 전문가로 구성된 우리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바로 집단지성”이라며 “앞으로 제2의 한진해운 사태가 벌어져도 모임을 통해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이력이 특이하다. 선장에서 지금은 교수직을 맡고 있다. 
“한국해양대 졸업 후 배를 탔다. 세계 최대 해운사 중 하나였던 일본의 산코기센(三光汽船)에서 근무하면서 31세 나이로 선장까지 승진했다. 그러다 1991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비료를 싣고 호주로 입항하던 중 해도에 나오지 않는 암초에 선박이 좌초됐다. 당시 싱가포르에 있던 예인선이 사고 지점까지 오려면 일주일이 걸린다고 하더라. 배가 점점 가라앉자 결국 사고 이틀째 전원 퇴선 명령을 내렸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사고의 충격이 매우 컸다.”

어떻게 됐나.
“화주였던 비료 주인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호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됐다. 2년에 걸친 소송은 잘 마무리됐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러다 나처럼 불행을 당한 선장을 도와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 상대편이 고용한 로펌의 자문역으로 선장 출신 영국인이 있었다. 선장 출신이 법학박사 혹은 변호사라면 새로운 길이 있다고 판단했다. 1년의 준비 끝에 고려대 대학원에 합격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해사자문역으로 일하며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9년부터 고려대 로스쿨에서 해상법을 가르치고 있다.”

일명 ‘바다 공부’ 모임을 만들고, 2년째 이끌고 있다. 
“2020년 9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당시 조선, 해운, 선박 금융, 수산 등 바다와 관련된 산업을 다 같이 공부하자는 목적에서 온라인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 줌을 통해 만났는데, 처음엔 20여 명이었던 참석자가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늘어 지금은 강의마다 150명, 많게는 200명까지 참석한다. 국내 조선·해운사의 대표이사와 임직원뿐 아니라 원로 기업인, 교수, 해양진흥공사·산업은행 관계자, 승선 중인 항해사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다. 일본, 싱가포르, 독일 등 해외에서도 모임 시간에 맞춰 온라인 모임에 참석할 정도다. 현재 등록된 회원만 720명이다.”


줌을 통해 모인 ‘바다 공부’ 모임 회원들. 사진 김인현 교수
줌을 통해 모인 ‘바다 공부’ 모임 회원들. 사진 김인현 교수

벌써 100번째 강의 모임이다. 원동력은 무엇인가. 
“조선, 해운, 선박 금융 등 바다 관련 각 산업 종사자들이 서로에 대한 공부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니즈(수요)가 작용한 결과다. 한국은 해양 강국이지만, 다른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2016년에 벌어진 한진해운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한진해운이 최소한의 현금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전 세계 항만이 채권자의 현금 요구를 들어주지 못해 선박들이 억류되는 물류대란이 발생했다. 해운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수많은 화주가 일거에 신뢰를 거둬들여 정기선사는 회복이 불가능할 것을 예측 못 했다. 국책은행도 해운업을 경제 논리로만 접근했다. 작년처럼 해운업은 언젠가 또 호황이 온다는 점을 알았어야 했다. 도산법, 해운업의 이해가 정치인, 정부, 교수, 금융 등 산업 전반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알짜배기 회사를 파산으로 가게 했다.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이 교훈을 기억하기 때문에 모임이 힘을 얻고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일례로 한진해운 사태 당시 일부 선주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한진해운을 인수하려 했다. 그런데 화주들이 화물 배송 지연을 문제 삼아 손해 배상 청구에 나서면서 한진해운의 빚이 3조원에서 한 달 새 30조원으로 불어났다. 법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당시 지연 손해액을 온전히 부채로 인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인 지식이 없던 선사들이 덜컥 겁을 먹고 인수를 포기했다. 지금은 ‘바다 공부’ 모임을 통해 각 산업 종사자들 간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고, 집단지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최근 바다 공부 모임 강의에서 우리나라는 조선사와 해운사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해양 산업의 두 개의 큰 축인 조선업과 해운업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세계 1위지만, 해외에서 발주한 선박이 대부분이다. 국내 선사가 발주한 선박은 수주 선박의 5%에 불과하다. 그래서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따라 휘청인다. 반면 일본은 자국 선사들이 발주한 선박들을 조선사들이 일감으로 활용한다. 글로벌 사이클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산업을 이어 갈 수 있는 이유다. 해운사 역시 조선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국제해사기구(IMO)가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기존 선박들을 친환경 선박으로 대거 교체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조선사들이 어떤 차세대 선박을 개발하는지, 어떤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한지 해운사들이 알고 있어야 대응이 가능하다.”

바다 공부 모임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항해 일수가 쌓이면서 전문가들이 발표한 바다 관련 지식이 화물창에 가득히 실려 있다. 이를 기록으로 남겨 우리나라 조선·해운 분야의 지식 수준을 높이고 싶다. 한국에선 조선·해운업 관련 서적이 1년에 채 5권도 안 나온다. 반면 일본은 매년 30권씩 발간된다. 지난 2년간 모임에서 발표된 자료를 꾸준히 책으로 출간하고 있다. 지금까지 책 2권을 펴냈고, 앞으로 3권을 추가로 출간할 예정이다. 한 번 출항한 선박은 되돌아오지 않고 목적지를 향한다. 500회, 1000회까지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