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지방시의 에스파, 보스의 이민호, 샤넬의 제니, 프라다의 김태리. 사진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지방시의 에스파, 보스의 이민호, 샤넬의 제니, 프라다의 김태리. 사진 인스타그램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뉴욕, 밀라노, 파리, 런던 패션위크가 화려한 축제의 폭죽을 터뜨렸다. 아예 컬렉션을 취소하거나, 버추얼 패션쇼로 컬렉션을 대신하며 긴 암흑기를 보낸 패션위크가 2023년 봄·여름 시즌이 되어서야 본연의 활기를 되찾았다. 패션 피플들이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대형 런웨이가 세워지고, 쇼장 앞은 전 세계에서 날아온 패션 프레스, 바이어들과 인플루언서들 그리고 그들의 패션쇼장 룩을 담는 파파라치들로 북적였다. 그렇게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포스트 코로나 패션위크 기간에 큰 변화가 벌어졌다. 바로 패션쇼의 K스타 돌풍이다. 역대급의 한국 스타들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앰배서더(Ambassador·브랜드 이미지를 대표하는 홍보대사)로 초대됐고, 그들이 참석한 패션쇼장 주변에 몰려든 팬들의 열기로 세계 패션계를 놀라게 했다.

2022년 10월 4일, 샤넬의 2023년 봄·여름 시즌 패션쇼가 펼쳐지는 그랑 팔레 에페메르(Grand Palais Éphémère) 앞에 셀 수 없이 많은 인파가 몰렸고, 수많은 경호원이 쇼장 앞을 지키고 있었다. 게스트들의 차가 속속 도착하며 유명 패션 프레스들과 셀러브리티들이 차에서 내렸는데, ‘인간 샤넬’이라 불리는 블랙핑크의 제니가 도착하자 엄청난 환호와 비명이 쏟아졌다. 블랙 핑크의 지수가 참석한 디올, 로제가 참석한 생 로랑의 쇼장도 마찬가지였다.

블랙 핑크 멤버들은 각각 제니가 샤넬, 로제가 생 로랑, 지수가 디올, 리사가 셀린느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발 빠르게 블랙핑크 멤버들을 브랜드 앰배서더로 선정한 명품 브랜드들은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경험했다. 지수는 2020년부터 디올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약해왔는데, 지수가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게시물이 평균적인 미디어 영향 가치보다 33% 상승했다는 마케팅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이 명품 브랜드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벌어졌는데, 엄청난 화제성이었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패션쇼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순간, 각 지역에서 몰려온 팬들이 쇼장 주변을 뒤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콘서트장 이상의 열기와 환호에 수많은 매체가 앞다투어 보도를 했다. 또한 패션쇼장에 몰려든 팬들이 찍은 동영상이 여러 SNS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대부분의 영상이 메가급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 명품 패션하우스임에도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파급력이었다.

무엇보다 패션쇼의 전설이 된 건, 지난 6월에 있었던 2023년 봄·여름 셀린느 남성복 패션쇼에서였다. BTS의 뷔, 블랙핑크의 리사, 배우 박보검이 패션쇼에 초대됐는데, 쇼장인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 미술관 주변에 수천 명의 팬이 인간 성벽을 이루었다. 뷔, 리사, 박보검이 팬 서비스를 위해 즉흥적으로 발코니에 올라 손을 흔들자 팬들이 함성을 질렀는데, 그 열기가 대단해 셀린느를 소유한 세계 최대 패션 그룹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시드니 톨레다노 최고경영자(CEO)가 놀란 눈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현장을 직접 촬영하기도 했다. 패션쇼장에서 그런 광경은 결코 본 적이 없다는 패션 매체들의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 빛으로 나온 명품 패션하우스들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해 K스타들을 패션쇼에 초청해야 함을 깨달았다. 경쟁하듯 한국 스타 모시기에 나서서 2023년 봄·여름 패션위크는 K스타들의 축제였다. 파리보다 먼저 열린 밀라노 패션위크 최고의 스타는 구찌 앰배서더인 아이유였다. 아이유는 2020년 구찌코리아의 앰배서더가 되기 전부터 구찌 홀스빗 1955 라인 미니 숄더백을 ‘아이유백’으로 유행시키기도 했는데, 올해부터 이정재와 함께 구찌 브랜드 글로벌 앰배서더가 됐다.

애플 TV의 ‘파친코’ 이후 인지도가 올라간 이민호는 보스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패션쇼에 참석했다. 보스의 대표적인 스트라이프 패턴과 검정, 카멜 색상의 슈트에 후드 티셔츠를 조화시키고 자신만의 보스 룩을 연출해 주목받았다. 보스 패션쇼에 등장한 이민호는 다른 해외 스타들을 제치고 밀라노 패션위크 화제성 1위에 올랐다. 또한 페라가모 패션쇼에 트와이스의 채영이, 지방시 패션쇼에는 브랜드 앰배서더인 에스파가 참석했다. K팝 아티스트 최초로 멤버 전원이 지방시 앰배서더로 선정된 에스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튜 M. 윌리엄스의 초청으로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등 특별 대접을 받았다. 또한 프라다 쇼에는 배우 김태리와 트와이스의 사나, 미우미우 패션쇼에는 아이브의 장원영과 소녀시대의 윤아가 브랜드 앰배서더로서 참석했는데, K스타들이 참석하는 모든 패션쇼장에는 구름처럼 많은 팬이 몰려들었다. 그 외에도 배우 유아인이 보테가베네타, 배우 김다미가 펜디, 레드벨벳의 조이가 토즈 패션쇼에 참석했다.

밀라노에 이어 파리 패션위크에서도 K스타들은 팬덤의 물결을 이끌며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는 최고의 주인공이었다. 샤넬의 글로벌 앰배서더인 블랙핑크의 제니는 샤넬 더블 CC 로고가 새겨진 테리(terry·타월지 같은 소재) 소재의 미니 드레스를 입고 샤넬의 모델이기도 한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나란히 앉아 패션쇼를 관람했다. 생 로랑 룩의 완벽한 여신이라 찬사받는 블랙핑크의 로제는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 저스틴 비버의 부인이자 유명 패션 아이콘인 헤일리 비버와 나란히 쇼를 관람했다. 블랙핑크의 지수는 디올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인 피에트로 베카리와 할리우드 스타 나탈리 포트만 사이에 앉아 패션쇼를 관람했고, 디올 프런트 로(front row·패션쇼 맨 앞줄 자리)에서도 특급 대우를 받았다. 디올 쇼에는 배우 차은우도 브랜드 앰배서더로서 참석했고, 배우 한소희는 발렌시아가의 앰배서더로 주목받았다. 루이비통의 글로벌 앰배서더인 정호연은 패션쇼 메인 모델로서 전 세계 팬들을 만났다. 이렇게 K스타들의 화려한 퍼레이드 속에서도 블랙핑크 지수가 2023년 봄·여름 파리 패션위크 ‘최고의 인플루언서’라는 영예를 차지했다. 글로벌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 레프티(Lefty)가 분석한 언드 미디어 가치(Earned Media Value) 결과에 의하면, 파리 패션위크를 빛낸 가장 영향력 높은 인플루언서 1위는 블랙핑크 지수, 2위 카일리 제너, 3위 블랙핑크 로제, 4위 블랙핑크 제니, 5위 벨라 하디드, 6위 차은우, 7위 미아 칼리파, 8위 젠데이아, 9위 BTS 제이홉 등이었다. 이 결과만 보아도 K스타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왜 패션하우스들이 앞다투어 한국 스타들을 브랜드 앰배서더로 발탁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번 패션위크는 에미상을 휩쓴 ‘오징어 게임’의 배우들을 보고 있는 것 이상으로 경이로운 현상이었다. 패션쇼 프런트 로마다 한국 스타들이 가장 좋은 메인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그들을 보기 위해 쇼장 앞에 몰려든 팬들이 만들어내는 열기는 센세이셔널하기까지 했다.

팬데믹 이후 완벽한 대면 패션쇼로 돌아온 유명 패션하우스들에 K스타가 이끄는 팬덤과 파급력, 화제성이 패션하우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막강한 수혈제가 된 셈이다. 음악, 영화, 드라마 그리고 패션위크까지 전 세계를 장악하는 K스타들의 시대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 듯하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칼럼니스트, 케이노트(K-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