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탱 와이너리 전경. 2 알자스 음식과 카탱 와인.3 구겔호프와 디흘레 카데 와인. 4 디흘레 카데 시음 와인. 사진 김상미
1 카탱 와이너리 전경. 2 알자스 음식과 카탱 와인.3 구겔호프와 디흘레 카데 와인. 4 디흘레 카데 시음 와인. 사진 김상미

정말 모처럼 떠나는 휴가였다. 어디로 갈지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프랑스 알자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무엇보다 맛있는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고 ‘알자스 와인의 수도’라 불리는 콜마르(Colmar)가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됐을 정도로 아름다워서였다. 파리에서 콜마르까지는 TGV로 2시간 30분이 소요됐다. 도착해서 콜마르와 주변 마을들을 둘러보니 과연 애니메이션 속 풍경이 과장이 아니었다. 알록달록한 집들이 과자로 만들어 놓은 듯 맛있게(?) 보여 뜯어 먹고 싶을 정도였다. 동화 같은 풍경 속에 앉아 와인을 마시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한가득 고였다.

알자스는 색다른 풍경만큼이나 와인 스타일도 남다르다. 라인강을 경계로 독일과 국경을 마주한 곳이어서 독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우선 병 모양이 독일처럼 길쭉하다. 프랑스의 다른 지역들은 레이블에 주로 지명을 기재하지만, 알자스는 독일처럼 포도 품종을 적는다. 와인 생산량 중 90% 이상이 화이트라는 점도 프랑스에서는 유일무이하다. 리슬링, 피노 그리, 게뷔르츠트라미너 등 재배되는 품종이 모두 아로마가 풍부해 블렌드보다 단일 품종 와인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휴가라고는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꼭 가보고 싶었던 와이너리 딱 두 곳만 방문하기로 했다. 먼저 찾아간 곳은 12대째 가족경영 와이너리로 운영 중인 카탱(Cattin)이었다. 카탱은 콜마르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보그린스호펜(voegtlinshoffen)이라는 작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데, 다른 곳과 달리 그곳의 집들은 상당히 현대적이었다. 카탱의 젊은 안주인인 아나이스 카탱(Anais Cattin)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마을이 초토화됐다. 그러고 보니 알자스는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갖고자 혈투를 벌인 탓에 아픈 역사를 겪은 곳이기도 하다. 3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답게 카탱의 지하 셀러에는 오래된 오크통이 가득했다. 최고 등급인 그랑 크뤼(Grand Cru)급 와인을 발효하는 데 쓰이는 커다란 오크통들 중에는 1850년에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지금은 환기 시설이 잘되어 있지만 옛날엔 이곳에 반드시 촛불을 들고 들어왔다고 한다. 와인이 발효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셀러에 가득 차면 촛불이 꺼지면서 질식사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셀러를 나와 양조장에 들어서니 탱크마다 발효 중인 와인이 가득했고, 한편에서는 수확한 포도를 착즙하느라 분주했다. 아나이스에 따르면 알자스에서는 포도 수확이 8월 말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신선한 풍미가 핵심인 스파클링 와인용 포도를 가장 먼저 수확하고 그랑 크뤼급은 최고의 완숙도를 위해 한 달 늦게 수확한다는 것이다.

셀러 투어를 마친 뒤 와인 시음을 위해 카탱의 루프톱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카탱이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마을과 포도밭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알자스 음식과 함께 카탱 와인을 마셔볼 수 있는 곳이다. 누구든 방문이 가능하니 알자스를 여행한다면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카탱은 스파클링부터 그랑 크뤼까지 다양한 와인을 생산한다. 모두 알자스 와인의 모범 답안이라 할 만큼 특유의 개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테이블에는 프레첼이 준비돼 있었다. 알자스에서는 프레첼을 스파클링 와인과 함께 애피타이저로 즐긴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프레첼과 와인의 궁합이 어찌나 좋은지 도저히 손과 입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커다란 프레첼 하나를 다 먹어 치워 배가 잔뜩 불렀지만 치즈, 햄, 푸아그라와 함께 맛본 카탱의 와인들은 환상적이었다. 과일 향도 풍부하고 꽃 향기도 은은해 전, 잡채, 볶음 등 우리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


‘알자스 와인의 수도’인 콜마르. 사진 김상미
‘알자스 와인의 수도’인 콜마르. 사진 김상미
알자스 포도밭 풍경. 사진 김상미
알자스 포도밭 풍경. 사진 김상미

이튿날에는 디흘레 카데(Dirler-Cade)를 방문했다. 1871년에 설립된 이곳도 5대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가족경영 와이너리다. 포도를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그랑 크뤼급 와인을 다양하게 생산한다는 점이 필자의 흥미를 끌었다. 디흘레 카데는 정겨운 농가 같은 분위기였다. 오너 와인메이커인 장 디흘레(Jean Dirler)의 안내를 받으며 와이너리를 둘러보는데 한쪽에 커다랗게 포장된 와인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으로 보낼 와인이었다. 디흘레 카데는 한국 수출이 처음이다. 총 12종의 와인을 수출하는데 그중 7종이 그랑 크뤼급이거나 싱글 빈야드급이라고 한다. 알자스 와인의 테루아별 개성을 맛보고 싶다면 디흘레 카데를 주목하기 바란다.

와이너리 투어가 끝난 뒤에는 시음을 위해 긴 테이블이 있는 소박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테이블에 앉자 안주인인 루디빈(Ludivine)이 와인을 하나씩 설명하며 잔에 따라주었다. 그런데 나오는 와인이 끊이질 않았다. 나중에 세어보니 시음한 와인이 무려 20종에 달했다. 와인마다 개성이 살아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오히려 감탄의 연속이었다. 필자를 더욱 감동하게 한 것은 함께 내어준 음식들이었다. 모두 집에서 직접 만든 소박한 알자스 음식들이었는데, 먼 데서 온 손님을 그냥 보내지 못하는 따스한 정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알자스 전통 케이크인 구겔호프는 디흘레 카데의 스위트 와인과 즐기니 꿀맛이 따로 없었다.

알자스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날씨였다. 계속 비가 오락가락해 햇살에 빛나는 찬란한 포도밭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지 못했다. 대신 하늘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무지개를 자주 마주쳤는데, 돌이켜보니 카탱과 디흘레 카데의 다채로운 와인 맛이 알록달록한 무지개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알자스 와인은 맛과 향이 풍부해 고추장이나 간장으로 양념한 우리 음식과도 무척 잘 어울린다. 한 편의 동화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추억을 마음에 담고 이젠 정겨운 사람들과 알자스 와인을 나누며 새로운 추억을 쌓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