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언니 동생(Sister Sister)’의 표지. 사진 김진영
사진집 ‘언니 동생(Sister Sister)’의 표지. 사진 김진영

카메라를 들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을 떠올리면, 그 대상은 보통 가까운 누군가일 것이다. 함께 사는 가족이나 반려동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친구들 등의 사진을 즐겁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찍고, 또 시간이 흘러 그 사진을 되돌아보며 사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사진가 리브 리베르그(Liv Liberg)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도 2002년 비교적 어린 나이인 열 살이던 때였다. 그의 카메라 앞에 선 이는 네 살 차이가 나는 여섯 살 여동생 브리트 리베르그(Britt Liberg)였다. 자매는 아버지가 연극 공연가이고 어머니는 시각예술가인 집안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 지방의 시골 마을 홀란쳬 라딩(Hollandsche Rading)에서 살았다. 목가적인 환경 속에 자연을 벗 삼아 자유롭게 뛰어놀았고 그러면서도 부모님 덕분에 예술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리브는 패션과 사진에 관심이 있었고 브리트는 발레와 공연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사진 찍기는 두 사람 사이의 놀이이자 게임이었다. 리브는 브리트에게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겨주고 화장을 해주는 게 좋았다. 브리트는 의상을 입고 여러 동작을 취하며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즐겼다. 10대 시절 내내 이들은 많은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 가벼운 놀이로 시작했지만 이내 이들은 진지한 열정을 가지고 15년 넘게 사진 찍기를 계속했다.

자매는 집 안팎의 다양한 배경과 상황에서 촬영을 했다. 특히 이들이 흥미를 느꼈던 것은 다양한 옷을 입고 연출하는 것이었다. 어린 자매에게 부모님의 옷장은 흥미로운 것으로 가득 찬 보물창고 같았다. 요지 야마모토, 꼼데가르송, 겐조 같은 일본 디자이너의 옷이나 빈티지 샤넬, 뮈글러 등으로 가득 찬 부모님의 옷장을 몰래 뒤졌다.

브리트는 가장 재미있었던 점이 바로 옷을 입는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자매는 부모님의 옷장으로 몰래 들어가 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내곤 했다. 그래서 때때로 부모님은 옷장을 잠가두기도 했다고 한다. “비밀스럽게 하긴 했지만, 비 오는 숲속에서 요지 야마모토 슈트를 입는다거나 농장의 소를 옆에 두고 꼼데가르송 드레스를 입었다는 걸 부모님이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부모님은 옷장을 자물쇠로 잠가두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고 우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다.”

이들의 놀이에는 그 어떤 제약도 없어 보인다. 한 사진에서 브리트는 긴 흰색 드레스를 입고 숲에 서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사진에서는 잠옷을 입고 보일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버지의 큰 옷을 오버사이즈로 입고 있기도 하고, 속옷을 모자처럼 만들어 쓰고 있기도 하며, 신체의 대부분을 드러낸 채 토시나 양말만을 착용하고 있기도 하다. 때로는 벽돌이나 부채 등 집의 내외를 배회하다 발견한 일상적 물건이 창의적인 소품이 되기도 한다. 엄마의 화장품은 늘 극적인 분장을 하는 도구가 되곤 했다. 놀이에 수반되는 직관적인 창의성을 이들의 사진에서 엿볼 수 있다. 이들의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촬영한 것이라기보다 다양한 연출과 연극적 성격이 가미된 일종의 공연 기록과도 같았다. 기발한 스타일링이 담긴 이들의 사진은 실험적인 패션 사진 같기도 하고 나아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촬영은 언제나 극적이었다고 이들은 기억한다.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웃거나 아니면 자매들이 곧잘 그렇듯 이들도 싸우곤 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자매가 그러하듯이 싸웠고,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서로에게 정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자매간의 감정이 격해질 때 오히려 이들의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다. 싸우면서 사진을 찍느라 화난 브리트의 얼굴이 사진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주었다. 자매는 격렬한 감정으로 움직이고 춤추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즐겼다. 브리트는 이상한 움직임과 동작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언니 리브는 동생의 동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책에는 네덜란드 사진가 리브 리베르그(Liv Liberg)가 여동생 브리트 리베르그(Britt Liberg)의 다채로운 초상을 찍은 사진이 담겼다. 사진 김진영
책에는 네덜란드 사진가 리브 리베르그(Liv Liberg)가 여동생 브리트 리베르그(Britt Liberg)의 다채로운 초상을 찍은 사진이 담겼다. 사진 김진영

‘언니 동생(Sister Sister, Art Paper Editions·2021)’은 두 사람이 15년에 걸쳐 찍은 다채로운 초상을 담은 사진집이다. 처음에는 즐거운 놀이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진지한 작업이 되어간 두 사람의 방대한 사진이 담겨 있다. 15년에 걸쳐 찍은 방대한 양의 사진을 작가는 연도순으로 싣기보다 우선 모두 뒤섞는 방식을 택했다. 다만 사진을 찍은 시기를 월별로 정리해 1월부터 12월까지 12개의 소챕터를 만들었다. 각 챕터의 이미지는 실제로 그달에 촬영한 것들로, 독자는 월별로 어린 모습부터 성숙한 모습까지 브리트를 마주하게 되고 이 변화를 12번 따라가게 된다. 리브 리베르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분명한 구조를 콘셉트로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시적이다. 달과 계절은 특정한 연상을 불러일으키고,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며, 흐르는 시간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보일 것임을 염두에 두고 찍은 것이 아니라 자매간의 유대를 기반으로 한 일상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사진에서 드러난다. 브리트는 미소를 짓거나 예쁜 표정을 하고 있기보다는 평온함 내지는 지루함, 피로감 혹은 좌절감 등 미묘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감정이 담긴 표정을 보여준다. 또한 흔히 몸을 예뻐 보이게 하는 포즈를 취하는 대신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고, 멋을 목적으로 한 옷을 입었다기보다는 이불이나 속옷을 둘러 그것조차 패션이 되도록 한 장난스러움이 가득하다.

이들의 사진은 놀이였기에 더 독특하고 이상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자유롭고 창의적일 수 있었다. 보이기 위해 찍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진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책이 돼 독자를 만나자 자매가 보내온 15년간의 유대감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그것이 감동을 준다. 다음과 같은 리브의 말처럼 말이다. “브리트와 나는 무의식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 책을 보고 그러한 연결을 느낀 이들이 책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러한 연결은 아무에게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열 살 리브와 여섯 살 브리트는 알 수 없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자매로서 나이가 든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유대감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카메라 앞에서 한 명은 카메라 뒤에서 말이다. 어린 시절 그저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것이었을 사진들이 한데 모여 아이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자매의 여정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진화한 셈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