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본다는 건 근육 만들기와 비슷하다. 꾸준한 관심과 습관화가 필요하다.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아니 한 사람의 음악 팬이었을 때부터 공연 보기는 습관이었다. 매주 하루, 혹은 금·토·일 저녁에 라이브 클럽과 공연장에 있는 게 당연한 때도 있었다. 무대에 섰던 뮤지션, 혹은 공연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는 것 또한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기도 했다. 공연과 그 앞뒤의 시간은 오롯이 데이터가 됐고 나는 그 데이터를 이야기로 남겨왔다. 나이를 먹으며 오랜 시간 서 있는 게 힘들어졌다. 결혼도 했다. 공연장을 가는 빈도가 예전만 못해졌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2년 가까이 공연의 시간 또한 멈춰섰다. 그사이, 공연에 대한 근육도 사라지다시피 했다. 벼르고 있던 공연 날짜를 까먹기 일쑤였고, 기억하고 있는 공연도 다른 핑계로 안 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관심도 줄어들었는지, 내한 공연 소식을 뒤늦게 다른 이가 올린 소셜미디어(SNS) 후기를 통해서야 아는 일마저 생겼다. 부끄럽지만 나이를 먹은 것이다.
11월 12일, 서울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땅이 젖은 날엔, 특히 주말이라면 밖에 잘 나가지 않지만 우산을 들고 홍대 앞으로 출발했다. 검정치마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10㎝ 등과 더불어 2000년대 후반 인디 르네상스의 주역이었던 그들은 다른 팀들이 둥글둥글해지거나 시시해지는 동안 데뷔 당시의 날카로움과 핫함을 유지해왔다. 최근 발매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또한 그렇다. 1990년대 펑크를 기반으로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멜로디 감각과 시니컬한 가사, 센스 있는 편곡이 담긴 이 앨범은 음악 팬 사이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누군가는 “역시 검정치마”라고, 또 누군가는 “아직도 검정치마네”라고, 같은 의미의 다른 반응을 이어 갔다. 대형 공연장에서 열린 발매 공연은 당연히 매진이었고, 이어서 열리고 있는 클럽 공연도 오픈과 동시에 계속 만석이다. 이날도 그랬다. 홍대 왓챠홀이 600명의 관객으로 꽉 찼다. 얼추 살펴본 관객 비율도 이색적이었다. 20대와 30대가 주를 이룬 건 당연하지만, 남녀 비율이 대략 4 대 6에 가까워 보였다. 메탈 정도를 제외하면 남녀 비율이 이 정도인 공연은 적어도 남자 뮤지션 중엔 없다. 8시가 좀 넘어서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부터 떼창이 터졌다. 코로나19 기간에 눌려왔던 답답함을 푸는 것 이상의 열기가 수증기처럼 퍼졌다. 문제는 공연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평균보다 키가 작은 나는 오랜 공연 경험을 거쳐 나름의 생존 노하우를 익혀왔다.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쏘다니며 시야를 확보하는 감각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에게 공연이란 보는 행위에서 듣는 행위로 격하된다. 하지만 이때는 그럴 수가 없을 만큼 객석의 밀도가 높았다. 여유 공간이 없는 탓에 시야가 확보될 만한 곳도 없었고, 이를 위해 움직일 공간도 없었다.
나이를 먹으며 좋은 건, 포기가 빨라진다는 거다. 답이 없으면 미련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왓챠홀을 빠져나와 근처의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어느 1세대 인디 밴드의 앨범 발매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들 역시 오랜만에 새 앨범을 냈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이 팀 역시 언제나 양질의 음악을 들려줬다. 세기말 청년들의 어둠에서 시간과 함께 문학적 통찰을 담아내곤 했다. 이번 앨범 역시 호평받았다. 과거의 방법론을 고수하는 많은 뮤지션과는 달리 동시대의 팝 사운드에서 영향을 받아 또 한 차례 진화를 했다. 이 밴드의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는 이유는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받았던 씁쓸함 때문이다.
스탠딩으로 진행할 경우 상상마당은 약 300명 정도의 관객이 들어간다. 나는 이 밴드의 공연을 데뷔할 때부터 봐왔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늘 스탠딩이었다. 특히나 앨범 발매 공연 같은 중요 이벤트는 늘 그랬다. 그러나 이날은 의자가 깔려 있었다. 자리에 앉은 관객의 연령대는 젊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40대가 평균이고 그 이상의 관객도 적지 않았다. 중장년이 공연을 보는 게 의아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코로나19 이전에 이 밴드의 공연 역시 20대와 30대의 비율이 제법 높은 편이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에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낯선 풍경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 공연의 내용은 늘 그렇듯 훌륭했지만 그 훌륭함을 즐기기에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의 무게가 제법 됐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가는 착각마저 들었다.
2016년 여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느꼈던 감정이기도 했다. 그해 첫날 헤드라이너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였다. 2002년 이후 14년 만에 찾아온 그들의 무대 앞에는 1990년대의 로큰롤 키드들로 가득했다. 낡아버린 밴드 티셔츠가 신상이었을 때 날렵했을 몸은 1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티셔츠만큼이나 낡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는 삶의 책임이 일상을 차지할 나이가 된 그들에게,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그때 그 시절을 소환했다. 거대한 떼창과 점프가 90분 동안 이어졌다.
토요일의 헤드라이너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프로듀서인 제드였다. 거대한 콘솔 앞에서 실제 연주는커녕 라이브 믹싱도 하지 않는 그의 공연을 관객은 환호로 화답했다. 심지어 음원으로 트는 보컬을 따라 부르는 낯선 모습도 보였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20대 관객들은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가 EDM이고 심지어 라이브 사운드도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전날, 같은 무대 앞에서 환호했던 어제의 록 키드들은 이 모습을 보며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그 옛날 그토록 혐오하던 꼰대의 표정으로 “이걸 음악이라고⋯”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록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문 같은 순간이었다.
20대를 함께했던 1세대 밴드, 30대를 함께했던 2세대 밴드가 같은 날 공연을 했던 주말, 내가 느꼈던 무게는 무엇이었을까. 록의 종언 같은 거창한 화두는 아닐 것이다. 30대와는 달랐던 20대가 명백한 과거로 진입하는 모습을 비추는 거울의 시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가을비처럼 차가운 사실의 무게였을 것이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