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각파도에 휘청이고 있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대내적으로는 강원도가 지급 보증한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로 자금 시장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대내외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질 경우 경기 침체와 함께 자산 시장 거품이 무너지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초대형 위기)’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급격한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회사채 시장이 냉각되면서 기업의 돈줄이 막히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했고,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해지면서 주택 가격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우관에서 만난 최상엽 연세대 교수는 “최근 회사채 시장 부진에 기업공개(IPO)도 줄줄이 취소되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은행마저 대출 문턱을 높이는 상황이 연말까지 지속되면 신용경색(credit crunch)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경색이란 금융 시장에서 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뜻한다. 신용경색이 심화하면 견실한 기업들도 일시적인 자금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최상엽 교수는 10년 넘게 불확실성과 시장 변동성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연구해온 학자다. 최 교수는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단기자금 시장 불안이 더 큰 신용경색 위험으로 번지기 전에 사전 차단을 하는 의미에서 금융 당국이 시장에 강력한 시그널(신호)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부동산 거래절벽이 집값 급락, 건설사 줄도산 등을 동반하는 부동산 시장 경착륙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 경제의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이 가계부채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187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와 맞물리면서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며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은 사실상 부동산이 전부인 만큼,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경우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최 교수와 일문일답.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 세계적으로 금융 시장은 물론, 초대형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역풍을 맞은 영국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적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정책 관련 불확실성을 흔히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불확실성’이라고 부르고, 금융 시장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월스트리트(Wall Street) 불확실성’이라고 하는데, 두 가지가 동시에 고조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가계나 기업이 ‘일단 기다려보자’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앙은행 통화정책과 정부 재정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책의 실행과 집행에 있어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일관된 스탠스(기조)를 보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경제 주체들의 기대가 잘못 형성되면 불확실성이 장기적으로 더 큰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제일 걱정되는 시나리오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가계부채 부실 위험과 결합되면서 위기 뇌관이 터지는 것이다. 부동산 호황기에 집값이 뛰면서 가계의 자산도 늘고 이와 함께 금융부채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자산 가격이 워낙 빨리 상승했기 때문에 급격한 부채 증가세가 어느 정도 가려졌었다. 소득은 제자리에 부채가 급증했는데도 자산이 늘면서 건전성 지표가 개선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 수도권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서울 마포구 전체에서 한 달에 거래가 10건도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거래절벽이 심하고 주택 가격 하락 속도도 예상했던 것보다 가파르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고 금융부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경착륙이 현실화할 경우 시스템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졌고,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 시장 경색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경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채권 시장이 작고 기업의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경기 침체기에는 은행 대출 수요가 더 증가한다. 최근 회사채 발행이 부진하고 기업공개(IPO)도 막히는 등 기업이 채권·주식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더 어려워지면서 은행 대출 창구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회사채 시장 위축으로 대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해 해당 시장에서 제외된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이보다 심각하다.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은행 대출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은행권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태도를 엄격히 하고 있어 관련 신용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 2분기까지 데이터만 보면 당장 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지속되면 중소기업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동료 교수들과 관련 연구를 진행한 결과, 대부 자금 시장에서의 초과 수요가 발생하는 시점, 즉 돈을 빌리고 싶어도 빌리지 못하는 기업이 등장하는 것이 신용경색 위험 신호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당국과 한국은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처럼 시장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정부와 금융 당국이 시장 참가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채권 시장안정화펀드(채안펀드) 조성 같은 조치는 필요하다고 본다. 레고랜드 사태로 시작된 채권 시장 불안이 더 큰 위험으로 번지기 전에 사전 차단을 한다는 의미에서 시장에 강력한 시그널을 주는 정책은 좋지만, 한국은행의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 등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긴축 기조에 반대되는 정책을 펼칠 경우 일관성이 깨진다. 정책 엇박자로 혼선이 더 커지면 나중에 더 강한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인 2%를 밑돌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재 추세만 보면 한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그 질문에 답하려면 경기 침체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경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전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기술적인 경기 침체에 해당한다. 기술적인 의미에서는 경기 침체가 나타날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경기 침체를 전반적인 경기의 수축 혹은 하방 국면으로 정의한다면 넓은 의미에서는 이미 경기 침체 초입에 들어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라 미국의 통화정책, 글로벌 경기 둔화 등 외부 요인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긴축정책 전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등 외부 리스크 요인부터 해소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거시경제 리스크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너무 많지만, 굳이 하나만 꼽자면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인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간의 상충 문제다. 한국은 미국의 긴축 움직임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높은 수준의 부채가 쌓인 상태에서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가 가장 큰 리스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