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18홀을 돌다 보면 천당과 지옥을 맛보게 된다. 벙커샷이 컵에 빨려 들어가 환호작약하기도 하고 1m짜리 퍼팅 공이 컵을 돌아 나오면서 한탄하기도 한다. 그래서 골프는 경영과 닮았다고도 하고 인생과 닮았다고도 한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골프를 즐겼지만,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골프를 하지 않았다. ‘워커홀릭(일 중독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나 깨나 일에만 매달린 김우중 회장은 골프 하는 시간이 아까웠을 것이다. 만약 김우중 회장이 골프를 했더라면 대우그룹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골프다이제스트가 미국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거의 모든 CEO가 골프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균 타수가 다른 기업인들보다 월등하게 낮은 고수들이 많았다.
“골프 점수는 의욕과 반비례한다”
골프장에서 지나치게 의욕이 앞서면 샷이 망가지기 쉽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일에만 매달린다고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한때 기업사례연구학회 회장을 한 적이 있다. 성공한 기업과 실패한 기업들의 원인을 찾아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망한 기업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기업인이 지나치게 일에만 빠져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망하기 직전에는 임직원 모두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는 게 공통점이었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건 1988년이다. 처음 같이 나간 동반자가 당시 삼천리그룹 이만득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그때 이미 싱글을 치는 고수였는데 독특한 골프 철학이 있었다. 골프와 경영이 닮았다는 것인데 14개의 채를 골고루 잘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드라이버, 우드, 롱아이언, 숏아이언, 웨지, 퍼터가 있으니 용도에 맞춰 잘 써야 결과가 좋아진다는 주장이다. 기업에서도 드라이버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아이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퍼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인재를 잘 파악해서 용도별로 골고루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프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35년이 흘렀다. 그동안 운이 좋아 골프 방송 진행도 하고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골프 칼럼 책도 냈다. 고 김종필 전 총리를 포함한 정계 인사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고문 등 재계 인사들, 고 이어령 교수, 이길여 가천대 총장,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등 학계 인사, 가수 조용필, 조영남, 허영만 화백, 김홍신 작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필드를 돌았다. 많은 국내외 프로 선수와도 라운드를 함께했는데 캐나다에서 열린 시니어 프로대회 프로암에서 함께한 존 댈리 선수, 2022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디힐 챔피언십대회 프로암에서 폴라 크리머, 크리스티 커와 함께 라운드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골프는 소중한 학습이며 인생 멘토링이다.
골프는 심판이 없는 경기다. 그래서 혼자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와서는 골프야말로 수준 높은 컬래버가 필요한 스포츠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하늘은 캐디를 돕는 자를 돕는다”
요즘 필드에 나가서 캐디와 만나 인사할 때면 나는 이 말부터 한다. 골프 명언 중에 이런 말을 들어보았느냐고 하면 깜짝 놀라면서 활짝 웃는다. 이것이 캐디와 협업의 시작이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메이저대회 우승 15회 중 13회는 명캐디 스티브 윌리엄스와 함께했다. 윌리엄스는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타이거 우즈의 전속 캐디를 하면서 찰떡궁합으로 프로선수 못지않은 명성을 얻었다. 골프는 고독하게 혼자서 공 치는 게임이 아니다. 협업해야 성적도 좋아지고 행복감도 올라간다.
그동안 필드에서 함께한 분 중 고 이어령 교수의 귀한 말씀이 떠오른다. “세상만사는 본인이 노력해야 진도가 나아간다. 그러나 하늘에 닿을 만큼 노력해야 한다.” “하늘이 돕는 자가 최종 승리자가 된다. 하늘을 감동시켜라.”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프로들은 누구와 컬래버한 것일까. 캐디인가 갤러리인가. 아무래도 하늘에 계신 그분과 컬래버하지 않았을까. 골프도 경영도 협업에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