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말 크루즈(왼쪽)  공동 창업자 겸수석 디자인 책임자(CDRO)재클린 크루즈공동 창업자 겸최고경영자 (CEO) 사진 레카라
이세말 크루즈(왼쪽)  공동 창업자 겸수석 디자인 책임자(CDRO)재클린 크루즈공동 창업자 겸최고경영자 (CEO) 사진 레카라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고 천연 가죽을 만들 때 연간 4000억L의 물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 1%만 써서 바이오 가죽을 만든다. 자연에서 탄생한 제품인 만큼 폐기물은 퇴비로도 재사용할 수 있다. 거의 완벽한 제로웨이스트(Zero-waste) 공정을 통해 탄생한 ‘바이오 가죽’은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 정착될 것이다.”

페루의 비건 패션 스타트업 레카라(Le Qara)의 재클린 크루즈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매년 38억 마리의 동물을 도축하지 않고도 실제 동물 가죽과 흡사한, 어떤 면에서는 그를 능가하는 바이오 가죽 소재를 개발한 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포함해 전 세계 200여 개 패션 기업에서 러브콜을 받았다”면서 “주부들이 먹는 제품을 살 때 친환경 성분을 확인하듯, 패션에도 환경에 무해한 제품을 선택하는 분위기는 조만간 대세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레카라가 만든 바이오 가죽은 모피, 천연 가죽, 실크 등 동물을 살육해 얻는 동물성 소재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세균, 곰팡이, 효모균 같은 미생물들을 조합하고 변형시켜 만든다. 자연에서 탄생한 제품인 만큼 폐기물도 퇴비로 재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환경 오염이 ‘제로(0)’에 가깝다. 실제 동물성 가죽과 비교해도 촉감이 부드럽고 소가죽만큼 질기다. 환경 오염 주범으로 꼽히는 패션 분야에서 지속 가능 솔루션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는 레카라의 향후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레카라의바이오 가죽. 사진 레카라
레카라의바이오 가죽. 사진 레카라
바이오 가죽으로만든 가방. 사진 레카라
바이오 가죽으로만든 가방. 사진 레카라

두 자매가 함께 ‘바이오 가죽’을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페루의 ‘아레키파(Arequipa)’라는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곳은 가죽, 섬유, 직물 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인데 공장에서 흘러나온 폐수와 잔류물들이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특별히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향이 파괴되는 모습에 큰 경각심을 갖고 도전의식이 생겼다. 이 문제는 전 세계 공통된 이슈라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생명공학과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동생(이세말 크루즈)이 2017년 바이오 가죽을 만드는 실험에 먼저 뛰어들었고, 1년 후 첫 번째 시제품이 나왔을 때 나도 산업 엔지니어로 10년 동안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합류해 2018년 창업했다. 여기에 100% 올인한 것이다.”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을 텐데.
“사실 처음엔 자체 연구소 시설도 없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겨우 장소를 구해서 바이오 가죽에 사용할 미생물 조합을 하나하나 찾아갔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섬유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독성을 내뿜는 패션 업계에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도 완전한 주류는 아니지만, 페루 시장에서는 환경친화적인 대체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눈여겨보고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바이오 가죽이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
“레카라의 바이오 가죽은 공정 과정에서 독성 화학 물질이나 플라스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세탁 과정에 쓰이는 물에도 어떠한 잔여물도 남기지 않는다. 물론 제품 자체도 훌륭하다. 100도의 온도와 압력을 견디고 2788psi(1평방인치당 파운드 압력)의 인장 강도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의 내구성을 갖췄다. 실제 소가죽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촉감이어서 고급 제품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쉽다. 패션 산업 외에도 다른 소비재, 자동차 내부 인테리어 제품, 화장품 및 의약품 등 다른 산업에도 확장할 수 있다. 품질이 들쑥날쑥해 일관성을 갖기 힘든 동물 가죽의 단점마저 보완했다.”

몇 년 전부터 비건 열풍이 패션 업계에도 불고 있다. 실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럭셔리 브랜드를 포함해 전 세계 200개 이상의 패션 기업에서 이미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현재는 20여 개 브랜드와 상업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 중이다. 그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딱 하나다. 친환경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눈을 떴고,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친환경 가죽 시장 역시 10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 들어 레카라에 러브콜을 보내는 회사가 부쩍 많아진 것도 세상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추가로 연구하고 있는 분야도 있나.
“바이오 가죽 외에도 미생물 기반의 바이오 색소(염료) 개발을 하고 있다. 미생물을 활용해 만든 제품들은 모두 공정 과정에서 어떠한 독성 화학 물질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죽이나 염료 외에도 이 같은 공정은 분야를 불문하고 확장 가능하다고 본다. 지속 가능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

레카라는 H&M 재단으로부터 지난 2019년 패션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를 수상했다. 2022년에는 외국인 기술 창업자를 발굴해 한국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선정돼 한국 시장 진출 채비를 갖췄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지금은 패션 산업계를 단 하나의 생체 재료(미생물)로 뒤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보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글로벌 명품 소비 세계 10위권에 들고, 소비자들이 지속 가능성에 높은 가치를 둔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한국의 패션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 있으며, 우리는 협업할 다양한 예비 패션 브랜드들에도 열려 있고, 가치관에 공감하는 한국 과학자들과도 함께 일하고 싶다.”


Plus Point

‘비건 레더’에 투자하는 명품 브랜드들
“에르메스·구찌·테슬라도 주목”

사진 구찌
사진 구찌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는 등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대안으로 ‘비건 레더’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악어 백, 타조 백, 낙타 백 등 초호화 명품 가방으로 유명한 에르메스는 버섯 균사체를 이용한 가죽으로 만든 빅토리아 백(Victoria Bag)을 공개했다. 

구찌 역시 목재 펄프와 비스코스 등 식물성 원료 기반의 비건 레더를 개발해 데메트라(Demetra)로 상표 출원했다. 신발, 액세서리, 핸드백 등 일부 컬렉션에서 활용하고 있다. 루이비통 역시 옥수수를 소재로 만드는 90% 리사이클, 바이오 소재의 비건 풋웨어 찰리 스니커즈를 선보였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비건 바람은 불고 있다. 이미 메르세데스-벤츠는 버섯과 선인장 가죽을 활용한 전기차, 벤틀리는 포도 껍질로 만든 인테리어가 특징인 전기차 콘셉트를 공개했다. 

볼보는 2030년까지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 자동차 출시를 약속했고, 테슬라 역시 차량 내부에 비건 레더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전효진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