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경제 문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경제 전문 매체를 자주 접하는 것이 좋다. 특히 요즘 같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시대에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서민들의 전세자금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자동차 할부금융의 지출 부담이 커지며, 술자리 신용카드 사용이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국내적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외국의 통화정책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홀수 달(1·3·5·7·9·11)과 결산 월인 12월, 6월(반기)에 금리 결정 회의를 여는 반면,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은 매 분기 두 번씩(3·4, 6·7, 9·10, 12·1) 통화정책회의를 개최한다. 참고로 일본과 유럽의 결산 월은 3월과 9월(반기)이다.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지만, 일본은행의 경우 매우 이해하기 힘들다. 용어가 낯설기도 하지만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내용의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정책 목표는 물가 상승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률을 2%로 ‘낮추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지만, 일본은행의 경우 2%로 ‘높이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왜 그럴까. 일본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업 부문은 여전히 흑자를 내고 있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고, 가계 부문은 임금 정체와 고령화의 여파로 소비 여력이 바닥나 버렸다.
일본은행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버슈트 코밋먼트’ ‘마이너스 금리’ ‘일드커브 컨트롤’ ‘자산 매입’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운용하고 있고, 이들을 포괄해 ‘장·단기 금리 조작을 통한 양적·질적 금융완화’라고 부르고 있다. 난해한 말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각 정책을 자세히 살펴보자.
‘오버슈트 코밋먼트(Overshoot Commitment)’, 원래 오버슈트는 ‘측정치가 목표치를 초과하는 현상’을 의미하고, 코밋먼트는 ‘자금 투입’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자를 결합해 보면, 일본은행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 2%를 초과 달성(오버슈트)하기 위해 본원통화, 즉 중앙은행에서 새로 찍어내는 돈을 민간 부문에 무제한 투입(코밋먼트)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행도 미 연준과 마찬가지로 물가 안정을 지향한다. 다만 미 연준은 물가를 낮추는 것을 지향하고, 일본은행은 물가를 올리는 것을 지향하고 있을 뿐이다.
국채 매입을 통한 저금리 유지
‘일드 커브 컨트롤(Yield Curve Control)’.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수익률곡선 관리’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떤 자산의 수익률을 관리하겠다는 것일까.
여기서는 ‘10년물 국채금리를 0%로 유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일본은행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해 국채 가격을 끌어올림으로써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단기금리인 기준금리를 조작하지 않고 장기금리인 국채금리를 조작하겠다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은 ‘기준금리’를 대상으로 한다. 기준금리란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예금한 돈(지준예치금)을 주고받는 하루짜리 대출금리를 말한다. 일본의 경우 수십 년간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기준금리가 이미 0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단기금리를 조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금리를 0 이하로 낮출 수 없는 상황을 가리켜 경제학자들은 ‘금리의 제로 하한(zero-lower bound)’이라고 부른다. 단기금리가 ‘금리의 제로 하한’에 도달함에 따라 단기금리 대신 장기금리인 10년물 국채금리를 조작하겠다는 것이다.
‘지정가격(지치) 오퍼레이션(指値 Operation)’.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은 공개 시장 조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공개시장 조작이란 중앙은행이 입찰자가 되고, 상업은행들이 응찰자가 돼 채권을 사고파는 절차를 말한다. 입찰은 응찰자(상업은행)들이 비밀리에 입찰 가격을 제시하면 입찰자(중앙은행)가 가장 유리한 가격을 제시한 응찰자를 선택해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다급해진 일본은행은 편의점에서 가격표를 붙여 물건을 팔듯이 미리 가격을 제시하고 국채를 매매하고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지정가격 오퍼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대출·주식·부동산 시장 부양
‘마이너스 금리(Negative Interest Rate)’. 원래 예금이자는 예금채무자(은행)가 예금채권자(예금주)에게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를 부과하면 예금채권자가 예금채무자에게 이자를 지급하게 된다.
이 경우 명칭은 금리지만 그 실질은 수수료에 해당한다. 일본은행이 초기 금본위제로 돌아가서 예금주인 상업은행에 보관 수수료를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지자 기업과 가계 대출이 위축되고, 상업은행의 여유자금이 중앙은행으로 환류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상업은행이 여유자금을 중앙은행으로 가져오지 못하도록 벌칙성 수신금리를 부과하는 것이다.
‘자산 매입’. 일본은행은 국채 이외에도 ETF(주가지수펀드), J-REIT(부동산투자신탁), CP(기업어음), 회사채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매입하고 있다. 말이 좋아 자산 매입이지 결국 일본은행은 자신의 금고에서 돈을 풀어서 주가를 유지하고, 부동산 가격을 지지하며, 급전이 필요한 기업에 자금을 대주는 것이다.
어느 신흥국 중앙은행 직원들은 물가 안정(화폐 가치의 안정)과 금융 안정(금융 시스템의 안정)이 전혀 별개라고 말하지만, 일본은행 직원들은 양자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고독한 미식가
두꺼운 안경을 쓴 심약한 중앙은행가들은 알고 보면 거칠고 우락부락한 뒷골목 사나이들과 마찬가지로 은어, 즉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 만들기를 좋아한다.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가들이 인플레이션 타기팅(우리는 인플레이션만 잡겠다), 포워드 가이던스(좋게 말할 때 모두들 조심하라), 자이언트 스텝(비명이 나올 정도로 기준금리를 올려주마), 양적완화(기준금리가 바닥이니 돈을 직접 풀어줄게) 등의 은어를 만들어 냈다면, 일본은행은 일드커브 컨트롤(단기금리가 바닥이니 장기금리도 낮춰주마), 오버슈트 코밋먼트(물가가 오를 때까지 무제한 돈을 풀어줄게) 등 생소한 신조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그들이 포장하는 것만큼 신비롭거나 복잡한 일이 결코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은어는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고로(井之頭五郎)상이 남대문 분식점에서 별 모양의 두부와 김치가 떠다니는 우동을 한 입 먹고 나서 “반 고흐 우동이다!” “별이 빛나는 밤의 우동이다!”라고 탄성을 지르는 것과 비슷하다. 1694년 최초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 만들어진 이래로,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돈을 새로 찍어내거나 이미 찍어낸 돈을 회수하는 일밖에 없고, 그 수단은 대출과 채권 매매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