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뜨거운 종목 중 하나가 레인보우로보틱스다. 인간형 로봇 ‘휴보(HUBO)’를 개발한 오준호 카이스트(KAIST) 교수의 회사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에 1월 2일 3만2600원이었던 주가가 설 연휴 직후 8만9100원까지 뛰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같은 달 3일 공시를 통해 삼성전자 대상으로 주당 3만400원에 194만 주를 신주 배정하는 유상증자에 나선다고 밝혔다.
2021년 2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전도유망한 회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아직 시험대에 올라 있다. 시가총액은 1조5000억원대이지만, 2022년 3분기까지 매출은 104억원, 영업이익 11억원으로 아직 스몰캡(소형주) 기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지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현 주가가 타당하다고 납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삼성전자의 선구안이 완벽하다고도 볼 수 없다. 투자자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선임 이후 첫 대형 투자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협력 업체 투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진행 중이며 투자 성적표 또한 딱히 좋다고 보기 힘들다. 분기마다 수조원대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가 기껏해야 수백억원대에 불과한 투자를 집행하는 목적 또한 이익 극대화보다는 상생에 가까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 투자 유치 기업 15곳 중 4곳만 주가 올라
계열사 외에는 주주 관계로 얽힌 적이 없던 삼성전자가 투자에 나서 화제가 된 기업은 2009년 3월 에이테크솔루션이 사실상 처음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에이테크솔루션에 직접 투자하지는 않았고,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우회 투자한 뒤 추후 지분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삼성벤처투자가 에이테크솔루션에 263억원을 투자할 당시부터 증권 업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삼성전자가 투자한 것’이란 소문이 돌았고,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에이테크솔루션 투자는 결론부터 말하면 실패다. 263억원을 투자해 주당 1만6550원에 15.92%의 지분을 인수했는데, 현재 가치는 153억원에 불과하다.
에이테크솔루션은 금형 업체다. 금형이란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액체 상태로 흘려 넣어 각종 부품을 제조하는 금속 틀이다. 에이테크솔루션은 투자 유치 당시 글로벌 상위권 금형 업체였으나 금형 시장이 플라스틱에서 금속으로 바뀌는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해 뒤처졌다. 지금은 간혹 자율주행 기술인 라이다(LiDAR) 관련 기업으로 거론되는데, 정말로 새 시대의 주도 기업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삼성전자가 비슷한 시기에 투자했던 신화인터텍은 ‘중립’이다. 광학필름 및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업체인 신화인터텍은 삼성전자로부터 시설 투자를 하라며 300억원을 투자받았다. 삼성그룹은 한때 신화인터텍 직접 인수를 고려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최대 주주 오성엘에스티가 태양광 사업 부진으로 위기를 겪고, 그 와중에 효성그룹이 직접 인수에 나서면서 삼성전자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는 식으로 투자했는데, 결국 원금을 회수하고 물러선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22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투자로 인연을 맺은 IPS(현 원익홀딩스)는 지분 투자만 놓고 보면 절반의 성공이다. IPS는 몇 번의 인수합병과 상장 폐지, 분할을 통해 원익홀딩스와 원익IPS로 나뉘었는데, 원익홀딩스의 지분 가치는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사업 회사(원익IPS) 주가만 두 배 이상 올랐다. 다만 투자 기간이 10년이 넘는다는 점에서 완전한 투자 성공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비슷한 사례인 솔브레인 투자도 성적은 유사하다. 모회사 솔브레인홀딩스 지분 가치는 급락했고, 자회사 솔브레인 가치만 올랐다.
솔브레인처럼 일본과 무역 갈등 때문에 진행된 2017~2020년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사 투자도 유사하다. 동진쎄미켐처럼 지분 가치가 오른 사례도 있지만, 불과 2~3년 만에 반토막 아래로 내려앉은 에스앤에스텍, 뉴파워프라즈마, 에프에스티, 디엔에프 등의 사례도 있다. 2008년 이후 삼성전자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15개 회사 중 주가가 오른 기업은 네 개 사에 불과하다. 소부장 기업 중 일부는 삼성전자와 함께 차세대 먹거리(시스템 반도체 등)에 투자하고 있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현재 성적표로만 보면 낙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올해 협동 로봇 판매 성적이 관건
증권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투자 유치 전부터 올해가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있어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었다.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취득한 자금으로 생산 시설을 확대해 올해 매출이 대폭 증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족보행 로봇 ‘휴보’로 유명하지만, 사실 휴보를 비롯한 이족보행 로봇은 신기할 뿐 실생활에 적용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인간의 움직임을 따라 한다는 것은 난도가 높지만 반대로 말하면 인간이 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개발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 때문에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당장 대규모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협동 로봇이다. 협동 로봇이란 기존 공장 생산라인의 작업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업 환경에 녹아들어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로봇이다. 로봇 팔의 형태로 물류 공정 작업을 지원하거나 용접, 연마 등의 과정을 대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령화와 인구 증가율 둔화, 언택트(untact·비대면) 문화 확산, 힘든 노동 기피 현상 등으로 협동 로봇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국제로봇연맹(IFR)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7억1000만달러(약 8733억원) 규모인 협동 로봇 시장은 2025년 123억달러(약 15조129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2022년 10월 44억원을 들여 세종시 일대에 토지를 확보, 연내 생산 능력이 1000대에서 3000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상상인증권은 올해 레인보우로보틱스 매출이 300억원, 2025년엔 700억원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4족 보행 로봇 RBQ-3, RBQ-5가 올해 상용화될 예정이다. 감시 및 정찰을 비롯해 물류, 안내 등에 적용될 계획인데 군용 로봇 신속개발사업(2024년 시범 운용 예정)에도 참여하기로 해 기대감이 한층 더 높아졌다.
레인보우로보틱스를 향한 전망은 장밋빛 그 자체이지만, 어느 대기업이든 놓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 변수다. 덴마크 기업 유니버설로봇이 업계 선두이고, 국내 기업 중에도 두산로보틱스 등이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공교롭게도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 투자 유치 뉴스로 1월 25일 시가총액이 ㈜두산을 뛰어넘었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실물경제에서도 삼성 파트너로서 두산을 비롯한 다른 대기업을 물리치고 로봇 강자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