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약 1551억원’ 대유위니아(위니아)는 소음 저감을 위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이 정도 시간과 돈을 들였다. 저소음이나 냉각 등에서 좋은 성능을 보유한 위니아가 김치냉장고 등 가전제품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기술의 감정평가액은 650억여원에 달했다. 하지만 위니아를 대표했던 이 기술은 하루아침에 경쟁사로 넘어갔다. 경동나비엔(경동)의 에어디자인(Air Design)연구소 소음진동팀, HAVC(Heating·Ventilating·Air Conditioning) 연구소 토탈 에어케어(Total Air Care)팀으로 이직한 연구원들에 의해서였다.

위니아는 법무법인 율촌을 선임해 민·형사 소송에 대응했고, 경동은 법무법인 광장을 선임했다. 이들의 맞대결은 결국 위니아의 일부 승소로 마무리됐다. 경동과 기술을 유출한 이직자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고 3억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공정 경쟁’과 ‘기술 유출 관련 제도의 허점’을 환기하는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료 10만 건 유출해 구속기소

경동 직원의 내부고발로 사건이 시작됐다. 이 직원이 2017년, 2018년 각각 위니아에서 경동으로 이직한 강모씨와 김모씨가 위니아의 기술 자료를 가져와 사용하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위니아에서 소음·진동 부문 연구원이었던 강씨는 경동 에어디자인연구소 소음진동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씨도 경동에 입사해 환기 제품 개발을 담당했다. 이들이 위니아에서 가져온 자료들은 업무 서류 형태로 만들어져 두 사람의 책상에 보관돼 있었고, 경동의 사내 서버에도 저장된 상태였다는 게 직원의 진술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과학기술범죄수사부(당시 부장검사 조용한)는 지난 2018년 10월부터 속전속결로 조사를 진행했다. 강씨는 같은 해 6월 위니아를 퇴사하며 에어컨과 김치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3차원(D) 도면 등 핵심 기술 자료를 이동식저장장치(USB)와 외장 하드 등에 내려받은 뒤 경동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김씨도 주요 설계 도면을 빼내 신제품 개발에 활용한 혐의를 받았다. 경동은 이를 관리하지 않았고,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두 사람과 함께 수사 대상이 됐다.

강씨와 김씨가 경동으로 빼돌린 기술 자료는 약 10만 건 정도다. 위니아의 영업 기밀인 김치냉장고와 대용량 냉장고의 3D·2D 파일 9만1732개와 설계 도면 4639개, 에어컨 개발 문서, 연구보고서, 소음진동 업무와 관련된 부품 등의 관련 자료였다. 그중에는 ‘에어컨용 시로코팬 시험 규격’ 등 핵심 기술도 포함돼 있었다. 검찰은 경동이 이 자료를 청정 환기 제품 개발에 사용할 목적으로 빼돌렸다고 봤다. 같은 해 12월 구속기소된 이들의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강씨에게 징역 1년 10개월, 김씨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경동에 벌금 50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1심 무죄 판단이 유죄로 바뀐 부분도 있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팬 모터 회전수에 차이를 두거나 범위를 참조하는 방법으로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시간 등을 줄이는 데 (위니아의 영업비밀이)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확정됐다.

‘내부고발자의 생생한 증언’…율촌의 한 수

형사소송의 판결이 확정된 뒤 민사소송도 진행됐다. 사건을 수임한 율촌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최우선으로 뒀다. 내부고발자가 이미 경동을 퇴사한 데다 증인 출석도 두 차례나 거부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의 생생한 증언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소송을 이끈 이재근(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는 “사건이 벌어졌던 상황과 경동 내부에서 (기술이) 사용된 정황 등, 사실 관계를 법정에서 현출(現出)했다”고 말했다.

율촌의 이 같은 전략에는 기술 유출 사건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형사 사건에서 재판부는 경동의 ‘관리·감독 소홀’은 인정했지만, 두 사람과 공범인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경동도 ‘직원들 개인의 일탈일 뿐 우리와는 관련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 변호사는 “형사 사건에서와 동일한 사실 관계만 인정된다면 실제보다 불리해질 수 있었다”며 “그래서 퇴사한 내부고발자의 진술을 통해 경동이 PC 교체와 서버 삭제 등을 지시한 정황 등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율촌은 유출된 기술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경동으로 유출된 기술은 소음진동을 줄이는 기술, 공조기기에 시로코팬을 활용하는 기술 등이었는데, 맥놀이 현상(주파수가 비슷한 두 개의 파동이 간섭을 일으켜 새로운 합성파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활용해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게 영업비밀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위니아가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20여 년간 1551억원을 투자하며 노하우를 쌓았다는 점과 최소 63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점도 함께 주장했다. ‘이미 나온 기술이어서 가치가 없다’는 경동 측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의도였다.

손해배상 액수도 관건이었다. 유출된 위니아의 기술이 활용된 제품을 경동이 판매하기 전 수사가 시작됨에 따라, 경동의 어떤 제품에 해당 기술이 적용됐는지 증거를 확보할 시간이 부족했다. 정확한 손해 산정이 어렵고, 소송 자체가 기각될 수 있는 위험요인이 생긴 것이다. 율촌은 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2 제5항을 근거로 들어 법리적으로 접근했다. ‘손해가 발생한 것은 인정되나 손해액을 입증하는 것이 곤란한 경우 재판부가 직권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활용한 것이다.

법인의 민사상 책임도 인정…배상액 3억3000만원은 아쉬워

수원지법 민사14부(부장판사 부동식)는 지난해 11월 “강씨 등은 계약 관계에 따라 영업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위니아에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 사건이 퇴직자들의 단순 일탈이 아니라는 점 △경동도 엄연한 영업비밀 침해 행위자라는 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점 △내부고발자에 대한 퇴사 독촉과 증거 은닉이 있었다는 점 등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경동에 “해당 자료가 담긴 저장 매체와 출력 자료를 삭제해야 한다”고도 했다.

율촌의 주장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다만 위니아의 손실 규모와 경동이 얻은 이익을 추정하기 어렵고 △영업비밀이 경동의 서버에 저장돼 있던 기간이 약 1개월에 불과한 점 △해당 자료를 열람했거나 할 수 있는 직원이 많지 않았다는 점 △경동의 업무에 사용됐다고 명백하게 입증된 영업비밀이 1건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3억3000만원으로 결정했다. 애초 청구한 금액(5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재판부는 또 영업비밀로 인정되지 않은 기술은 경동이 사용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민·형사상 법적 책임이 모두 부과됐지만, 아쉬움은 남는다는 게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이 사건의 경우 기술 유출이 일어난 시점부터 수사가 시작되기까지 기간이 짧다. 경동에서 위니아 기술이 들어간 제품을 만들기 전에 수사가 시작되면서 일련의 행위가 멈췄기 때문에, 기술 개발을 위해 투입된 비용에 비해 배상 액수가 작고 추후 제품들이 개발돼도 손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승소를 함께 이끈 임형주(35기) 변호사는 “손해배상은 과거의 침해에 대한 배상의 성격”이라며 “하지만 판결 이후 해당 기술이 사용될 가능성과 관련해 장래 이행의 소의 형태로 손해액을 실질화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자료를 폐기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미 경동은 위니아의 기술 자체를 경험해 어느 정도의 노하우를 확보했을 것으로 보여,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금 3억3000만원에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것처럼 보인다는 취지다. 이에 따른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IP팀이 토스하고 송무팀이 스파이크

이번 소송은 율촌의 지식재산권(IP)팀과 송무팀의 합작품이다. IP팀을 이끄는 임 변호사가 수사 초기 단계부터 형사 재판 전 과정을 대리한 결과였다. 이 경험은 문제가 된 기술을 ‘특정’하고 기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민사소송 과정에서 문서 제출명령이 다수 있었는데, 어떤 문서를 어떤 대목에서 제출할지 하나씩 협의한 결과였다. 이 변호사는 “승소를 위해서는 기술 전문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했고, 법리를 설명하는 부분도 중요했기 때문에 정기회의를 하면서 지식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