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KAIST 문술미래전략 대학원 겸직교수,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지난 1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한 젊은 여성이 거리에서 지도에 쓸 데이터를 수집하던 로봇개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랐다. 인터넷에는 해당 여성을 비난하는 글이 잇따라 올랐다. 사람이 로봇개를 학대했다고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미국 로봇 제조업체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엔지니어가 로봇개를 발로 차는 영상을 공개했을 때도 사람들은 ‘잔인하다’ ‘로봇이 불쌍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적인 로봇 과학자인 김상배(48)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로봇을 사람처럼 여기는 의인화(擬人化)가 우리 인지 과정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어 발생한 일”이라고 말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엔지니어는 로봇의 균형을 잡는 알고리즘을 시험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우리 뇌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로봇이 버둥거리는 모습에 먼저 압도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기동성이 뛰어난 로봇개인 ‘미니 치타’를 개발했다. 이미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때인 2006년 벽을 기어오르는 로봇 도마뱀인 ‘스티키봇(Stickybot)’을 개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로봇은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발명품’에 선정됐다. 2018년부터 네이버랩스의 기술고문으로도 일하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로봇에 대한 의인화는 학대 논란을 넘어 로봇 기술 개발에도 지장을 준다”며 “우리가 하기 힘든 일을 로봇이 잘한다고 기술이 다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로봇을 발로 차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로봇개는 기계일 뿐이다. 발로 찬다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데 그 자체로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나. 로봇을 함부로 대하면 폭력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 비디오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비판한 것과 같이 근거가 부족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학대라고 분노하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자동으로 모든 것을 사람 기준으로 판단한다. 엔지니어가 로봇개를 시험하기 위해 발로 찬 것일 뿐이지만, 이성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우리 뇌에는 당장 사람이나 동물이 상처를 입고 버둥거리는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로봇을 함부로 대하는 행동이 정당화될까.
“어릴 때부터 로봇을 함부로 대하면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자라는 세대에게 로봇이 누군가의 재산이므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교육을 할 필요도 있다. 반대로 로봇 개발자는 거리에서 로봇이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로봇에 대한 의인화가 연구개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우리가 개발한 미니 치타가 뒤공중제비를 하면 사람들은 이제 로봇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중제비는 한 번 도약하면 환경 변화가 없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행동이다. 그보다 시시각각 환경이 변하는 거리를 네 발로 걷는 게 더 어렵다.”
로봇이 잘하는 행동을 보고 착각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로봇이 사람보다 빠르고 강하거나 정확해도 특정 동작만 가능하지, 신발 끈을 묶거나 옷을 입는 단순한 행동도 하지 못한다. 인공지능(AI)이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이겨도 로봇에 빵에 잼을 바르는 행동을 가르치지 못한다.”
아이 가르치듯 잼 바르는 동작을 일일이 알려주면 되지 않나.
“최근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AI인 챗GPT가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잼 바르는 것이나 방 청소가 사람에겐 쉽게 이해되는 말이지만, 이를 컴퓨터에 정량적인 수치로 알려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로봇개는 이미 다양한 곳에서 상용화되지 않았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은 상용화됐다. 복잡한 공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사람 대신 검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얼마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드론이 더 잘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판매된 스팟이 1000여 대 정도다. 시장이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로봇개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로봇개를 만드는 것은 돌아다니기에 두 발보다 네 발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발전해 사람에게 필요한 일을 하려면 팔과 손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로봇개가 팔을 자유자재로 쓴다면 물속에 들어가 용접을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문을 여는 동작도 힘든 상태다.”
인간형 로봇을 보면 지금도 손을 쓸 수 있지 않나.
“여기서도 로봇의 의인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를테면 로봇 손이 루빅스 큐브를 조작하는 영상을 보면 AI가 이 정도로 복잡한 걸 할 수 있으니 더 간단한 것들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큐브를 조작한다는 아주 제한된 과업을 위해서만 훈련됐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사람이 손을 쓰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낸다고 생각해 보자. 눈으로 보지 않고도 바로 꺼낼 수 있다. 어느 손가락을 썼는지 물어보면 아무도 답을 못한다. 그냥 한 것이다. 이런 무의식적인 동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동작을 언어나 수학으로 일일이 명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I가 스스로 학습하면 가능한 일 아닐까.
“시뮬레이션(가상실험)을 통해 학습하는 일은 가능하다. 스위스 연구진은 로봇개에 같은 방법으로 넘어져도 외부 명령 없이 스스로 일어나게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일이면 몰라도 일상의 다양한 상황을 모두 시뮬레이션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로봇을 개발해야 하나.
“우리가 손발을 쓰며 하는 모든 일이 실제로 우리 언어를 통해 그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연속된 동작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무의식에서 자동으로 일어난다. 연구자 스스로 관용적인 언어의 틀에서 벗어나 기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로봇의 의인화를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이버랩스가 개발 중인 로봇은 어떤 장점이 있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 도시 ‘네옴시티’에 네이버의 배달로봇을 도입하려고 논의 중이다. 배달로봇은 솔직히 다 나온 기술이다. 네이버는 이런 로봇에 네트워크, 클라우드(cloud·인터넷상 저장 공간) 기술이 있어 남들보다 훨씬 더 완벽한 솔루션을 낼 수 있다. 똑똑한 AI가 아니라도 여러 기술을 결합해 실수할 확률이 거의 없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