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평화헌법을 채택했던 일본이 최근 방위력 증강 움직임을 보이며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비를 2027년까지 GDP의 2%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식적인 이유로는 자국 안보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세계 각국이 방위비를 증액하고 있는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평화헌법을 수정해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월 13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자국의 대규모 군비 증강 계획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정상회담 내용을 전하며, “(두 정상이) 중국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본이 군사 강국으로 탈바꿈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의 부상(浮上), 북한의 상습적인 미사일 도발 등 대외적 위험에 대비해 미·일이 변함없는 협력 의지를 드러냈다”면서 “양국 동맹 강화를 아시아 안보의 린치핀(수레바퀴를 고정하는 핵심 부품)으로 삼으려는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기시다 총리는 정작 자국 내에서는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방위비를 늘려야 한다는 당위성 자체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었던 일본 여론은 방위비 증액을 위한 정부의 증세안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증세 반대 여론은 70%에 가까운 반면, 찬성은 겨우 20%대였다. 지난 1월 말 교도통신 조사에서 기시다 총리가 방위비 증액을 위한 증세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응답자의 77.9%가 “증세 전에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로 국민의 신임을 물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서도 반대가 터져 나왔다. “방위비 증액으로 인해 기시다 총리가 위기에 몰렸다”는 관측도 불거지고 있다. 필자는 “나라 빚을 늘리지 않고 부가가치세(VAT·부가세) 세율 인상 등 다른 방법을 통해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위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증세안을 둘러싸고 일본 내 반대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위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증세안을 둘러싸고 일본 내 반대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5년 뒤 일본의 국방비를 현재의 두 배, 일본 GDP의 2% 정도인 43조엔(3300억달러)까지 늘리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놀랍게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이 재무장 계획 자체는 정계나 대중의 반발을 사지 않았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중국 해안 경비정의 일본 해안선 침범, 러시아의 쿠릴 열도 논쟁 등 일본이 처한 안보 위협 상황에서 대중은 이 같은 결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토 다카토시 컬럼비아대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히토쓰바시대 경제학 학·석사, 하버드대 박사, 현 도쿄 정책
연구 대학원대학 선임 교수, 
전 일본 재무성 차관
이토 다카토시 컬럼비아대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히토쓰바시대 경제학 학·석사, 하버드대 박사, 현 도쿄 정책 연구 대학원대학 선임 교수, 전 일본 재무성 차관

하지만 일본이 막대한 국방비를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논쟁거리다. 기시다 총리는 우선 세금을 올려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계획했고 집권 자민당 의원들에게 세부 계획을 고안할 것을 요청했다. 의원들이 발의한 증세안에는 개인 소득세와 법인세 그리고 담뱃값 인상 등이 포함됐다. 흔히 ① (일본의) 소비세로 알려진 부가세 세율 인상은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증세안은 방위비 확충에 필요한 예산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 총리는 대중의 원성과 자민당 내부의 거친 반발에 맞부딪쳐 계획의 핵심적인 부분을 다음 회계 연도로 미뤘다. 자민당 내부 반란은 기시다 총리의 전임자이자 2022년 7월에 암살된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지자들이 주도했다. 아베의 지지자였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보 담당상은 국방비 증액은 아베 전 총리의 경제 어젠다에 맞춰 새로운 정부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의 빚을 통해 국방비 증액을 메우는 방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선 첫째로 이미 250%를 넘은 일본의 GDP 대비 부채율을 높이는 것은 국가 신용 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세금 인상 반대로 유명했던 아베 전 총리조차도 8년 재임 기간 에 빚을 늘리는 대신 세수(稅收) 확충 카드를 선택했다. 소비세를 5%에서 10%로 인상한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늘어난 부채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제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일본이 공격당하거나 침략당한다면 정부는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국방 능력을 단기간에 빠르게 강화해야 하므로, 국방비 증액을 위해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전쟁이나 경기 불황 상황이 아닐 때는 점진적인 재정 강화 정책이 필요하다. 취약한 경제는 국방력 약화만큼이나 위험하다. 구소련이 이러한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국가에서든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정부가 시민과 계약을 시행하고 시민을 폭력과 절도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상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이른바 ‘야경국가(夜警國家)’에 대한 이상을 반영하는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 하지만 일본의 보수적인 자민당은 ② 현대통화이론(MMT)의 열렬한 지지자를 가장한다. 심지어 MMT를 빛바래게 만드는 현재의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조차도 무제한 대출은 건전한 경제를 운영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 

MMT 지지자들은 종종 일본이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막대한 공공 부채는 국내 재정 기관과 일본 중앙은행에 의해 흡수됐고, 재정 입안자들은 차입 비용의 증액이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고 ③ 제로에 가까운 금리를 몇 년간 유지해왔다. 국가 채무를 주로 국내 기관과 가계 저축자들이 지고 있는 한, ④ 패닉 셀링으로 촉발된 갑작스러운 재정위기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이 당장 채무불이행을 할 가능성이 작다는 사실이 현재 상황이 지속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래 세대는 부채를 통해 충당된 지출 비용에 대한 부담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일본의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지 않는 한은 그렇다.

막대한 적자를 감당하는 대신 일본 정부는 세금 인상을 통해 군비 증가 자금을 대야 한다. VAT 같은 소비세를 대폭 인상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법인세를 인상하는 방안은 대기업이 해외에서 발생한 수익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기피하게 할 것이고,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을 막을 것이다. 반면 VAT는 경찰, 군대 그리고 법정과 같은 정부의 필수 서비스의 대가로 지불하는 데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VAT는 사회 안전망, 연금, 의료 보험, 장기 돌봄, 정부의 낮은 출생률 장려 정책을 위한 자금 마련에만 사용될 수 있다. 정부가 국방비 마련을 위해 VAT 세율을 합법적으로 인상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다. VAT 를 늘림으로써 정부는 군비 증강을 위한 재정 여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일본의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보수주의) 경제 철학의 기본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더 많은 빚을 내는 것은 일본의 경제를 부실하게 하거나 국가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재정적 신중함은 그들이 목표한 바를 이루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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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비세(Japan consumption tax)
일본에서 상품을 살 때 상품값의 일정률로 부과하는 간접세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의 부가세에 해당함. 일본은 1989년 4월 소비세(3%)를 처음 도입했으며 1994년 4%, 1997년 5%, 2014년 8%, 2019년 10월 1일 10%로 순차적으로 인상. 수출 물품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소비세가 면제됨.

현대통화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
정부는 절대 파산하지 않을 것이기에 인플레이션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재정 적자 걱정 없이 돈을 찍어내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는 이론. 197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인 워런 모슬러가 주장했으며, 코로나19 이후 세계 대다수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음.

제로 금리(zero interest rate)
단기금리를 사실상 0%에 가깝게 만드는 정책. 명목이자율이 0%가 아니라 실질이자율이 0%에 가깝다는 의미. 이와 같은 초저금리는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며 소비 촉진을 통해 경기 침체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이점이 있음.

패닉 셀링(panic selling)
공황 매도. 어떤 특정 증권 혹은 증권 전반에 걸친 혼란스러운 매도 현상을 의미. 주로 ‘투매’라고 하며,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는 증권 소지자들의 급작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대량거래와 급격한 가격 하락이 수반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