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실력 못지않게 운이 작용하는 스포츠다. 상승세일 때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고, 내림세일 때 다시 올라갈 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정상급 선수가 된다. 
사진은 2019년 디오픈이 열린 북아일랜드의 로열 포트러시 연습그린. 사진 민학수 기자
골프는 실력 못지않게 운이 작용하는 스포츠다. 상승세일 때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고, 내림세일 때 다시 올라갈 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정상급 선수가 된다. 사진은 2019년 디오픈이 열린 북아일랜드의 로열 포트러시 연습그린. 사진 민학수 기자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프로 골퍼도 전반 9홀과 후반 9홀에서 전혀 다른 골퍼처럼 경기한다. 우승이 걸리면 더욱 그렇다.

하루는 60대 타수를 쳤다가 다음 날은 80대 타수를 기록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우승한 선수가 다음 대회 컷 탈락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골프가 상황에 따라 심리 변화가 크고 운동 수행 능력까지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마음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골퍼 브룩스 켑카는 US오픈 2연패(2017·2018), PGA챔피언십 2연패(2018·2019) 등 메이저 대회에 강해 ‘메이저 사냥꾼’으로 불렸으나 이후 부상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사진 민학수 기자
미국 골퍼 브룩스 켑카는 US오픈 2연패(2017·2018), PGA챔피언십 2연패(2018·2019) 등 메이저 대회에 강해 ‘메이저 사냥꾼’으로 불렸으나 이후 부상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사진 민학수 기자

UC 버클리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콜린 모리카와(26)는 2020년 PGA챔피언십과 2021년 디오픈에서 각각 처음 출전한 두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해내지 못했던 골프 사상 첫 기록이었다. 그는 데뷔 3년 만에 2021년 디오픈까지 5승을 거두었다. 대학 시절 공부도 잘했던 모리카와에게 골프는 투입과 산출이 똑 떨어지는 단순한 비즈니스 영역 같았다. 하지만 2021년 12월 히어로 월드 챌린지에서 5타 차 선두로 마지막 날 경기에 나섰다가 역전패당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당시 우승했다면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 그는 이후 우승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새해 첫 대회인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왕중왕전’인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는 마지막 날 6타 차 선두로 나섰다가 역전패당했다. 

모리카와의 부진은 기대와 부담이 만들어낸 ‘초크(choke·목 졸림, 질식)’ 현상에 무릎 꿇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초크 현상은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선수가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부담을 느끼며 수행 능력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전문가도 초보자 수준이 될 수 있다.

리디아 고(오른쪽)가 이민지와 함께 라운드에 앞서 웃고 있다. 천재 소녀라 불렸던 리디아 고는 4년에 걸친 슬럼프를 이겨내고 지난해 말 여자골프 세계 
1위로 복귀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리디아 고(오른쪽)이민지와 함께 라운드에 앞서 웃고 있다. 천재 소녀라 불렸던 리디아 고는 4년에 걸친 슬럼프를 이겨내고 지난해 말 여자골프 세계 1위로 복귀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월가(街)의 전설적인 투자자로 꼽히는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은 “일반적으로 모든 것은 오르내림이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라며 “대부분의 자연적인 것들은 상승기와 하락기의 사이클이 있고, 투자자 심리도 낙관론(주가 상승)과 비관론(주가 하락)을 오가는 아주 뚜렷한 사이클이 있다”고 말한다. 1995년 하워드 막스 회장이 만든 오크트리캐피털은 부실채권 투자에 강점을 가진 운용자산 1640억달러(약 205조원)의 초대형 자산운용사다. 막스 회장이 투자 철학을 적어 때때로 발표하는 ‘메모(보고서)’는 워런 버핏이 “메일함에 있으면 그것부터 읽는다”고 할 정도로 인정받는다.

그는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이란 저서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심리와 밸류에이션(valuation) 사이클이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아는 것이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심리에 도취한 사람들이 과도하게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하고 가격이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때 매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비관적인 전망에 사로잡혀 패닉에 빠진 투자자들이 밸류에이션에 상관없이 헐값에 주식을 팔아치울 때 용기를 내어 매수하는 것이다.”

하워드 막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다행히도 우리 오크트리는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질 모기지 거품이 커지고 있을 때 신용 사이클이 확장 국면에 있고 따라서 시장이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자산을 매각하고, 대규모 부실채권 펀드를 청산해서 소규모로 교체했다. 최대한 보수적인 자세로 위험에 대비하는 한편, 위기가 현실화해 부실채권 투자 기회가 생겨날 때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 차례 펀드를 모집해 막대한 자금을 준비해 놓았다.” 

그가 그렇게 한 근거는 뭐였을까. 2005년에서 2007년까지 그가 관찰한 바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아주 낮은 수준으로 낮췄다→국채 및 우량 기업 회사채의 수익률은 낮았고, 2000~2002년의 하락 때문에 주식에 환멸을 느낀 투자자들은 대체 투자 상품에 간절히 돈을 넣고 싶어 했다→투자자들은 2000년의 기술주 거품 붕괴와 2001~2002년의 통신주 하락 및 기업 스캔들의 고통을 떨쳐버렸다→따라서 위험회피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투자자들은 이국적이고, 구조화된, 합성 상품을 열망했다→앞의 모든 결과로, 형편없는 채권과 부실화된 구조화 상품, 검증되지 않은 대안 상품에 대한 시장이 활짝 열렸다.

마침내 예견했던 대로 위기가 찾아왔고,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신청을 했을 때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오크트리는 부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9월 15일부터 연말까지 15주에 걸쳐 한 주에 5억달러(약 624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금융 붕괴의 악순환은 리먼 브러더스와 함께 멈췄다. 오크트리가 사들였던 자산들은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그는 “사이클에 주의를 기울였더니 보상받았다”고 했다. 

대폭락장에서 하워드 막스가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생각의 흐름은 무엇이었을까. 리먼의 파산 신청과 함께→금융기관의 붕괴가 어느 정도로 진행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시장에는 지나치게 비관주의가 넘쳐났고, 자산 가격은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하락했다→전략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자본주의가 끝장난다면 매수하든 안 하든 별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세상이 끝장날 것이 아닌데도, 매수하지 않는다면 일을 제대로 못 한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투자자는 시장이 사이클의 어디쯤 있는지에 기초해 태도를 조정해야 한다. 시장이 사이클의 고점에 있을 때는 돈을 잃을 가능성을 제한하기 위해 더 방어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이 사이클의 저점에 있을 때는 기회를 놓칠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공격적이 되어야 한다.”

미래로 가서 뒤를 돌아보는 생각을 해보라고 그는 권한다. 2030년에 당신은 뭐라고 말할 것 같은가. 몇 년 후에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말이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often rhymes)”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투자 세계에서 상승과 하락은 계속 반복되며 사람들의 심리도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를 오간다. 

하워드 막스가 마켓 사이클의 법칙을 통해 전하려는 투자의 지혜를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불과 1~2년 전까지도 ‘영끌’해서 부동산을 사려던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는 사려는 사람들이 없어 미분양이 쌓이고 있다. 우수한 인력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급여를 대폭 인상하던 실리콘밸리 기업들에서 지금은 해고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저금리로 쓰레기 취급을 받던 현금의 가치가 올라가고 저금리에 취해 많은 대출을 끌어다 쓴 사람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ce)는 ‘지금은 실패했지만 회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지금은 축하받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끝도 없이 오를 것 같던 집값에도 하락이 찾아오고, 계속해서 잘나갈 것 같던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실적도 꺾이는 시기가 도래한다. 세상 대부분의 것은 사이클이 있고, 무엇이든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매우 드물다. 사이클을 무시하고 추세를 추종하는 것은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일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