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재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예일대 경제학 박사, 
현 한국경제학회장, 
전 한국계량경제학회장, 
전 서울대 경제연구소장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황윤재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예일대 경제학 박사, 현 한국경제학회장, 전 한국계량경제학회장, 전 서울대 경제연구소장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연초부터 물가가 고공행진 중이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지난 1월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를 기록했다. 2022년 10월 이후 한풀 꺾이는 듯했던 인플레이션이 석 달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나 기준금리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기준금리(연 3.5%)보다 낮아졌다. 국채 금리는 향후 기준금리 방향에 대한 시장 기대를 반영하는데, 채권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고물가 흐름은 금리 인상에 불을 지피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물가 억제를 위한 금리 인상을 멈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2월 초 한국경제학회 회장에 취임한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2월 9일 인터뷰에서 이런 시장 분위기에 경종(警鐘)을 울렸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라면서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긴축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고물가 기조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주된 이유로 올해 들어 본격화된 전기료, 가스요금, 교통비 등 공공요금 인상을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감소하면서 올해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점이 걱정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단기간에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대로 하락하긴 어려워 보이는 만큼 인플레이션 대응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현재로서는 기준금리가 최소 연 3.75%로 인상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보다 금리를 더 올리거나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더딜 경우 최종 금리 수준이 연 4%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국내 대표 계량경제학자인 황 교수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계계량경제학회 종신 펠로(fellow·석학회원)에 선정됐다. 황 교수가 발 벗고 나선 덕에 세계계량경제학회가 주최하는 세계경제학자대회가 2025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다. 5년마다 열리는 세계경제학자대회는 최고 수준의 논문이 발표되는 경제학 분야 최대 국제 학술대회로, 노벨경제학 수상자 등 1만여 명의 경제학자가 참석하는 이른바 ‘경제학계 올림픽’이다. 그는 “세계경제학자대회 개최를 계기로 한국 경제학계의 위상이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 리스크는 무엇인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출 부진이다. 반도체, 철강 등 주력 제품을 중심으로 수출이 감소하면서 무역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수출이 줄어들면 먹거리 산업이 타격받고, 외화 유동성 확보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 국면 속에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 점도 우려된다. 지난해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큰 폭 인상한 효과가 이제 나타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는데, 동시에 물가도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진행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지속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는 이유는.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은 여러 가지인데, 현재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공공요금 인상이다. 앞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어야 물가도 안정되는데, 공공요금 인상은 기대인플레이션(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 상승률)을 자극한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오르면 물가 상승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거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이로 인해 물가는 더 상승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간 정치적 논리로 공공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고 통제해왔기 때문에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전기 요금, 도시가스 요금, 교통비 등 공공요금이 줄인상되고 있고, 올봄 임금 협상 시기도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기대인플레이션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공공요금 인상이 반영되면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모두 전월 대비 상승했다.

이 밖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중 갈등에 따른 세계 경제 블록화와 공급망 문제 등이 공급 측면의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으로 수요가 늘어나면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 수준(연 3.5%)은 적절한가.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딜레마다. 경기는 침체 국면인데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금리를 더 올려야 할지 동결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견이 거의 반반으로 나뉜 것으로 알고 있다.

미 연준의 긴축 기조와 한국의 높은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추가 금리 인상이 적절해 보인다. 기준금리는 최소 연 3.75%까지는 올릴 것 같다.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더디거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상황이 악화하는 등의 외부 변수가 생길 경우 최종 금리 수준이 연 4%까지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최종 금리 수준을 연 3.5~3.75%로 예상하고 있다.
“최종 금리 수준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경제 상황이나 대외 여건에 따라 바뀐다. 인플레이션 지속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어떻게든 물가는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작년까지만 해도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인 발언을 많이 했는데 최근 들어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의 딜레마가 커진 이유는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최근 일부 투자은행은 한국 경제가 올해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그렇게 급격하게 나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경제학계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도는 고물가 흐름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반면, 경기 둔화는 일시적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반도체 수요 등이 살아나면서 수출도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최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는 거래 절벽에 따른 주택 가격 급락, 미분양 급증 등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금융 기관 부실화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다행히 부동산 시장 경착륙 위험이 크진 않고 그동안 크게 뛰었던 집값이 조정되는 국면이다. 부동산 정책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일관성이 없으면 예상했던 것과 반대의 정책 효과가 나타난다. 과거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면서 각종 규제를 적용하고 세금을 부과했는데, 그 여파로 오히려 주택 거래가 위축되고 집값이 폭등했다. 자유로운 주택 수요와 공급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현재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다고 본다. 다만 기대 심리를 활용한 투기적 거래를 막기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같은 기본 원칙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난방비 폭탄’ 이후 정치권에서 ‘중산층까지 난방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반대한다. 중산층까지 난방비를 지원하려면 7조원이 넘는 재원이 필요하다.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올 한 해 어떤 활동에 역점을 둘 계획인가.
“2025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학자대회’ 준비에도 만전을 기하겠다. 조만간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준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