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위 부자는 어떻게 기업 역사상 가장 큰 사기를 치고 있는가’, 미국 공매도 전문 투자 기업인 힌덴버그 리서치가 1월 24일(이하 현지시각) 인도의 대표적인 물류·에너지 기업인 아다니그룹에 대한 이 같은 제목의 100쪽 분량 공매도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는 아다니그룹 관련 주가 조작 및 분식회계 등 88가지에 달하는 의혹이 담겼다. 보고서 공개에 놀란 글로벌 투자자들이 인도 증시에서 급히 발을 빼면서 인도 경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도 자본주의에 대한 시험”이라고까지 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전 세계 부자 서열 3위에 올랐던 가우탐 아다니(Gautam S Adani) 아다니그룹 회장 역시 이번 사태로 순위가 단숨에 2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경 유착설이 부각되면서 거리 곳곳에서는 반부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亞 최초 세계 3위 부자 아다니 회장의 몰락
지난 2022년 8월 경제전문 매체 블룸버그는 억만장자 인덱스(Billionares Index)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에 이어 3위로 아다니 회장의 이름을 올렸다.
아다니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대학 중퇴 이후 다이아몬드 감별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친형제가 인수한 플라스틱 공장 일을 돕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8년 아다니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아다니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1995년 고향인 구자라트주에서 민간 항구 운영권을 획득하는 것을 계기로 인도 재벌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아다니그룹이 불과 30여 년 안에 항구·공항 운영 등 인프라 사업과 석탄·가스 등 자원 개발, 유통, 전력 사업을 아우르는 인도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자 모디 총리 등 정부와 유착 관계 때문에 급성장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최근 1~2년 사이에 모디 정부의 인프라 확충 정책과 맞물려 계열사 주가가 최대 1500% 급등했고, 아다니 회장은 한때 개인 재산이 1500억달러(약 190조2700억원)에 이르러 세계 2위 부호에 오르기도 했다. 국영 인도생명보험공사(LIC)와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 등 공영 기업이 아다니그룹에 대규모로 ‘밀어주기식 투자’를 한 점 등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LIC는 아다니엔터프라이즈(지분율 4.25%), 아다니항만(9.14%), 아다니토털가스(5.96%)에 투자했으며 SBI는 아다니그룹에 약 2700억루피(약 4조1813억원)를 투자했다.

공매도 보고서로 촉발된 ‘아다니 쇼크’의 끝은
힌덴버그 보고서에는 아다니 회장의 친인척이 모리셔스 등 역외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회삿돈을 빼돌렸고, 그룹 상장사들이 고평가된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으며 부채 부담이 커져 7개 핵심 상장사의 주가가 85%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아다니그룹은 곧바로 “공매도를 노리고 선택적으로 고른 거짓 정보”라며 반발했지만 보고서 발표 직후 아다니그룹 상장사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다니엔터프라이즈 주가는 보고서가 발표된 1월 24일 3442루피(약 5만2700원)에서 2월 2일 1565.25루피(약 2만 3900원)로 폭락했다가 소폭 반등을 거듭하며 현재는 1800루피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아다니그룹의 주가 폭락은 인도 주식 시장의 분위기도 얼어붙게 했다. 아다니그룹의 기업 8개를 포함하는 MSCI 인도 지수는 작년 12월 최고점 대비 약 9% 하락한 상황이다.
시장의 관심은 힌덴버그 보고서가 아다니그룹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다. 힌덴버그는 앞서 지난 2020년 전기차 제조 업체 니콜라가 사기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내 ‘공매도계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블룸버그는 “아다니그룹은 지금까지 힌덴버그의 공격을 받은 기업 중 가장 큰 규모”라며 “아다니 회장은 모디 총리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번 사태로) 인도 정부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경 유착, 부정부패 문제점 드러나
실제 불씨는 내년 총선을 앞둔 모디 총리에게까지 옮겨붙고 있다. 모디 총리와 아다니 회장의 유착설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한층 매서워지고 있어서다.
로이터와 ANI통신 등 인도 매체에 따르면, 현재 뉴델리와 뭄바이, 콜카타 등 주요 도시에서 아다니그룹 사태와 관련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인도 연방의회 제1 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 당원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 수백 명이 아다니그룹 사태에 대한 의회 조사를 촉구하며 모디 총리와 아다니 회장의 인형을 불태우는 등 격렬한 시위가 멈추지 않고 있다.
아다니 회장과 모디 총리는 모두 서부 구자라트주 출신이다. 모디 총리는 2001~2014년 구자라트주 총리를 지냈고, 2014년부터 연방 총리를 맡고 있다.
아다니 회장은 모디 총리의 해외 순방길에 항상 동행하며 대규모 계약을 따내곤 했다. 이에 아다니 회장은 지난 2014년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정치인들과 두루 친하다”며 “모디 총리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아다니 쇼크가 ‘달리는 코끼리’로 통하는 인도 경제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고 있다. IMF에 따르면 올해 인도의 예상 경제 성장률은 6.1%로, 전 세계 평균(2.7%)보다 높다. 그러나 뿌리 깊은 카스트 신분 제도와 종교 분쟁, 부정부패 등 걸림돌이 산적해 있고, 경제 성장의 결실을 일부 부유층만 독식하는 등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2022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가 인도 전체 소득의 57%를 차지한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 순위에서 인도는 85위로 중국(66위)보다 뒤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