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이른바 ‘임대차 3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계약갱신청구권’이다. 과거에는 임차인이 계약한 2년을 채우면 임대인 요구가 있을 경우 집을 비워줘야 했지만, 이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2년 더 살 수 있다. 집주인은 실입주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세입자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집을 파는 것은 ‘특별한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임대차 보증금 인상률도 5%로 제한된다. 때문에 세입자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법안이라는 평가가 많다.
2022년 12월 초, 대법원에서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내용의 판결이 나왔다. 임대차 3법 시행 후 집주인이 바뀌었더라도 새 집주인이 입주를 원한다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불가하다는 내용이다.
원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로플렉스의 구본진(사법연수원 20기)·최종민(연수원 40기)·김재구(연수원 43기) 변호사는 3심 끝에 법무법인 원비전(피고 측 대리)을 상대로 승소를 끌어냈다. 참고할 만한 판례가 없었던 만큼, 법리적 기초에 입각해 임대차 3법을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법무법인 로플렉스는 1심에서 승소한 후 2심에서 패소했으나 대법원에 상고한 끝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13억 집 매매 계약했는데⋯법 개정 후 세입자 퇴거 거부
피고(세입자)들은 2019년 4월부터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30만원에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에 거주 중이었다. 원고는 2020년 7월 5일 13억5000만원에 해당 아파트를 사기로 계약했고 세입자가 2021년 4월 임대차 기간 만료로 이사를 하면 입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원고가 계약금을 치른 지 한 달도 안 돼서 임대차 3법이 시행됐다. 마음을 바꾼 피고들은 2020년 10월 초 원 집주인에게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원 집주인은 “실거주할 사람에게 아파트를 팔기로 계약했으므로 거절한다”고 답했다. 계약갱신 거절 의사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원고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전 매매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피고들이 애초 정해진 임대차 기간 만료 후 퇴거할 것을 당연하게 믿고 있었다. 새로 산 집에 입주하지 못할 경우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당시 전세 거주 중이던 집에는 임대인의 자녀가 실거주하기로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원고가 이 집에 입주하지 못할 경우 주택 담보 대출(주담대)도 문제 될 수 있었다. 국토교통부 지침에 따르면,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에서 주택 구입을 위해 주담대를 받으면 6개월 내 전입할 의무가 있다. 피고들이 퇴거하지 않는다면 원고는 주담대를 고스란히 반납하고 3년간 주택 관련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쟁점 된 ‘주택임대차법 제6조의 3 제1항’ 해석 문제
원고 측은 주택임대차법 제6조의 3 제1항 제9호를 근거로 내세웠다. 이 조항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거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쟁점은 새 집주인의 전입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가였다.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가 임대차 3법 시행 전 실입주 가능 여부를 믿고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이 실행되기 전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원고가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받아줘야 한다면, 이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임대차 3법의 도입 취지가 임차인의 주거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이며,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이 계약갱신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즉시 효과가 발생하는 형성권(일방적 의사 표시로 법률 관계의 발생·소멸·변경 등을 일으킬 수 있는 권리)이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또 새 집주인의 실거주는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는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 세입자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임대인의 ‘주관적 사유’라고 봤다. 아울러 실제 거주를 이유로 한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원 집주인이며, 새 집주인인 원고는 이를 거절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로플렉스는 2심 재판부의 결정에 불복했다. 먼저 계약갱신청구권이 없을 당시 전 집주인과 원고 간에 체결된 아파트 매매 계약을 ‘법률 관계’로 정의하고, 이미 형성돼 있는 법률 관계가 새로운 법률에 의해 영향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김재구 변호사는 “임대차 3법이 임차인 보호에 취지를 두고 있는 건 맞지만, 그 취지에만 집중해 주택 소유자의 소유권이나 개정법 시행 전 이미 형성된 법률 관계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방법으로 해석돼선 안 된다”면서 “임차인의 보호와 주택 소유자의 소유권 및 기존 법률 관계 사이에 균형과 형평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계약갱신청구권 제도가 결국 ‘주택의 실거주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설됐다며, 집주인인 원고 역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고 측은 정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들었다. 주무 부서인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2020년 9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전에는 계약갱신청구권 제도의 시행을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임차인의 퇴거를 믿고 매매 계약을 체결했고 매수인이 해당 주택에 들어와 살아야 하는 실거주자인 경우,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제6조의 3 제1항 제9호의 갱신 거절 사유인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국민신문고 질의 회신도 법무부·국토교통부와 비슷한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원고는 2020년 10월 국민신문고에 계약갱신 거절의 적법성에 대해 질의했고, 법 개정 시행 전 실거주 목적으로 매매 계약을 체결한 것은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라는 답변을 받았다. 유권해석이나 국민신문고 회신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지만 원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활용될 수 있었다.
대법, 원고 승소 판결 “임대인 지위 승계 인정”
임대차 3법을 둘러싼 지난한 공방전은 지난해 12월 1일이 돼서야 결론을 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주택임대차법 제6조의 3 제1항 제9호가 아닌 제8호를 근거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8호는 ‘임대인(직계존속·직계비속 포함)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고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만큼, 갱신을 거절할 자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제8호가 정한 ‘임대인’을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할 당시의 임대인만으로 제한해 해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원 집주인이 갱신 거절 기간 내 실거주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면, 해당 기간 안에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 원고도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구본진 변호사는 “주택임대차법은 제6조의 3 제1항 제1~8호까지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 제9호를 살펴보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3심 재판부는 원고가 제8호의 적용을 받을 수 있어 제9호까지 검토할 필요도 없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원고가 임대인 지위를 승계해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자격을 갖춘 만큼, 제9호에 명시된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따져보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만약 항소심 판결대로 확정됐다면 자본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유권이 지나치게 제약돼 부당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이 나왔을 것”이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