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근 식량 안보가 글로벌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기후 변화 이슈로 농산품의 생산량 늘리기가 쉽지 않은 데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으로 곡물 국제 시세가 요동 치면서 웃돈을 주고도 먹거리를 원활하게 확보하지 못하는 사례가 언제든 일상화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CT)과 바이오를 결합해 탄생한 애그테크(AgTech·농사와 기술을 합친 합성어)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도 압축 성장으로 대변되는 빠른 경제 성장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식량 문제로 애그테크에 관심이 많지만, 혁신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농업에서의 글로벌 혁신은 자동화와 종자 개량이라는 1단계를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첨단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먹거리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트랙터와 농기구 등의 기계화(내연기관의 효율성 제고 및 자율운행)와 종자 개량에 초점을 맞췄던 녹색혁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토양, 제초제, 살충제, 종자 등을 최적화하는 애그테크로 진화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겹치면서 글로벌 먹거리 산업은 가격 폭등으로 저부가 가치 산업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떨쳐내기 시작했다. 농작물 재배에 ICT 기술을 결합한 데이터 활용이 일상화하면서 부가 가치 높은 최고의 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일반적인 농작물 재배 기법에 ICT를 결합한 혁신 농업(정밀 농업이라고도 함·precision agriculture)의 시장 규모는 2019년 55억6000만달러(약 7조원)에서 2026년 128억4000만달러(약 16조원)로 가파른 성장세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뜀박질은 농업 기업의 노력에다 IT 기업과 식량 안보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국가의 혁신 전략이 어우러지면서 전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혁신 농법은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해 불필요한 농자재 소비 및 육체적인 작업을 최소화하고 생산물 관리를 효율화해 농업 인력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헤쳐 나가는 게 특징이다.
몬산토, 농작물 재배 고차 방정식 수학 도입
포천 500대 기업이라는 명성을 자랑하는 몬산토(Monsanto)는 ‘유전자 조작의 선두 주자’라는 악명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를 애그테크 혁신에 직접 접목해 남다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례로 1에이커의 밭에서 532부셸의 옥수수를 생산하도록 혁신했는데, 이는 미국 내 평균치를 세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종자를 개량해 생산량을 배가하는 단순한 일방향 혁신에서 40여 개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고차 방정식 수학으로 농작물을 재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품종별로 종묘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재배해 최적의 성장 환경을 만들고, 미생물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토양 데이터도 고려했으며, 비료의 경우 최적의 시기에 적당량이 살포되도록 데이터에 기반한 혁신을 접목했다. 몬산토는 혁신 농업을 위해 빅데이터 농업 기업인 640 Labs와 날씨 관련 빅데이터 벤처인 클라이밋코퍼레이션(Climate Corp)을 인수해 종자 회사에서 빅데이터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작물을 수확하는 순간 토양과 재배 방법에 따른 품질 등 다양한 작황을 전투기 조종간 같은 트랙터 화면이나 휴대전화에 숫자나 그래프로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토양의 품질에 최적화된 파종(품종·발아·육모)을 안내하고 재배 관리(비료·관수·제초·농작업)에도 최선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신젠타의 최고 마케팅 무기는 소프트웨어
신젠타(Syngenta)는 농생명공학 기업에 만족하지 않고 데이터 기반 미래 농업에 나서는 것으로, 몬산토와 글로벌 애그테크 시장을 다투고 있다. 신젠타는 단위 면적당 수확량 증대를 위해 토양 내 화학 성분 및 수분, 날씨, 종자 품질 등 많은 변수를 최적화하기 위해 ICT 기술을 직접 개발했다. 다른 기업이 IT 서비스와 관련 인력 90% 이상을 외주화해 운영 효율을 높이는 것과 정반대로, 전문인력의 직접 고용에 힘쓰고 있다. 2019년에는 크로피오(Cropio)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우크라이나 회사로, 알고리즘(algorithm·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해 농지마다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90%의 정확도로 진단해 준다. IT 기술과 인력 전문화를 통해 다양한 연구개발 활동을 진행해 다양한 시나리오 경영을 가능케 한 것이 크로피오의 경쟁력이다. 예를 들어 토양의 습도를 분석해 가뭄에 잘 견디는 품종을 추천하기도 하고 강풍이 많이 부는 지역에는 줄기가 강한 품종을 추천해 강풍 피해를 피하면서 산출량 극대화에 도전하고 있다. 이제 소프트웨어는 신젠타의 가장 강력한 마케팅 무기가 되고 있다. 북미, 유럽, 중국 등 20개국에서 대두, 사탕수수, 옥수수 등의 재배 업자 수만 명에게 기후, 종자, 토양을 최적화한 품종을 추천해 주고 살충제를 맞춤형으로 제공해, 병충해 예방 및 해충 박멸 효과를 높이는 데 소프트웨어의 위력을 실증해주고 있다. 특히 종자 선택에는 별도의 머신러닝(기계학습)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서 해답을 쉽게 찾도록 안내하고 있다. 결국 신젠타는 일방적으로 농약을 팔던 회사가 농부와 쌍방향 소통을 통해 혁신을 선도하는 정보통신 솔루션 업체로 변신한 것이다.
식물 공장으로 유명한 바우어리 파밍(Bowery Farming)은 실내 재배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LED 조명으로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전통 기법에 비해 100배나 많은 수확량을 자랑한다. 비결은 햇빛을 좋아하는 바질에는 보다 강한 빛을 주고 온화한 빛을 원하는 청경채에는 세기를 낮추는 등, 작물 포기 포기마다 세밀하게 빛을 조절해 주는 소프트웨어인 BoweryOS에 있다. 또한 도시 인근의 창고를 활용한 공간 배열 효율화(일명 수직공장)를 극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IT 기술을 활용해 기존 재배 방식에 비해 95%나 물을 절약하는 친환경 요소도 구현하고 있다. 최근 주력 상품으로 부상한 딸기의 경우 한겨울에도 여름 같은 당도를 만들어내고 소비지 인근 재배지로 인해 이동 시간을 크게 절감하고 있다.
데이터 농업, 생산에서 금융 영역으로 확장
생산 혁명을 넘어 보험, 금융, 선물 거래 등으로 데이터 농업의 외연이 확장하고 있다. FBN(Farmers Business Network)은 미국, 호주, 캐나다 등지의 4만8000여 농부에게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결합해 최대의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농업 관련 서비스 영역 파괴에 나서고 있다. 단순한 안내 형태의 온라인 플랫폼을 넘어 금융 및 마케팅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애그테크 앱을 통해 농장의 가치사슬 단계별 최적의 관리를 안내하고 있다. 농부 간에 재배법에 대한 정보 공유와 토양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작물과 씨앗을 추천해 생산성을 높이는 서비스는 기본이고, 종자와 가축 사료를 최적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생산한 곡물을 어느 국가나 지역에 그리고 언제 판매하면 좋을지 시뮬레이션해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글로벌 기후 데이터와 생산량을 결합한 솔루션을 통해 장단기 일대일 맞춤형 마케팅 정보도 제공한다. 이 밖에도 초보 농부가 어떻게 농장을 임대하거나 구입할 수 있는를 자세히 안내하고 유리한 금융 서비스도 연결시켜 주고 있다. 또한 종자와 가축에 대한 30년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보험 상품도 선보여 농부의 가장 큰 적인 재해 위험의 분산에도 일조하고 있다. 특히 연간 3000달러(약 380만원)를 지불하면 맞춤형 일대일 전문 상담을 통해 거래 알선은 물론 선물 거래 매칭 등으로 전문 서비스를 극대화한다.
부품 노후화 자동 체크하는 ‘농슬라’ 존디어
농기계 선두 주자인 존디어(John Deere)는 GPS(위성항법장치) 기술을 활용한 무인 트랙터를 통해 파종 간격이나 씨앗 양을 스스로 조정하고 농기계 부품의 노후화를 자동으로 체크해 농부의 고민을 해결하고 있다. 농기계의 용도를 단순한 작물 재배용 기계에서 데이터 수집용 플랫폼으로 변신시키면서 ‘농슬라(농기계의 테슬라)’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특히 존디어는 클라우드 기반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DN2K를 인수해 농기계 작업 중에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작물을 원격으로 확인하고 재배 환경을 실시간 제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