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소.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대규모 입주 물량과 높은 금리 영향으로 하락세를 보이면서 역전세난이 일어나고 있다. 사진 뉴스1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소.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대규모 입주 물량과 높은 금리 영향으로 하락세를 보이면서 역전세난이 일어나고 있다. 사진 뉴스1


새해 들어 부동산 시장에서 새로운 핫 이슈가 등장했다. 바로 역전세난이다. 역전세난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되돌려주지 못해서 생긴 것으로 전세 시장의 소화불량으로도 볼 수 있다. 역전세난은 올해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역전세난이 어느 정도 완화돼야 주택 시장도 어느 정도 회복 기미를 보일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역전세난이 지속되는 한 침체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얘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올해 주택 시장 핵심 변수 역전세난

올해 주택 시장의 4대 변수를 꼽으라면 고금리, 정부 정책, 경기침체, 역전세난이 아닌가 싶다. 이 가운데 역전세난이 아마도 최대 변수일 것이다. 다른 것들부터 하나씩 살펴보겠다. 먼저 고금리다. 2023년 2월 초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 3.5%다. 미국이 금리를 추가적으로 올리면 한국은행이 한 번 더 올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박스권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변수보다는 상수에 더 가깝다. 고정변수라는 말도 괜찮다.

그리고 정부 규제완화책은 나올 것은 거의 다 나왔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국회에서 일부 입법화하는 과정만 남았다. 경기침체 변수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올해 우리나라 실질 경제 성장률이 플러스만 유지한다면 부동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의 메가톤급 악재는 아니다. 여러 연구기관의 예측을 조사해보니 역성장(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는 곳은 드물었다. 유일하게 역성장을 예상했던 일본 노무라증권도 한국 경제성장률을 -1.3%로 봤다가 최근 들어 -0.6%로 다소 올렸다. 이제는 역전세난을 잘 지켜봐야 한다. 주택 시장을 분석하든, 아니면 내 집을 장만하려는 실수요자든 말이다.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 뉴스1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 뉴스1

집주인과 세입자, 갑과 을이 바뀌다

“요즘 세입자가 왕이죠.” 며칠 전 만난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요즘 역전세난이 심각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역전세난은 고금리 충격으로 전셋값이 떨어지고 거래도 마비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세입자도 전세보다 월세를 찾는다.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는 것보다 월세로 지불하는 게 유리한 데다 깡통전세에 대한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전셋값 하락은 수요는 줄어드는데 공급이 많다는 얘기다. 이 바람에 전셋값이 2년 전에 비해 심하게는 반 토막이 났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2023년 1월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가 비율은 52%로 2012년 5월(51.9%)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매매가격보다 전셋값이 더 떨어지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한편으로는 요즘 전세 시장 경착륙을 이렇게 볼 수도 있다. 그동안 전셋값이 너무 많이 오르다 보니 생긴 후유증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전셋값 급등에는 임대차 3법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바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2020년 7월 31일부터 시행되면서 한동안 전세 시장이 요동쳤다. 계약 기간이 2년에서 최장 4년까지 늘어나면서 집주인은 그 기간만큼 전셋값을 올려받겠다고 나섰다. 전세 거주 기간이 길어지면서 시장에서 유통되는 매물이 줄어 일시적인 수급난이 생겼다. 전셋값이 고공비행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에 전셋값 고점을 찍은 지역이 많다. 전셋값과 매매가격 차이가 줄어들어 갭투자도 기성을 부렸다. 매매든 전세든 심한 버블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가 역전됐다. 2~3년 전만 해도 집주인이 갑이었지만 이제는 을로 바뀌었다.

계약갱신청구권 세입자가 무섭네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세입자가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집주인은 3개월 이내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줘야 하기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묵시적 계약 갱신과 비슷한 것이다. 가령 2021년 12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가 있다고 하자.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잘 모르는 집주인은 ‘10개월 후에 세입자가 나갈 테니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입자는 계약 기간 중 언제든지 나가겠다고 말할 수 있고, 그 통보를 받는 집주인은 3개월 이내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세입자가 나갈 때 당연히 중개수수료 부담도 없다. 전세보증금은 사실상 집주인에게 차입금, 즉 부채다. 세입자가 나가겠다는 것은 3개월 안에 빚을 갚으라는 독촉장 같은 것이다. 하지만 채무이행을 하기가 녹록지 않다. 세입자로부터 갑자기 나간다는 통보를 받은 집주인은 ‘갑자기 2억~3억원을 어디서 끌어오느냐’며 울상을 짓는다. 유례없는 역전세난에 그나마 싸게 세입자를 구하려고 해도 찾기 어렵다. 아파트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세입자가 있으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은행에서 선순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더 초조해진다. 빚을 상환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세입자가 강제경매에 부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돈 마련이 여의찮은 집주인은 급매 내놓기로 대처방안을 찾는다. 아예 집을 팔아버리거나 아니면 시세보다 더 싸게 전세를 내놓는 것이다. 집주인의 고육지책이다. 이런 급매물이 매매 시장과 전세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갭투자 매물이 주택 시장 뇌관으로

몇 년 전 어느 한 유투버는 갭투자로 7채를 샀다고 자랑했다. 지금은 아마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상환 압박에 좌불안석일 것이다. 갭투자는 세입자로부터 돈을 빌려 우상향 기우제를 지내는 레버리지 투자다. 갭투자는 자금의 대부분을 세입자 차입금으로 집을 사는 것이므로 고위험 투자인 셈이다. 지금 갭투자의 후유증이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서울은 한때 주택 거래량의 절반 이상이 갭투자였다(2022년 1~8월 53%). 그냥 금융기관 대출이 많지만, 자신의 집에 거주하는 ‘영끌자가’라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견딜 것이다. 고통스럽겠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다. 하지만 갭투자는 그렇지 않다. 갭투자는 어찌 보면 주식의 신용거래융자와 비슷하다. 돈을 빌려오는 대상이 개인이냐, 기관이냐 차이가 날 뿐이다. 갭투자와 신용거래융자는 비교적 짧은 상환 기한이 찾아온다. 갭투자는 세입자로부터 2년짜리 단기 대출금을 끌어 쓰는 것과 같다. 일반 담보대출이라면 대출 기한을 최장 50년까지 늘릴 수 있으므로 단기적으로 차입금 상환에 큰 압박이 없다. 물론 갭투자도 평상시 같으면 새로운 사적 대출자(전세 세입자)를 구해 ‘빚 돌려 막기’가 가능하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자금 경색기다. 갭투자자는 위기 때 코너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 시장 흐름은 어떻게

지금 부동산 시장은 호재와 악재가 뒤섞여 혼조세다. 3월 이후 거래량이 다소 늘어날 것이다. 낙폭이 심했던 지역에서 특례보금자리대출의 수혜를 받는 중소형 급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일부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온기가 도는 게 아니라 거래절벽에 다소 숨통이 트이는 양상일 것이다. 매수심리가 여전히 바닥권이어서 거래가 이뤄진다고 해도 상승 반전되기는 어렵다. 시장을 압박하는 역전세난이 지속되는 한 바닥을 찍기보다 바닥을 다지면서 매물 소화 과정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는 역전세난이라는 점을 꼭 체크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