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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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우리 마음도 봄의 기운에 들뜬다. 그러나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이 시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는 순간이 힘들 듯이 음의 기운에서 양의 기운으로 바뀔 때 우울의 기운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경미한 우울증 상태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문제는 자신이 경미한 우울증 상태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울증 초기에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기력과 흥미 감소 등이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은 대개 이렇게 호소한다. ‘몸이 무겁고 움직이기 싫다. 매일 하던 일도 짜증 나고 귀찮다. 의욕이 없고 흥미도 떨어진다. 재밌는 일이 없다.’ 우울증 증상은 먼저 활력 감퇴 상태가 나타나고, 슬픔과 같은 정서적 문제가 뒤따른다. 많은 사람이 우울증의 주요 증상을 ‘슬픔’으로 알고 있기에 활력의 감퇴를 우울증 전조 증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숨어있는 우울증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슬픔이나 우울함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장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경계선 상태를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경미한 우울증은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신체 리듬의 변화다. 변화는 불면증이나 식욕 저하, 과식, 또는 피곤함으로 나타난다. 둘째는 행동의 문제다. 예전보다 술을 과하게 마시거나 게임이나 영화, 유튜브에 빠져 지내는 등 중독성 행동이 나타난다. 세 번째는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는 현상이다. 보통의 직장 스트레스가 크게 느껴지고, 기존의 업무도 버겁게 느껴진다. 대인 관계에서도 작은 일에 화가 난다.

이런 세 가지 상태가 우울증의 시작일 수 있지만 사회생활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으니 누구도 우울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냥 사는 게 그러려니, 좀 무기력한 상태려니 생각할 뿐이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지만 때로 경미한 우울증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 차라리 우울증이 확연히 드러난다면 치료라도 받겠는데 애매한 상태로 활력 없이 생활하게 된다.

무기력하고 재미도 없고 에너지가 바닥처럼 느껴진다면 내가 우울증의 경계선에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우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가 회복을 할 수 있다. 경미한 우울 상태라고 생각되면 생활 습관에 변화를 줘야 한다. 먼저 한 가지 행위에 꽂히는 중독적 습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수면 시간과 식사에 규칙을 세우고 흐트러진 생활 리듬을 바로잡아야 한다. 운동이나 마사지 등 몸을 회복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또한 스트레스 상황에 예민한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사람과 일에 약간의 거리감을 둬야 한다. 특히 퇴사, 휴직, 새로운 일 등 중요한 결정은 에너지가 생길 때까지 가능한 한 하지 않아야 한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엉뚱한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만성 피로는 숨어있는 우울증의 하나일 수 있는데 영양제 복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노력에도 무기력감이 지속된다면 우울증으로 넘어선 상태일 수 있으니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