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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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인구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을 출간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인구 증가가 식량 생산을 넘어서면 식량 부족으로 빈곤과 질병, 심지어 전쟁까지 발생할 수 있다. 그 결과 인구는 다시 식량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감소한다. 그는 빈곤이나 전쟁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피하려면 선제적으로 출산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하층계급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빈곤을 악화하고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봤다. 그의 인구론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기제가 적자생존임을 깨닫게 만든 계기를 제공했고 성적 금욕과 기독교적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적 환경을 조장했다. 영국에서는 빈민을 구제하는 구빈법에 기독교적 윤리가 반영되도록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의 예측과 달리 피임법이 개발돼 인구증가율은 감소한 반면 농업 기술과 화학비료 발달 등으로 식량 생산은 급속히 증가했다. 인류가 식량 부족 문제를 극복하면서 그의 주장은 잊혔다.

세계가 저출산사회로 전환되면서 인구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구 감소가 사회·경제적 여건의 결과라는 분석 때문이다. 18세기와 달리 식량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맞는 생활 비용을 감당할 경제적 여건의 여부가 인구 증감의 결정 요인이라는 것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다. 이 기금은 2019년 낸 ‘지속가능한 발전-권리와 변화하는 인구동태’에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인구 문제의 진단과 처방을 제시했다. 이 지역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은 경제적 이유다. 기대치에 맞는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고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사회적으로 출산과 경제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높은 주택 가격, 가족 친화적 일터의 결여, 정부의 가족 지원 부족 등을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유엔인구기금은 2018년 발간한 ‘선택의 권한’에서 “개인에게 출산율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출산율은 사람들이 출산을 위한 시간, 공간, 숫자를 결정할 힘과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정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주장은 맬서스가 주장한 ‘인구의 삼위일체 문제’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인구, 식량, 그리고 생계 수단’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구와 식량의 변화는 경제 환경의 변화를 결정하는 요인이지만 생계 수단의 확보 여부에 의해 식량 부족의 희생자가 되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가 하층민의 출산율 증가를 경계한 것은 이런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이를 오늘의 현실에 가져와 보면 ‘인구, 생계비용, 생계 수단’으로 전환할 수 있다. 결국 인구 감소는 높은 생계 비용과 생계 수단의 부족이 초래한 결과다. 그래서 유엔인구기금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계 비용을 충분히 낮추거나 생계 수단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가정과 직장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맞았지만 그 해법을 충분히 적용하지 못한 일본은 20년 이상 물가가 마이너스 성장하는 시대를 겪고 있다. 선제적으로 생계 비용을 낮추지도 못하고 충분한 생계 수단도 제공하지 못한 결과 인구 감소가 지속되면서 30년째 물가가 하락 중이다. 맬서스의 예측대로라면 인구 감소로 수요가 줄어 새로운 균형 가격에 도달할 때까지 저출산은 지속된다. 맬서스의 ‘신인구론’이 실현되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피해야 할 두려운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