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세인트스티븐스칼리지 경제학, 인도경영대(IIMA) MBA, 전 네슬레 영업·마케팅 분야 근무, 전 펩시 근무, 전 시티그룹 아시아·태평양 사업 부문 대표, 전 마스터카드 CEO 사진 블룸버그
아제이 방가(Ajay Banga) 전 마스터카드 최고경영자(CEO)가 세계은행 차기 총재에 오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월 23일(이하 현지시각)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인도계 미국인 방가를 추천했다. 세계은행 총재는 지분이 가장 많은 미국이 사실상 선임하고 있고, 그동안 전통적으로 미국인이 맡았다. 방가는 오는 6월 말 물러나는 데이비드 맬패스 현 세계은행 총재를 이어 7월부터 세계은행을 이끌 것이다. 임기는 5년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방가 전 CEO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순간에 세계은행을 이끌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가는 30년 이상 기업 시스템과 조직을 관리하고 세계 각국의 리더와 커뮤니케이션하며 결과를 만들어냈다”며 “그는 기후변화를 비롯해 우리 시대의 급박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 및 민간의 자원을 동원하는 핵심 능력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189개 회원국을 보유한 국제 금융기관으로, 전 세계 빈곤 퇴치와 경제 발전 재정 지원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개발 분야 인프라 투자에서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기후변화 대응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방가가 (마스터카드 등) 대규모 조직을 운영한 경험과 디지털 경제에 대한 깊은 지식 그리고 인도에서 자라고 교육받으면서 습득한 개발도상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스터카드의 디지털화로 고속 성장 주도
방가는 역대 세계은행 총재 중 최초의 인도 출신이다. 1959년 인도 뭄바이주에서 태어난 그는 인도 최상위권 대학인 세인트스티븐스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명문 인도경영대(IIMA)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방가의 첫 직장은 다국적 식품 회사 네슬레였다. 그는 1981년 네슬레에 입사해 13년간 영업·마케팅 분야에서 일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는 펩시에서 근무했다. 이후 그는 식품 업계를 떠나 금융업으로 업(業)을 바꿨다. 시티그룹이었다. 방가는 1996년 시티그룹에 입사, 4년 만에 그룹 내 미국 소비자 자산 디비전 책임자에 올랐다. 2008년에는 시티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사업 부문 대표로 승진했다. 시티그룹으로 옮긴 건 방가의 생활 무대가 인도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도 있다. 그는 200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고, 2007년 미국 국적을 얻어 귀화했다.
이후 방가는 2009년 마스터카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자리를 옮겼고, 2010년 마스터카드 CEO에 올랐다. 방가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넘게 마스터카드 CEO로 재임하며 회사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방가를 세계은행 차기 총재로 발탁한 주된 배경이기도 하다. 마스터카드가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대규모 금융 서비스 회사이고, 각국 정부와 활발하게 소통한다는 부분도 작용했다.
실제로 방가가 CEO를 맡은 10년 동안 마스터카드 매출은 55억달러(약 7조3000억원)에서 153억달러(약 20조원)로 늘었고, 시가총액은 3000억달러(약 402조원)로 10배 증가했다. 20달러(약 2만6000원)를 조금 넘던 주가도 그가 물러난 2020년 12월 약 356달러(약 46만9000원)로 상승했다. 2023년 2월 28일 현재 마스터카드 주가는 355달러(약 47만원)이고, 시가총액은 3387억달러(약 454조원)에 달한다. 특히 방가의 ‘마스터카드의 디지털화’는 높이 평가받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방가가 디지털 금융 시대를 맞아 전통적인 카드 기반의 금융 서비스 회사인 마스터카드를 다양한 결제 및 데이터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했다. 방가는 현재 사모펀드 운용사 제너럴애틀랜틱의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다양성 강조하는 친화력 뛰어난 리더
방가는 친화력이 뛰어난 리더로 평가된다.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육군 장교여서 어린 시절 자주 돌아다니며 살았는데 이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친구를 쉽게 사귀고,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한다”며 “항상 조직 및 사회 내에서 새로운 아이였기 때문에 기존 그룹에 스며드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고 말했다. FT는 방가를 ‘좋은 경청자, 다른 사람이 다가가기 쉬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시크교 종교곡, 재즈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기는 방가가 이를 바탕으로 누구와도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 나간다고 했다.
늘 터번을 쓰고 다니는 방가는 인도인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FT에 따르면 방가는 자신을 ‘메이드 인 인디아’라고 소개한다. 그는 2014년 뉴욕대 스턴비즈니스스쿨 졸업식 연설에서 “조직 내 다양성은 더 나은 통찰력, 더 나은 결정, 더 좋은 제품을 이끌어낸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나는 터번과 콧수염 때문에 (미국 내) 어디서나 눈에 띄었고, 다른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건 당신이 어디 출신인지,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니라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다.”
방가는 인도 출신으로 미국 비즈니스 시장에서 자리 잡은 만큼 조직 내 다양성도 강조한다. 그는 2021년 ‘포천’과 인터뷰에서 “당신은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한다”며 “이럴 때 조직은 수용 능력을 필요로 한다. 만약 기업 문화에 수용이란 개념을 심을 수 있다면, 그 회사는 조직원 모두가 신나게 일하는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저소득 국가 포용, 세계은행 기후변화 정책 실행 적임자
바이든 행정부가 방가를 차기 세계은행 총재로 발탁한 배경에는 민주당이 강조하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책 이니셔티브를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세계은행은 최근 전 세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최빈곤층의 삶 개선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활동으로 삼고 있는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인물이 방가라는 것이다.
호미 카라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지속가능발전센터 선임연구원은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등 저소득 국가와 가난한 사람들이 기후변화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며 “세계은행이 글로벌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실행하려면 미국인이 아닌 동양계가 앞에 나서야 보다 포용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방가는 마스터카드 CEO로 활동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밝히곤 했다. 그는 2020년 마스터카드를 포함, 환경 보존을 위해 투자하는 100개 기업으로 구성된 ‘프라이스리스 플래닛 연합(Priceless Planet Coalition)’ 창설을 주도했다. 당시 그는 “당신이 누구든, 무엇을 하든 기후변화는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기후변화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방가가 민주당 정권과 가까운 인사라는 점도 작용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 시절 국가 사이버 보안 강화 위원과 무역 정책 및 협상을 위한 대통령 자문 위원을 지낸 바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활동으로 노벨상을 받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방가가 세계은행의 기후변화 위기 프로젝트 관련 새로운 리더십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방가, 韓 김용 이후 두 번째 아시아계
아제이 방가는 78년 세계은행 역사상 두 번째 아시아계 수장이다. 그동안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인이 독점했다. 첫 번째 아시아계 총재는 한국계 미국인 김용 전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이었다. 그는 2012년 세계은행 총재에 선임됐다. 세계은행에서 아시아계 인사가 수장에 오른 것은 1944년 설립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김 전 총재의 성장 스토리를 보면 뿌리는 한국이지만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 전 총재는 5세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고, 이후 미국에서 교육받고 커리어를 키워나갔다. 김 전 총재가 세계은행 수장이 된 것도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방가도 미국 국적이다. 그러나 김 전 총재와는 차이가 있다. 방가는 인도에서 대학원까지 교육받았고, 40대 초반 시티그룹에서 일하면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방가가 늘 터번을 쓰고 다니는 것을 봐도 인도 색채가 강한 인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