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축은 이제 시작이다. 종환원으로 들떠있다기보다는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더 크다.”(분당 A빌라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
2월 9일 찾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의 까치마을건영빌라 앞. ‘종환원 공약(1→2종 일반) 지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1월 26일 분당 빌라단지 종환원 등 재정비안이 성남시 공동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자 신상진 성남시장과 성남시의회 의원들 앞으로 분당 빌라단지 연합회(전 종환원 추진위원회)에서 붙인 것이다. 플래카드에는 이번 종환원이 주민들의 20년 숙원이었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일대의 일부 빌라단지의 용도지역 변경이 성남시 공동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이 지역 빌라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일부 단지들의 사업성이 웬만한 재건축 아파트를 능가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지 공인중개업소는 조용했고, 당사자들도 신중한 모습이다.

분당 빌라단지 1종→2종 주거지역으로
성남시에 따르면 1월 26일 열린 2023년 제1차 공동(도시계획·건축)위원회에서 분당 빌라단지(연립주택용지) 종환원 등 ‘2030년 성남시 도시관리계획 재정비(안)’이 공동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성남시가 2월 6일 고시한 성남 도시관리계획(재정비 1차) 결정(변경) 조서에 따르면 분당구에서 기존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지역이 변경되는 곳은 야탑동 512·270·176·158 일원, 정자동 29 일원, 분당동 41·44-1·53·62-2·96·113·139 일원, 서현동 322 일원, 구미동 81·13·111·278-1 일원이다.
이에 따라 종환원을 통해 분당 내 17개 블록의 연립주택용지는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지역이 변경됐다. 쉽게 말해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분당 빌라단지의 경우 2종으로 종환원되면 용적률이 210%로 높아져 재개발·재건축의 길이 열리게 된다.
분당의 초기 빌라단지들은 과거 종 구분이 없는 일반주거지역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2003년 7월 일반주거지역을 1~3종으로 세분화하는 과정에서 2종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제도 시행 전까지 종을 구분하지 않은 지역을 자동으로 2종으로 지정하기로 했는데, 성남시의 경우 용도지역을 세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2월 성남시가 이 지역을 1종으로 정하면서 현재의 용도지역이 결정됐다.
종세분화는 해당 지역에서 지을 수 있는 건물의 용적률과 건폐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03년 6월까지 성남시는 일반주거지역에 짓는 건물에 대해 별도의 용적률·건폐율·층수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종세분화 후 제1종 일반주거지역은 용적률 100~200%, 건폐율 60% 이하로 정했고, 기존에는 없었던 층수 제한(4층 이하)도 생겼다.
도시가 노후화되고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재건축 논의가 불거지면서 주민들은 당시 성남시의 결정을 비판했다. 제2종·3종으로 분류된 곳과 달리 제1종 일반주거지역의 빌라단지들은 용적률을 더 높이기가 어려워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주민들은 과거 종변경 과정에 성남시가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며 종상향을 요구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분당 빌라단지의 종환원이 되면서 땅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는 중이다. “종환원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금방 됐다” “역세권 빌라들은 재건축이 빠르게 될 것 같다” 등 기대감이 나오는 반면 “시장이 좋지 않아 백약이 무효랄까 겁난다” 등의 우려 섞인 반응도 있다.
다른 지역 사례를 보면 대구시가 2021년 종상향이 불가능한 대규모 단독주택지를 제2종·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상향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발표했고, 이듬해 1월 개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일반적으로 제1종 일반주거지역은 택지개발이나 공공주택개발 등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종상향이 가능하지만, 그간 대구에서는 1종 중에서도 대규모 단독주택지는 별도로 분리해 종상향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독주택지가 노후화되면서 종상향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대구시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이 같은 결정으로 대규모 단독주택지가 몰려있는 남구 대명동, 달서구 송현동, 수성구 만촌·범어·두산·황금동 일원 7.1㎢ 일대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종환원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되면 지가가 올라가고 재건축했을 때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면서 “웬만한 분당 초기 재건축 아파트 단지보다 사업성이 더 좋고, 경우에 따라 더 빨리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지는 조용…재건축되려면 시간 필요
그러나 정작 이날 찾은 구미동 빌라단지 일대는 한산했다. 까치마을건영빌라는 물론이고 최대 수혜 단지로 꼽히고 있는 하얀마을그랜드빌에서도 임장을 왔거나 집을 보러 다니는 공인중개사와 손님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얀마을그랜드빌 단지 내 중개업소는 문 사이에 세금 고지서가 꽂힌 채 굳게 닫혀 있었다.
구미동의 다른 공인중개업소에서도 아직 종환원에 따른 수요자들의 반응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구미동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조용하다. 종환원됐다고 사람들이 바로 몰려오고 그러진 않았다”고 했다.
당사자들도 신중한 모습이다. 한 분당 빌라단지 연합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이번 종환원이 어떤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간 잃었던 권리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외부에서 관심들을 좀 가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실거주민이 많은 이곳 입장에선 괜히 투기 세력이 들어오면 단지 이미지만 나빠지고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 언론에 실리는 것도 그렇게 반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이어 “고금리에 건설 경기도 좋지 않고, 재건축도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도 앞으로 사업성이 좋아질 가능성은 크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제2종 일반주거지역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1종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면서 “일반 재개발 지역이 지분 쪼개기 등으로 입주권을 나눠 가지는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면 분당 빌라들은 이미 온전한 집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청산 등 문제도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이어 그는 “1기 신도시 특별법으로 후방 효과를 얻을 수도 있고, 재개발을 진행하면서 기부 채납 등으로 용적률을 좀 더 높일 수 있게 된다는 측면에서 사업성이 더 좋아질 수 있다”면서도 “다만 종환원이 됐을 뿐이지 아직 정비구역 지정은 아니므로 지금부터 준공까지 15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봐야 한다는 측면에서 기간을 고려해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