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듀크 작가
컬럼비아대 심리학 박사, 
전 프랭클린 연구소 이사, 
‘큇(Quit)’ ‘인생을 운에 
맡기지 마라’ 저자 사진 애니 듀크
애니 듀크 작가
컬럼비아대 심리학 박사, 전 프랭클린 연구소 이사, ‘큇(Quit)’ ‘인생을 운에 맡기지 마라’ 저자 사진 애니 듀크

우리는 집념과 투지의 시대를 지나왔다. 농경 사회를 거쳐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성공과 시스템의 안착에는 부모 세대의 ‘인내의 지분’이 녹아있다. 인내를 연료로 우리 삶은 앞으로 나아왔지만, 언제부턴가 똑똑해진 개인들은 ‘인내의 가성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e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e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성실과 끈기는 과연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가고 있나? 혹시 낯선 선택지로 안내하는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이 두려워, 우리는 관성에 따라 ‘가짜 성실’과 ‘억지 끈기’로 제자리를 맴돌며 자신을 학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주 그만두는 사람은 어떻게 성공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큇(Quit)’이었다. ‘큇’은 충격적인 서사로 시작한다.

무하마드 알리는 33세에, 젊고 강한 포먼을 이기면서 ‘포기를 모르는 권투선수’의 상징이 됐지만, 그 뒤 40세가 될 때까지 신경 손상과 반복적인 판정패 등 ‘은퇴 사인’을 무시하다가 파킨슨병에 걸렸다. 버티는 것이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며, 제때 그만두지 못하면 큰 대가를 치른다고, ‘큇’의 저자인 애니 듀크는 경종을 울린다.

애니 듀크는 역사상 최고 누적 상금을 수상한 세계적인 포커 플레이어로 거대한 ‘판돈’이 오가는 스릴 넘치는 포커판에서 ‘중단의 실전’을 익혔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더 나은 ‘끈기’를 위한 ‘끊기’의 기술을 연구했다. 의사결정 전문가 애니 듀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애니 듀크 작가. 사진 애니 듀크
애니 듀크 작가. 사진 애니 듀크

‘큇’이란 무엇인가.
“‘큇’은 어떤 일을 멈추는 것이다. 동시에 그만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로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인내 없음, 조급함, 변덕스러운 충동과는 어떻게 구별되나.
“충동적으로 그만두는 것은 선택의 기준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가치’에 있지 않다. 쉽게 흥미를 잃거나 게으른 ‘기질’ 탓이다. ‘큇’은 최적의 의사결정 스킬이다. 그만두는 것으로 얻어진 시간과 노력을 더욱 가치 있는 일에 활용하는 적극적 행위다.”

‘끊기’는 더 나은 일에 집중하기 위한 일종의 정리 기술인가.
“그렇다. 물론 인내와 ‘그릿(Grit·투지)’은 이루기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때때로 유해하다. 매몰 비용에 빠지기 시작하면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렵고 가치를 다한 일인데도 손을 떼지 못한다. 어떤 일을 하든 인내를 가지고 계속 해야 할 때와 그만두어야 할 때를 아는 건 중요하다.”

제때 그만두지 못한 대가의 사례로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알리의 에피소드로 책의 서두를 연 이유가 있나.
“무하마드 알리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스포츠 인물 중 한 명이다. 사람들은 알리의 투지에 손뼉을 쳤지만, 그의 말년 선수 인생은 끝없는 끈기에 따르는 대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끈기는 미덕이고 끊기는 실패’라는 생각을 버려라. 상황마다 다르다.

알리의 끈기는 알리가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는 원동력이었지만, 그는 신경 질환을 경고한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권투를 지속해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인내와 투지는 분명 시간이 쌓여 폭발적 성과를 낸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사망자 수가 8배나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만둘 상황에 직면하기 전에, 언제 그만둘지 미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는데, 반환시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
“그만큼 우리가 그만두는 결정을 ‘제때 제대로’ 못한다. 특히 반환시간은 에베레스트산 정상 바로 밑까지 올라갔을 때처럼, 목표 달성이 눈앞에 보일 때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불과 90m 남겨놓고도, 반환시간을 지키기 위해 베이스캠프로 하산하는 사례도 있다. ‘그만두는 것도 옳은 선택’이라는 강력한 학습 효과가 없다면, 정상을 향해 계속 가려는 욕망을 포기하기 어렵다.

비전 없는 직장에 계속 머물거나, 서로를 갉아먹는 인간관계, 손해만 보는 사업에 집착하게 될 거다. 이제 그만하라. 정상을 찍어도 하산하는 도중에 목숨을 잃는다.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불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인생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 돌이킬 수 있는 반환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에 이르면 그만하라!”

하지만 ‘포기의 시점’을 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정확히는 아무도 모른다. 그만둘까, 계속할까는 사실 심리전이다. 스티븐 래빗이라는 사회학자가 어려운 선택 상황에서 동전을 던져 ‘그만둘까’와 ‘계속할까’를 결정한 사람들의 만족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결과를 보면 그만둔 사람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그 실험이 말하는 핵심은 이거다. 비슷한 비중으로 고민될 때는 그만두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그토록 그만두는 결정을 힘들어할까.
“무엇보단 우리는 ‘중단’ 혹은 ‘포기’라는 단어에 패배감을 떠올린다. 몸과 마음이 부서져도 스스로 끝내는 건 못난 짓이라는 집단 강박에 사로잡혀 있달까. 우리의 본성이 쉽게 그만두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면, 적어도 ‘그만두기’와 ‘계속하기’에 대한 기댓값이라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택의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는 건 더 혼란스럽다.”

과거에 비해 더 똑똑해진 우리가 투입된 시간·자본·에너지를 비교하는 일에는 왜 그토록 서투른가.
“교육 수준이 낮거나 정보가 부족하거나,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지적 착각 같은 뇌의 인지 오류다. 매몰 비용은 말 그대로 매몰되는 현상이다. 이런 인지 편향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만두기 코치’를 두는 거다. 인지 편향의 힘에 사로잡혀 있을 때, 밖에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 그들이 당신의 인내심이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 제발 귀를 기울이라.”

한편 의사결정권자의 판단에 큰돈이 오고 가는 기업의 경우, 시작하는 결정과 그만두는 결정을 하는 사람을 따로 두라고 권했는데. 왜 굳이 분리해야 하나.
“배리 스토(Barry Staw)라는 사회학자가 했던 금융 연구를 예로 들어 보겠다. 채무자에게 대출을 실행할 때, 은행은 최초 대출 결정 후에도 여러 후속 결정을 내린다. ‘추가 대출을 해줘야 할까’ ‘조건을 재조정해야 할까’ ‘재심사를 해서 대출 상환 가능성을 낮춰야 할까’ 같은 것들이다.

배리 스토가 132개 은행의 대출을 9년간 추적한 결과는 흥미롭다. 첫 대출을 승인했던 책임자에 비해, 교체된 책임자가 대출 상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더 빠르게 인정했다. 새로운 책임자들은 대출을 승인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대출금을 손실로 처리하는 사례가 훨씬 많았다. 일의 시작을 결정하는 사람(최초 대출책임자)과 중단을 결정하는 사람(새로운 대출책임자)을 따로 두라고 조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때로는 몸이 망가지는데도 경기를 계속하려는 선수를 보면 안타깝다. 그라운드 밖의 감독과 관중이 무리한 ‘부상 투혼’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맞다. 나도 다리뼈가 부러진 채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선수는 사회가 정한 승패의 분위기에 휩쓸려 간다. 그래서 목표 설정을 할 때 항상 ‘그렇지 않다면’이라는 말을 포함해야 한다. 과정에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계산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도 결승선보다 출발선에서 전진한 거리를 가치 있게 평가해 줘야 한다. 완주하지 못해도 배움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큇’은 ‘그릿’에 대한 완벽한 변증법적 보완이다. 유동적인 세상에서는 목표도 유동적이어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왜 처음에 정한 목표를 수정하지 않나?”


애니 듀크는 가치 없는 일을 편집증적인 태도로 수행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탈진뿐이라고 했다.


혹시 ‘그만두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는 건 없을까.
“시작하기, 계속하기, 그만두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나이와 무관하다. 모든 결정은 가장 큰 기대 가치를 제공하는 예측 결과에 기초해야 한다. 당장 그리고 남은 시간에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면서 나아가는 거다.”

당신은 자신의 ‘중단 경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인생을 돌아보며 자주 그만둔 것에 만족하나.
“나는 그만두기로 경로 변경을 많이 한 사람이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포커 대회에 참가했고, 포커 게임을 그만둔 다음에는 책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학원으로 돌아와 공부하면서 다음 책을 쓸 준비를 하고 있다. 자주 그만두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끈기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당장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끈기가 필요하다). 일이 잘되기 위해서는 행운 역시 작용해야 한다.

전문 포커 플레이어였을 때, 내가 했던 모든 게임에는 그만두기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어떤 게임을 계속해야 하는지, 언제 판을 접고 일어나야 하는지 순간순간 결정해야 했다. 늘 이기진 못했지만, 최소한 늘 중단 기준만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에 대체로 나는 다른 사람보다 승률이 높았다.”

마지막으로 인생 경기장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과 포기하는 마음이 어떻게 서로를 일으킬 수 있을지 조언을 부탁한다. 한국에서는 한창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일단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은 정말 멋있다! 나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낀다. 가령 포커 대회에서 결승전에 올랐다고 쳐보자. 몇 번 실수하거나 운이 없어서 칩을 많이 잃었다 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 승부욕, 우승이라는 명예, 상금이라는 포상을 위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되새겼을 거다.

하지만 이런 특수 상황이 아니라, ‘가치가 없는 일’에 매달리면서 마음이 꺾이지 않으려 애쓰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공은 어떤 일을 단순히 계속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가치 없는 일은 최대한 빠르게 그만둬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으니까.”


인생의 플레이어로서 우리는 끈기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인생의 감독으로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끊고 전술적으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결국 얼마나 멀리 보느냐, 시야의 문제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