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문.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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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생회 소속 A씨 등 6명은 지난 2018년 6월 충북 옥천으로 농촌 봉사 활동(사전 답사·이하 농활)을 떠나 맥주와 막걸리를 마셨다. B씨는 일부 학생을 차에 태워 운전했다. A씨는 당시 B씨의 음주운전을 끝까지 말리지 못했으나 이후 부산에서 한 대학생이 음주운전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A씨는 교내 회의에서 음주운전 공론화에 대해 논의하고 서울대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과 페이스북, 카카오톡 대화방 등에 ‘음주운전을 끝까지 말리지 못해 사과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게시글에는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자신의 직책과 이름을 적었다.

A씨는 게시글에서 “농활을 준비하며 음주운전을 묵인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다”고 했다. B씨 측은 당사자가 특정돼 피해를 봤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A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1·2심에서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 판결을 했다. A씨는 어떻게 판결을 180도 뒤집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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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벌금형 집행유예 판결 대법원서 뒤집어

A씨는 게시글을 올린 2018년 10월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B씨는 단과대 소속으로 그해 11월 열리는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B씨는 음주운전에 대한 사과문을 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다. 서울대 운영위원회는 진상 조사를 위한 대책 위원회를 열었다. 이듬해 4월 “농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으며 향후 농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전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B씨는 A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A씨는 검찰에 송치된 뒤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작년 1월 A씨에게 벌금 200만원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당시 상황뿐 아니라 농활 사전 답사에 참석한 사람과 술을 마시고 운전한 사람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해 인적 사항이 특정될 수 있다”며 “음주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B씨를) 특정하지 않고 음주운전을 조심하자는 취지로 글을 게시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한 점을 고려하면 A씨가 공익을 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만 A씨가 객관적 사실관계를 시인하고 (게시글을 올린) 경위에 일부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했다. A씨 측은 “음주운전을 막기 위해 게시글을 올렸고 학생들과 상의했을 기간이 길어졌을 뿐”이라며 항소했다. 게시글을 작성한 목적이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와 관련 있다는 B씨 측 주장에 반박하는 취지였다. 2심 재판부는 작년 10월 항소를 기각했다.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가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A씨는 상고했고 재판은 3심으로 넘어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2월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진실한 사실, 공익 목적 게시 인정

대법원은 “음주운전 불감증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향후 농활 과정에서 음주운전 사고 발생 가능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물의를 최소화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농활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A씨의 게시글에서 공익성이 인정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사건의 쟁점은 형법 307조와 310조였다. 형법 307조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310조는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며 위법성 조각(阻却) 사유를 인정하고 있다.

A씨를 변호한 뉴로이어 법률사무소의 김수열(35·변호사시험 6회) 대표변호사와 박재석(32·변시 10회) 변호사는 형법 310조를 근거로 진실한 사실과 공공의 이익을 강조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진실한 사실은 내용 전체로 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할 경우 인정되며 세부적인 내용이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표현이 있어도 무방하다. 공공의 이익은 국가, 사회, 일반 다수의 이익뿐 아니라 특정한 사회 집단이나 구성원 전체가 관심 갖는 이익을 의미한다.

변호인단은 A씨의 게시글이 진실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B씨가 음주운전을 했고 끝까지 말리지 못했다”는 게 게시글의 핵심이며 이는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는 것이었다. B씨가 마신 술의 양이나 종류는 게시글 내용과 사실 간에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단지 기억의 착오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공익 폭넓게 인정”

음주운전에 엄격한 사회 분위기와 달리 농활에서 관성적으로 음주운전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A씨가 학내 구성원의 안전이라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게시글을 작성했다는 게 변호인단의 설명이었다. A씨가 독자적으로 판단한 게 아니라 교내 구성원과 논의를 거쳐 게시글을 올렸으며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김 변호사는 “A씨는 농활 음주운전이라는 악습을 끊고 총학생회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게시글을 올린 것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돼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게시글이 B씨의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와 관련 있다고 해도 이는 단과대 학생회장의 적격 여부와 관련 있는 것이어서 공익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면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 공익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의견이 일부 나오고 있다. 독일에서는 명예훼손이 사실 공표일 경우 처벌하지 않고, 미국은 주로 개인의 민사 소송으로 명예훼손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는 차원에서 (국내에서도) 공익성을 넓게 인정하고 위법성을 조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