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 전 CJ프레시웨이 MD 사진 박순욱 기자
2022년 주류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심야 주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는 것이었다. 새벽 4시까지 영업하거나 혹은 24시간 영업하는 주점, 식당들이 아예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밤 10시만 넘으면 새로 들어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는 게 업주들의 하소연이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심야 시간대(밤 12시 이후 새벽녘까지)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 탓에 심야 식당, 주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 독어독문학 학·석사, 전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장, ‘한국술열전’ 저자


그렇다면 작년 한 해 전통주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들은 어떤 제품들일까. 300여 종의 전통술을 취급하고 있는 백곰막걸리에서 2022년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술(금액 기준)은 ‘복순도가 손막걸리’였다. 약주 부문만 보면, 3년 연속 ‘명인 오메기맑은술’이 판매 1위를 차지했고, 증류주(리큐르 포함) 중에서는 ‘곰이 사랑한 꿀술’이 전년에 이어 2022년에도 가장 많이 팔렸다. 전통주점 백곰막걸리는 전통술 판매 순위를 2016년부터 매월, 매년 집계해, 발표하고 있다.
백곰막걸리 판매 순위는 실제 전국의 전통술(장수막걸리 등 포함) 매출 순위와는 상관이 없다. 가령, 국내 막걸리 판매 1위, 2위인 장수막걸리와 지평막걸리는 백곰막걸리에서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무감미료 막걸리'로 유명한 느린마을 막걸리 역시 판매하지 않는다. 백곰막걸리는 마트 등에서 많이 팔리고 있는 이들 막걸리를 취급하지는 않지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통술을 취급하고 있어, 연간 판매 순위 동향을 통해 전통술 트렌드는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하다.

2022년 막걸리 부문 1위는 복순도가 손막걸리가 차지했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탄산이 강한 ‘스파클링 막걸리’의 원조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쌀의 함량이 많고 누룩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자연 탄산이 활발하게 올라와, 청량미가 도드라진다. 같은 양조장에서 작년에 새로 출시한 ‘복순도가 빨간쌀 막걸리’ 역시 판매 5위를 차지했다. 홍국쌀을 사용한 빨간쌀 막걸리는 기존 손막걸리보다 탄산은 적고, 조금 더 부드럽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막걸리 부문 2~4위는 나루생막걸리 6도, 왕알밤 막걸리, 그래그날 막걸리순으로 나타났다. 나루생막걸리는 일반 막걸리 중에서는 판매 1위로, 2019년 출시 이후 지속적으로 판매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나루생막걸리는 프리미엄 막걸리의 장점(무감미료)을 갖고 있으면서도 도수가 낮고(6도), 가격도 비교적 착하다는 장점이 있다.
10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신생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들도 백곰막걸리 주류 리스트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이승훈 대표는 “2022년에는 그 어느 해보다 소규모 양조장 설립 붐이 거세게 일었던 한 해였다”며 “막걸리 시장 점유율 면에서는 의미 있는 비중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소규모 양조장 막걸리들이 엄청나게 쏟아진 한 해였다”고 말했다.
약주 부문 1위는 3년 연속 제주의 ‘명인 오메기맑은술’이 차지했다. 오메기맑은술은 제주술익는집 양조장이 빚는 약주다. 오메기는 좁쌀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으로, 누룩과 함께 좁쌀을 발효시켜 윗부분의 맑은 술만을 떠내 숙성시킨 술이 오메기맑은술이다.
2위 황진이주는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 오미자, 산수유, 구기자를 넣고도 한약재 맛이 나기보다는 달콤한 과실주에 가깝다. 3위 풍정사계 춘은 물 좋기로 유명한 청주의 풍정마을 물로 빚은 약주다. 2021년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은 술이다. 이한상 화양(풍정사계 양조장) 대표가 이 술 하나 만드는 데 10년이 걸렸을 정도로, 애착을 기울여 만든 누룩술이다. 이한상 대표는 “녹두가 들어간 누룩인 향온곡으로 약주를 빚는데, 누룩을 많이 넣었지만, 누룩 취는 없다”고 말했다. 화이트와인 같은 느낌을 준다.
4위 일엽편주 약주는 이현보 선생을 모신 안동 농암종택 종부가 만든 술이다. 곡물에서 나는 복숭아, 배 향이 어우러져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인 향이 난다는 찬사가 쏟아지는 약주다. 5위는 한영석 청명주가 차지했다. 작년 4월에 출시한 신생 술이다. 전북 정읍의 한영석발효연구소에서 만든 약주다. 누룩 명인 한영석 대표가 본인이 만든 누룩으로 술을 빚었다. 술 원료인 쌀을 오래 불리고, 저온 장기 발효를 거쳐 만든 술을 또 한 달 이상 숙성을 거쳐 병입한다. 깔끔한 단맛, 상큼한 신맛이 일품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작년 한 해 약주 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된 술이다.
2022년 백곰막걸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증류주 1~5위는 곰이 사랑한 꿀술, 서울의 밤 25, 화요 25도, 독도소주 17도, 이강주 25도순으로 집계됐다. 전년도에는 삼해소주 45도(7위), 추사 40도(10위) 같은 도수 높은 술들이 10위권에 있었으나, 작년에는 도수 높은 증류주들이 모두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1위인 곰이 사랑한 꿀술은 용인의 양조장 술샘에서 만든 리큐르다. 증류주가 아닌 주정(타피오카 같은 수입산 농산물을 사용, 연속식 증류를 거쳐 고농도의 알코올을 뽑아낸 것)을 사용했으며, 생강을 소량 넣은 것이 특징이다. 2위를 차지한 ‘서울의밤 25’는 매실원주 증류액에 진 원료인 노간주 열매를 첨가한 진이다. 매실 특구인 전남 광양에 제2 양조장을 새로 만들어 술을 빚고 있으며, 최근 서울의밤 40도 신제품도 내놓았다. 3위 화요 25도는 감압식 증류 붐을 일으킨 주역으로 깔끔한 맛으로 승부,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려 전통주점보다 일반식당에서 더 많이 팔리는 소주다.
4위 독도소주 17도는 강원도 평창의 신생 양조장에서 만들고 있으며, 도수는 17도다. 5위 전주 이강주는 배와 생강, 계피, 울금 같은 부재료가 도드라지는 술. 쌀 소주를 먼저 만들어, 이들 부재료를 넣어 각기 따로 침출시킨 뒤 블렌딩과 숙성을 거쳐 완성한 고급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