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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3기 공식 출범 무대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3월 4일 수도 베이징에서 개막했다. 각종 정책을 논의하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는 11일까지, 우리나라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5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인대에선 세계 2위 중국 경제를 5년간 이끌 ‘시진핑 3기 경제팀’의 윤곽이 드러난다. 2022년 10월 열린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와 20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개된 정치국원 명단을 고려했을 때, 9일 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신임 총리는 리창(李强) 상무위원이, 부총리는 딩쉐샹(丁薛祥) 상무위원과 허리펑(何立峰) 위원 등이 유력하다. 총리와 부총리 인선은 각각 3월 11일과 12일에 확정된다. 이 같은 인선이 공식화되면 시진핑의 핵심 측근인 ‘시자쥔(習家軍)’들로 경제 수뇌부가 채워지는 셈이다.

새 총리는 리창, 상무 부총리 딩쉐샹 유력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후임으로 내정돼 중국의 경제 사령탑을 맡을 것으로 유력한 인물은 당내 서열 2위 리창 상무위원이다. 1959년생인 리창은 시진핑의 대표 심복으로 꼽힌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시진핑이 저장성 성장과 당서기를 지낼 때, 비서실장을 맡으며 시진핑의 신임을 얻어 출세 가도를 달렸다.

외신들은 그가 중국의 경제 수도인 상하이에서 당서기로 지낸 이력과 친(親)기업적인 인물이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금융서비스 그룹 예랑캐피털의 왕펑 회장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리창이 상하이 당서기였을 때) 시장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더 개방하자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리창은 테슬라의 상하이 공장 설립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아울러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커촹반 개설, 창장삼각주 일체화, 린강신구 구축 등 금융, 지방행정 개혁, 개혁·개방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을 듣는다. 또 관료주의를 지양하며 실용적인 경제관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CMP에 따르면 2003년 8월 당시 원저우시 서기였던 그는 체육관에 지방 간부 6000명을 모아 놓고 효율 혁신을 외치며 관료주의 축소를 촉구했다고 한다. 리창은 3월 13일 전인대 폐막식 직후 진행되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2시간 정도 질의응답을 하며 본인의 색채를 드러낼 예정이다. 하지만 SCMP는 해외 분석가들을 인용해 “시진핑의 사실상 비서실장이었던 만큼, 리창이 (기존 정책을 실행하는) 시행자의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정(韓正) 상무(수석) 부총리의 후임은 딩쉐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유력하다. 1962년생인 딩쉐샹은 2007년 시진핑이 상하이시 당서기일 때 비서실장이었다. 이때 뛰어난 행정 능력과 겸손함으로 시진핑의 마음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시 주석의 비서실장을 맡아 ‘시진핑의 그림자’로 불렸다. 다만 경제 관련 경험이 없다는 점은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CNN은 “지방을 이끌어본 경험도, 경제 정책을 수립한 경험도 많지 않은 딩쉐샹이 중국 국내 경제, 특히 재정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지게 됐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딩쉐샹 또는 리창이 이번 국가 기관 개편에서 부활 가능성이 제기되는 ‘중앙금융공작위원회’의 수장을 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앙금융공작위원회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금융 정책과 인사 문제를 총괄했던 기구다. 과거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부총리 시절 직접 위원장을 맡아 금융산업 전반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중앙금융공작위원회 부활이 현실화할 경우 금융권에 대한 공산당의 영향력 확대가 더 커질 것이란 게 외신들 전망이다.

류허 후임 허리펑 유력…미국과 무역전쟁 협상 대표될 듯

시진핑의 최측근인 허리펑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류허(劉鶴) 부총리의 후임으로 거론된다. 미·중 무역전쟁 협상의 중국 측 대표가 될 전망이다. 2022년 10월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정치국원에 선임된 그는 국무원 부총리직과 함께 인민은행 당서기도 겸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당서기는 인민은행 총재보다 서열이 높은 자리다. 공산당의 결정 내용을 통화 정책에 반영하는 역할로 사실상 통화당국의 사령탑으로 꼽힌다. 푸젠성 최고 명문인 샤먼대 경제학과에서 재정학을 전공한 그는 1985~88년 시 주석이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일 때 재정국 부국장과 국장을 거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는 거시 경제를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을 맡으면서 시진핑의 야심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총괄해왔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친기업적인 리창이 총리직을 맡을 경우 시진핑의 강경 기조가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대해 “허리펑이 대표적인 공동부유(共同富裕·다 함께 잘살기)주의자인 만큼 예단이 어렵다”며 “겉으로 드러나진 않겠지만, 실물 경제와 이론 경제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3월 12일 발표될 인민은행 신임 총재 자리에는 중국 대형 금융회사인 중신그룹의 주허신(朱鶴新) 회장이 거론된다. 주 회장은 미국에서 공부한 이강(易綱) 현 총재와 달리 주로 중국 현지 은행권에 몸담았던 인물로 해외 투자자들이나 기업인들 사이에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그는 상하이 재경대에서 경제학과 정보관리를 공부했고 이후 국영 교통은행, 중국은행 부사장, 남서부 쓰촨성 부성장, 인민은행 부총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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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이인자 리커창 총리…고별 영상은 인터넷서 차단

리커창 총리. 사진 연합뉴스
리커창 총리. 사진 연합뉴스

3월 5일 리커창 중국 총리가 전인대 1차 회의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자 37초간 긴 박수가 이어졌다. 2013년부터 총리직을 수행해온 그는 이번 전인대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다. 그의 후임으로는 리창 상무위원이 사실상 내정됐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계열의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 출신인 리커창은 한때 시진핑의 유일한 정치적 라이벌이었지만, 시진핑의 끊임없는 견제 속에 ‘실권 없는 총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리커창은 그럼에도 중국 서열 이인자로서 소신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2020년 전인대 기자회견에선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시진핑이 제창한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직격했다. 2022년엔 10만 명이 넘는 공직자가 참석한 화상 회의에서 “방역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경제가 발전해야 한다”고 말해 당시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Zero Corona·코로나 확진자 제로 위한 봉쇄 정책) 정책과 엇박자를 냈다.

2022년 제20차 당 대회에서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모두 시진핑의 측근으로 채워졌고, 리커창을 비롯해 왕양(汪洋)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과 후춘화(胡春華) 부총리 등 공청단 출신 인사들은 이번 양회를 기점으로 물러나게 됐다.

공산당은 이미 ‘리커창 지우기’ 작업을 시작했다. 리커창이 정부 부처를 돌며 직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영상이 일제히 삭제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리커창이 3월 2일 국무원 판공청 직원 800여 명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고 말한다”고 밝힌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직원들 격려 차원에서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제대로 평가받게 된다는 뜻으로 한 발언이란 해석이 있지만,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장악한 시진핑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현재 이 영상 역시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 ‘만리 방화벽’에 차단되고 있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