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 폰지사기 같은 상황 빠질 수도
최근 영국은 물론 한국에서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연금 개혁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폰지사기와 유사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일반 국민이나 공무원들이 일정 금액을 매월 납부하고 있는데 앞사람들이 모두 받아 가고 재원이 고갈된다면 나중에 연금을 받아야 하는 젊은 세대는 극단적으로 깡통을 차게 된다. 현실을 크게 뛰어넘는 고금리를 받는 것이나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은 현재의 달콤함이 남다르고 문제가 불거질 때까지 심각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가파르게 진행하고 있다. 2022년 3월에 0.25%에 불과하던 중앙은행 기준금리를 같은 해 12월에 4.5%로 높였다. 2021년에는 매월 금리를 동결했으나 지난해에는 점프를 거듭해 10개월 사이에 18배나 높인 것이다. 한국도 비슷한 기간에 기준금리를 0.5%에서 3.5%로 밀어 올렸다.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지만, 너무 가파르고 높게 올리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비등하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인상 행진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급격하게 풀린 현금 유동성을 고려하면 앞으로 상당 기간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에 시중의 유동성(미국 중앙은행의 총자산)이 1조달러(약 1297조원)에 불과했으나 2022년 말에는 8조달러(약 1경376조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동안 미국이 자신 있게 금리를 올린 디딤돌은 견고한 고용구조였다. 글로벌 차원에서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기 시작했으나 미국만은 고용 인원을 꾸준히 늘려간 것이다. 그러나 2022년 8월부터 12월까지 미국 기업이 해고한 임시 고용 노동자 수는 11만8000명에 달할 정도다. 이제는 정반대로 고용 한파라는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내 임시 근로자 중 3만5000명이 해고되면서 최근 2년여 동안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계속 흘리면서 폰지사기를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예금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는 반면 경기침체로 기대한 투자 수익을 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해 당장은 신규로 유입된 자금으로 이자를 돌려주겠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돌려막기가 불가피해진다. 결국에는 금융기관 내 현금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폰지사기 같은 구조에 말려들 수 있다.
유포리아에 빠진 금리 인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되돌아볼 때 금리 환상은 한순간에 없어진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경제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할 때 금리 인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의 힘을 받지 못한다. 파티에서 빠른 템포의 음악이 계속될 때 멈추지 않고 춤을 춰야 하는 것처럼 주변 상황에 눈을 돌릴 겨를도 없이 분위기에 심취됐다는 의미로 유포리아(euphoria)라는 단어가 활용된다. 행복감이나 희열 또는 자아도취로 해석된다. 한번 유포리아에 빠져들면 춤을 언제 멈춰야 좋을지 생각하지 못해 모두가 계속 춤을 춘다. 최근의 금리 인상도 멈추지 못하는 춤처럼 상승 템포가 계속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이 춤(금리 인상)이 위험한 것은 적당한 시기를 잡지 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헤어나지 못하는 침체기로 안내한다는 데 있다. L 자형 경기침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고금리 속 경기침체 진입은 열심히 물속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물이 빠져 벌거벗은 하체가 드러나 망신당하는 상황으로 비유한다. 2006년부터 고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모두가 자산을 모으고 은행은 수익을 높였으나 갑자기 고금리를 부담하지 못하는 대출자들이 대거 나타나면서 금융기관들이 유동성 경색에 빠져드는 상황 반전이 나타났다. 은행들은 자금 회수에 나서고 보유 자산을 매각하면서 적지 않은 금융기관의 파산을 몰고 왔다. 고금리 국면에서 어느 순간 투자한 수익이 이자를 충당하지 못할 때 돈을 빌려 사 모은 자산을 투매하게 된다. 자전거가 평형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계속 내달려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자전거는 금방 넘어져 버린다. 비슷한 이치로 자산 가격이 상승을 멈추면 곧바로 폭락이 시작된다. 평평한 고지나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빠른 시일 내에 고금리 이후에 곧바로 나타날 낭떠러지 국면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세계은행은 지난해 3%에 근접했던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1%대로 둔화한다는 전망을 내놔 이미 낭떠러지 국면에 진입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물가 상승률에 취해 금리 인상을 계속 고집하기보다는 갑자기 냉각되기 시작한 성장에 지금이라도 눈을 돌려 음악(물가 상승)이 계속되더라도 용기 있게 선제적으로 금리의 하방 조절을 통해 경기가 급랭할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다.
금리 인상은 물가와 싸우는 선으로 인식되면서 더 큰 부작용이 종종 간과된다. 일반적으로 고금리의 부작용은 크게 세 가지가 언급된다. 우선, 고금리는 경기침체를 더욱 가파르게 만든다. 금리 상승은 신규 투자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고금리는 코로나19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이 현실화하는 순간에도 기업들이 혁신 투자를 주저하게 할 우려가 있다. 둘째, 자금 조달 코스트가 상승하면서 원가를 높여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 궤도를 만들어 낸다. 더불어 기업의 자금난을 유도해 더 많은 기업을 몰락으로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고금리는 자산가와 서민 간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앉아서 더 많이 버는 구조를 고착화시키기 때문이다.
튤립의 광기와 금리 인상
1600년대 네덜란드 튤립에 대한 광기는 유명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당시 튤립 한 뿌리 가격이 수도인 암스테르담의 풍광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집 한 채와 비슷할 정도로 치솟은 적이 있다. 도저히 경제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실제 상황이었다. 튤립 가격이 조금 오르기 시작하더니 금세 더 오를 것이라는 욕심과 심리가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다. 때론 주식 가격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튀어 오른다. 현재의 금리도 이런 상황이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됐는데도 고금리를 통한 물가 잡기에만 올인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에 나타나는 현상에도 주의해야 한다. 신용의 공급은 서서히 증가하며 모두가 대비하게 만들지만 신용경색은 급반전(revulsion)으로 설명할 만큼 드라마틱하다. 한국에서는 이미 시작된 자산 가격의 상승 중단은 곧바로 하락을 넘어 추락으로 연결되는 모양새다. 한국인의 대표 자산인 아파트가 이미 그런 행진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리를 높여 자국의 물가 안정을 도모했을지 모르겠으나 전 세계가 투자 위축에 내몰려 경기 활성화에 악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환율 불안으로 외환위기 우려를 높이기도 한다. 글로벌 경제가 거미줄처럼 얽혀진 상황에서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안전하지 않다.
어쩌면 코로나19 시기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가 이미 경제위기의 싹을 틔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기술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급격히 상승했고 암호화폐 붐으로 완전히 전혀 다른 성질의 새로운 재산이 출현했다. 부동산 투자에도 너도나도 나서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됐다. 그래서 모두가 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안정에 박수를 보냈지만, 이제는 냉철하게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한결같이 2%라는 물가 수준에만 매몰되는 사이에 미국의 2023년 경제성장률이 0.5%로 꼬꾸라질 것으로 세계은행은 내다봤다. 유로존과 일본의 올해 성장률은 각각 0%와 1%가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기업 및 가계) 부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다. 2022년 9월 기준으로 한국은 221%에 달해 전체적인 부채 비율 선두권인 일본(184%)보다도 크게 높다. 독일의 민간 부채 비율(129%)보다 두 배 정도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의 고금리 경고등은 노란색을 넘어 빨간색인지 눈여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