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현 KAIST 문술미래전략
대학원 겸직교수,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현 KAIST 문술미래전략 대학원 겸직교수,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과학자들이 백신에 쓰이는 상어 추출물을 인공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멸종 위기에 놓인 상어를 보호하면서도 사람 생명도 구할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의 크리스토퍼 폭스 교수 연구진은 2월 16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npj(네이처 파트너 저널) 백신’에 “면역증강제로 쓰이는 상어 스콸렌(squalene)을 인공 합성해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스콸렌은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지질 분자로, 백신과 함께 투여하면 면역반응이 더 강하게 유도되고 오래간다. 주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에 면역증강제로 쓰이며, 보습, 노폐물 흡착에도 뛰어나 화장품 재료로도 사용된다.
1 상어의 간에서 추출하는 스콸렌은 백신 효과를 높이는 면역증강제로 쓰인다. 신종 감염병이 창궐하고 일시에 백신 수요가 늘면 상어가 대규모로 희생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합성생물학 기법으로 인공 스콸렌을 합성해 사람과 상어를 모두 구할 길을 열었다. 사진 샤크 앨라이스 2 인도의 어시장에 나온 상어들. 상어는 남획과 혼획으로 지난 50년 새 개체 수가 71%나 급감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3 심해에 사는 상어들은 간이 몸무게의 20~40%를 차지하고 그 대부분이 스콸렌이다. 백신 수요가 갑자기 늘면 면역증강제로 쓰이는 스콸렌을 구하기 위해 심해 상어가 남획될 수도 있다. 사진 Pixabay
1 상어의 간에서 추출하는 스콸렌은 백신 효과를 높이는 면역증강제로 쓰인다. 신종 감염병이 창궐하고 일시에 백신 수요가 늘면 상어가 대규모로 희생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합성생물학 기법으로 인공 스콸렌을 합성해 사람과 상어를 모두 구할 길을 열었다. 사진 샤크 앨라이스 2 인도의 어시장에 나온 상어들. 상어는 남획과 혼획으로 지난 50년 새 개체 수가 71%나 급감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3 심해에 사는 상어들은 간이 몸무게의 20~40%를 차지하고 그 대부분이 스콸렌이다. 백신 수요가 갑자기 늘면 면역증강제로 쓰이는 스콸렌을 구하기 위해 심해 상어가 남획될 수도 있다. 사진 Pixabay

멸종 위기 상어와 인명 동시에 구해

문제는 상어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 이래 지난 50년 동안 스콸렌이나 요리용 지느러미 때문에 남획되고 다른 물고기를 잡는 바늘에 걸려 혼획되면서 개체수가 71%나 감소했다.

과학자들은 상어를 구하고 인명도 살리기 위해 합성생물학 기법으로 스콸렌을 인공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합성생물학이란 생명체의 유전자를 변형해 특정 물질의 생산에 최적화하는 연구 분야다.

미국의 합성생물학 전문기업인 아미리스(Amyris)는 유전자를 변형한 효모로 사탕수수를 발효시켜 베타-파르네신(β-farnesene)을 대량 합성했다. 베타-파르네신은 식물성 화합물로, 스콸렌이 분해될 때 나온다. 스콸렌은 탄소 원자 30개로 구성되지만 베타-파르네신은 절반만 갖고 있다.

폭스 교수는 아미리스의 크리스토퍼 패던 박사와 함께 배타-파르네신과 다른 분자들을 다양하게 결합해 인공 스콸렌 20종을 합성했다. 연구진은 인공 스콸렌을 사람 혈액에 넣었다. 그러자 상어 스콸렌처럼 면역세포를 활성화했다.

다음엔 독성을 없앤 H5N1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만든 불활성 백신과 인공 스콸렌을 생쥐에게 주입했다. 폭스 교수는 “실험 결과 인공 스콸렌 중 4~5종은 상어 스콸렌보다 항체를 더 많이 유도하는 등 면역증강 효과가 더 뛰어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인공 합성한 스콸렌이 면역증강 원리를 밝히는 실험 재료로도 유용하다고 밝혔다. 상어의 스콸렌은 이미 여러 백신에 쓰이지만, 구체적인 면역증강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에 인공 스콸렌의 사슬 구조 길이가 길수록 면역반응이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백신 접종, 상어 50만 마리 희생될 수도”

지난 2020년 코로나19 감염 환자가 급증하자 인공 스콸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일부 글로벌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에 상어 스콸렌을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상어 개체 수가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어 보호 단체인 샤크 앨라이스(Shark Allies)에 따르면 스콸렌 1t을 채취하기 위해 상어 3000마리가 필요하다. 이를 기준으로 전 세계 78억 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1회 접종한다고 가정하면 상어 25만 마리가 사라진다. 백신 효과를 높이기 위해 2회 접종할 경우 희생되는 상어는 50만 마리로 늘어난다.

상어는 다른 어종보다 새끼를 적게 낳고 성장 기간도 길다. 스콸렌 수요가 갑자기 늘면 상어가 남획돼 한순간에 개체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꿀꺽상어(gulper shark)와 돌묵상어(Basking shark)처럼 간이 몸무게의 20~40%를 차지하고 대부분이 스콸렌인 심해 상어가 큰 피해를 본다.

폭스 교수는 합성생물학으로 스콸렌을 합성해 상어와 사람을 모두 구할 길을 연 것이다. 앞서 미국 켄터키대의 조지프 체펠 교수 연구진도 지난 2020년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cetific Reports)’에 역시 합성생물학 기법으로 스콸렌을 합성해 생쥐에게서 면역증강 효과를 확인했다. 체펠 교수는 에네프레트(Enepret)란 바이오기업을 세워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인공 스콸렌이 바로 백신 접종에 쓰일 수는 없다. 백신은 면역증강제와 짝을 이뤄 허가를 받기 때문이다. 인공 스콸렌을 면역증강제로 쓰려면 다시 백신과 함께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폭스 교수는 “인플루엔자나 또 다른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차세대 백신을 개발할 때 인공 스콸렌을 면역증강제로 쓰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 다른 실험동물로 전임상 연구를 진행해 안전성과 효능을 확증하겠다”고 밝혔다.

4 미국 델라웨어주 피커링 비치의 모래밭에 있는 투구게.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독성시험을 위해 투구게를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 미 어류야생동물관리국 5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바이오기업 찰스 리버 래버러토리에서 투구게로부터 혈액을 채취하는 모습. 헤모시아닌 때문에 피가 파란색을 띤다. 사진 Timothy Fadek, PLoS Biology
4 미국 델라웨어주 피커링 비치의 모래밭에 있는 투구게.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독성시험을 위해 투구게를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 미 어류야생동물관리국 5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바이오기업 찰스 리버 래버러토리에서 투구게로부터 혈액을 채취하는 모습. 헤모시아닌 때문에 피가 파란색을 띤다. 사진 Timothy Fadek, PLoS Biology

살아있는 화석 투구게도 백신에 희생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생존 위기에 처한 바다동물은 또 있다. 바로 투구게다. 코로나19 백신의 독성(毒性) 시험에 투구게의 혈액이 쓰이기 때문이다. 투구게는 4억5000만 년 동안 모습이 변하지 않아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해양 절지동물이다.

투구게의 피에는 라이세이트(Lysate)란 물질이 있는데 소량의 독소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약사들은 이 물질로 백신에 사람에게 위험한 내독소(內毒素·endotoxin)가 있는지 검사한다. 라이세이트가 세균이 분비하는 내독소와 만나면 바로 묵과 같은 상태가 된다.

투구게는 제약사에서 혈액 수요가 늘면서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투구게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멸종 취약종이다. 2018년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제약사들은 매년 투구게 43만 마리를 잡아 혈액을 30% 이상 뽑아낸다. 투구게는 채혈 과정에서 10%가 죽고, 채혈 후 바다로 돌려보내도 10~30%가 스트레스를 받아 오래 살지 못한다. 특히 피가 뽑힌 암컷은 번식력이 약해져 개체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진다.

과학자들이 투구게를 살릴 방법을 찾았다. 투구게 유전자를 미생물에 넣어 혈액 성분을 만든 재조합 인자 C(rFC)다. 말하자면 인공 투구게 혈액 성분이다. 유럽은 이미 의약품 규격서인 약전에 rFC를 이용한 대체 시험법을 인정했으며, 일본도 같은 내용으로 약전을 개정 중이다.

미국 약전은 대체 시험법의 효능을 판정할 근거 자료가 부족하다고 계속 거부하다가 최근 전향적인 방향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대체 시험법을 도입하라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적 감염병에 맞서 사람과 함께 동물도 살릴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