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은 육군·해군·공군·해병대로 구분돼 각각 고유한 특성을 살려 임무를 수행한다. 예전에는 육군은 땅을 지키고, 해군은 바다를 지키고, 공군은 하늘을 지키며 해병대는 유사시 상륙 작전을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대전의 양상은 복잡하게 연결돼 있고 대응 작전이나 무기 체계도 달라졌다. 드론은 육·해·공군과 해병대 중 어디에서 담당해야 하나. 사이버전은 어느 군에 속하나. 미사일과 우주 전쟁 영역은 어디가 담당해야 하나. 과거 전쟁은 영역이 분명했지만, 요즘 전쟁은 모든 게 혼재돼있다. 일명 ‘하이브리드(혼합형) 전쟁’이다. 이런 새로운 양상은 통합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조정하지 않으면 효과적 대응이 불가능하다. 전쟁 양상이 복잡하고 서로 연결될수록 통합적 판단과 대응이 더 중요해진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합참의장은 군 최고 엘리트가 맡아 왔고, 대통령은 합참의장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게 백악관의 전통이고 미군의 힘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즉흥적이고 변덕이 심했다. 그가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거나 북한에 초강수를 둘 듯한 발언을 하자 합참의장이 적극 조언해 사태를 진정시켰다. 군사적 조언이 번번이 묵살당하자 스스로 사퇴하며 여론을 환기시킨 의장도 있었다. 지휘관과 스태프의 컬래버(협업)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커지면 합동참모본부 같은 조직이 있어야 한다. 사업 영역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기존 사업과 신기술 사업이 연결되고, 금융시장과 즉시 연동되고 있다. 이를 각 사 또는 각 본부가 대응해선 성과를 낼 수 없다. 전사적으로 통합·조정하는 기능이 필요하고 중장기적 전략을 수립해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한때 삼성 비서실은 합동참모본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룹 각 사의 사업을 통합·조정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미래 전략을 수립했다. 그룹 총수가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판단 근거를 제시해 변신과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일본 기업인이나 지식인들을 만나면 우리나라 대기업을 부러워한다. 그중 하나가 대범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이다. 대규모 반도체 시설 투자나 바이오산업 투자 결정은 오너 경영자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분을 가진 오너 경영자가 책임지고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이는 전략적 참모 기능을 하는 비서실이 있기에 가능했다.
삼성 비서실은 해체됐다.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소동 때문이었다. 일명 ‘최순실(현재 최서원으로 개명)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불리는 초대형 정변에 휩쓸리면서 불똥이 튀었다. 다른 대기업 집단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정치권 태풍이 너무 강하니 몸조심하게 된 것이다.
이제 정경유착의 시대는 끝났다. 기업 환경도, 사회도 투명성이 높아졌다. 기업이 정치권 눈치를 보아서도 안 되고, 정치권이 기업을 압박해도 안 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거대한 선진국 기업과 경쟁하려면 막강한 통합 참모 조직이 있어야 한다. 평소 협업관리자(CCO·Chief Collaboration Officer) 역할을 통해 내부 협업뿐 아니라 외부 협업을 잘해서 기업 생태계를 키워가야 한다. 동시에 최고경영책임자에게 전략적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고 조언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 경영이야말로 치열한 전쟁이다. 기업에 합동참모본부 같은 조직이 필요한 이유다. 참고로 지금 세계 선진 각국은 우주전 시대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가져온 하이브리드 전쟁을 겪으면서 합동참모본부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