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보이는 신체적, 심리적 반응은 마치 포식자에게 노출된 동물들의 반응과 유사하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포식자 스트레스(predatory stress)’ 혹은 ‘약탈자 스트레스’라고 한다. 사진 셔터스톡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보이는 신체적, 심리적 반응은 마치 포식자에게 노출된 동물들의 반응과 유사하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포식자 스트레스(predatory stress)’ 혹은 ‘약탈자 스트레스’라고 한다. 사진 셔터스톡
내 친구 A는 오래전에 외국의 한 회사에서 근무했다. 당시 현지에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A의 아들 B가 동료 학생들에 의해서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학교가 파하고 귀가하던 B는 일단의 학생들에게 납치되었다. 붕대로 눈을 가린 채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무자비한 집단 구타와 함께 협박받았다. 그들은 목소리를 숨기려고 가성을 냈지만, B는 그 무리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마약을 복용한 듯 이상한 냄새까지 풍겼다. 무리의 불만은 B가 홀로 공부만 하면서 자신들 무리에 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 그들은 B에게 오늘 일을 발설하는 날에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반드시 보복하겠다’며 위협했다고 한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

B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가족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자신의 노력으로 무사히 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명문대를 졸업하고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다만 B가 그날 이후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특이한 것은 그 무리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친구는 귀국 후에 한국 최고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교 폭력의 가해자는 학업성적이 불량한 문제 학생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편견임을 보여준다. 

십여 년 전 일이다. 모 대학 의대생 몇 명이 학교 MT를 간 날 저녁에 만취한 동료 여학생을 발가벗겨 놓고 사진을 찍는 등 성추행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 중에 가해자들과 피해 여학생이 같은 교실에서 중간고사를 치르는 일이 생겼다. 더구나 가해자 중의 한 명은 그의 부모와 함께 설문조사를 벌여, 피해 여학생이 평소 문란한 학생이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명백한 2차 가해였다.

사회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된 이슈였는데, 학교 당국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은커녕, 차일피일 징계를 미루고 있었다. 당시 어떤 저녁 자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마침 그 대학의 의과대 학장이 참석했다. 나는 대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학교 당국이 왜 변변한 입장조차 밝히지 못하는지 따지듯이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놀라웠다. “평소 그 남학생들이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성적도 좋다. 그런데 이번 일로 출교(黜敎) 처분을 받게 되면 그들은 타 대학에 편입도 불가능해져서 다시는 의사의 길을 걷지 못한다. 그래서 처벌 수위를 놓고 고민 중이다.” 사건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판단을 해야 할 책임자가 오로지 가해자 입장에서만 사태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그다지 개전(改悛)의 정(情)도 보이지 않고 2차 가해까지 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격리 조치는 고사하고 가해자 입장만 옹호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나.” 나의 강력한 항의가 받아들여진 것인지, 여론에 밀려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남학생들은 결국 출교 처분을 받고 학교를 떠난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폭력은 학교에서 알게 된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폭력을 말한다. 통상 가해자는 동료 학생이지만, 옛날에는 영화 ‘친구(2001년)’에서처럼 교사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 폭력의 유형은 신체적인 폭력에서부터, 심리적인 폭력, 성희롱, 괴롭힘과 왕따까지 다양하다. 

심리적 폭력은 정서적, 언어적 학대를 포함한다. 욕설과 모욕, 무시, 거부는 물론이고 위협과 격리 등이 그것이다. 괴롭힘 역시 다른 폭력과 마찬가지로 신체적, 심리적, 성적인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괴롭힘은 타인에 대한 반복적이고 의도적인 공격이 특징이다. 특히 온라인 시대인 요즘에는 ‘사이버 괴롭힘’도 횡행한다. 학교를 통해 알게 된 동료 학생들을 소셜미디어(SNS)나 온라인 플랫폼에서 심리적으로 혹은 성적으로 학대를 일삼는 것이다. 그들은 표적 학생을 골라 표적에 대한 엉터리 정보를 올리거나, 상처 주는 댓글을 단다. 부끄러운 사진이나 동영상을 게시하거나 온라인그룹에서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 ‘핵심 수치심’ 갖는다

학교 폭력의 원인도 복잡하다. 예전에는 단순히 불우하고 빈곤한 가정환경을 비관한 일부 불량 학생들이 다른 불량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일시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폭력을 일삼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 앞서 말한 B군의 가해자도 그렇고, 성희롱한 의대 남학생들도 유력한 집안의 아들들이었다. 

최근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됐다가 대학생 아들 J의 고교 시절 학교 폭력 문제로 하루 만에 낙마한 J의 아버지 정모씨는 검사 출신의 잘나가는 유명 변호사다. 몇 년 전 동료 중학생을 성추행했던 또 다른 J의 아버지 정모씨는 3선 국회의원으로 유력한 야당 정치인이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 중에는 선천적으로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을 타고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기능 가정(dysfunction family)에서 나온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생각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역기능 가정이란 부모의 갈등이나 부정 또는 자녀에 대한 방임이나 학대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이뤄진 가정을 말한다. 이런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다가 가해자가 된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핵심 수치심(core shame)’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핵심 수치심이란 심리학자 루이스 코졸리노가 제안한 개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원래 ‘적절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감정은 사회적 규범을 지키면서 사회에 적절하게 적응해 나가는 데 필요하다. 적절한 수치심과 달리, 핵심 수치심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를 문제가 많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자신을 ‘사랑받지 못한 채 버려져 상처 입은 존재’라고 여긴다. 통상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이 핵심 수치심에 시달린다. 

그런데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도 핵심 수치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핵심 수치심을 가진 가해자들은 자신의 수치심과 떨어진 자존감을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풀려고 한다. 폭력 행사로 인한 일시적인 만족감으로 자신의 자존감이 세워진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엉터리 만족감은 언젠가는 바람이 빠지거나 빵 하고 터져버릴 것이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이 겪을 신체적인 부상, 감정적인 상처 그리고 심리적인 고통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피해자들은 우울감, 불안감, 좌절감, 분노 등을 경험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학업성적도 떨어지고, 감정 조절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보이는 신체적, 심리적 반응은 마치 포식자에게 노출된 동물들의 반응과 유사하다. 한 실험에 의하면 실제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의 모습, 체취, 소리에만 노출된 실험용 쥐들조차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고, 몸이 굳어 버리고, 뒷걸음친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포식자 스트레스(predatory stress)’ 혹은 ‘약탈자 스트레스’라고 한다.

사회적 약자 보호하는 ‘인간적 의무’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은 포식자에게 언제 잡아 먹힐지 모른 채 전전긍긍 불안에 떠는 피식자 신세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더구나 통상 피해자들은 주위 사람들의 보살핌이 더 필요한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 이 또한 포식자들이 ‘피식자 무리의 부상자’를 최고의 사냥감으로 여기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우리 인간 사회의 행태가 동물 사회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해서, 이런 폭력을 용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떨어진 자존감 회복을, 자신의 사회적 위계 상승을 폭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동물적 발상’을 우리 인간이 용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자가 가젤을 사냥할 때 가장 어리거나 부상을 당한 약한 가젤을 사냥의 타깃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연약한 가젤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무리로부터 최우선으로 보호해 줄 ‘인간적인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