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강만을 따르는 국도를 달리며 봄 바다를 더듬었다. 오후 세 시의 바다는 바늘처럼 따가웠고 악기의 음률처럼 영롱했다. 마음에 드는 빛을 만나면 차를 세우고 셔터를 눌렀다. 프레임 속에 봄 바다가 갇혔다.
그러다 닿은 곳은 남해 금산이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열고 비단으로 덮어주겠다고 약속했던 산. 애초에 ‘보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성계가 비단 대신 비단 ‘금’ 자를 내리면서 금산으로 바뀐다. 금산 정상 턱밑에 자리한 보리암은 국내 3대 기도처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아득하면서도 좋다.
보리암 가기 전,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르면 암봉 아래 위태롭게 자리 잡은 ‘금산산장’이 있다.
지금이야 보리암 턱 밑까지 주차장이 나서 방을 빌려달라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보리암만 휙 돌아보고 내려간다. 그래도 막걸리 한잔하러 오는 사람이 있어 주인이 간간이 양은 쟁반을 내놓기도 한다.
금산산장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리암이 보인다. 해수관음상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이들의 표정이 간절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커다란 바위들이 우뚝하다. 시인 이성복은 이 바위를 보고 ‘남해 금산’이라는 시를 썼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아지랑이 피는 길 따라 남해 바래길 걷기
다음 날 늦게 일어나 남해대교를 넘어 오른편으로 바다를 두고 달렸다. 바다에는 찬란한 봄 햇빛이 바늘처럼 꽂히고 있었다. 느리게 느리게 차를 운전해 갈화, 노구, 유포, 예계를 지나 닿은 곳은 평산이라는 마을이다. 이곳은 바래길 1코스인 ‘다랭이지겟길’의 출발점으로 이곳에서 시작한 길은 사촌해수욕장을 지나 선구마을과 향촌을 거쳐 가천 다랭이마을까지 16㎞를 이어간다.
남해에는 ‘바래길’이라는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져 있어 남해를 걸으며 여행할 수 있다. 바래길은 남해군 10개 읍면을 모두 경유하는 걷기 길이다. 16개 본선 코스와 지선 코스 3개가 있으며 총길이는 231㎞에 달한다. 본선 코스는 섬 전체를 연결하는 종주 길이며 지선 코스는 원점회귀가 가능한 순환형 걷기 여행길이다.
모든 코스가 다 좋지만 봄에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4코스 ‘고사리밭길’이다. 창선면 복지센터에서 시작해 식포, 가인, 천포를 지나 적량마을에서 끝난다. 총길이는 15.4㎞다.
수산리를 지나면 고사리밭으로 향하는 임도로 접어든다. 길은 소나무 숲길과 고사리 가득한 구릉지대를 지나 바다와 만난다. 그렇게 마지막 닿는 곳은 적량마을.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골목길 담장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공터마다 푸른 마늘이 자라고 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바다다. 어선들이 봄바람에 한가하게 흔들리고 있다.
4코스를 모두 걷는 데 6시간이 걸렸다. 시속 3㎞가 되지 않는 느린 속도였다. 숲과 언덕을 지났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었다. 느린 걸음이었지만 끝까지 걸었고 마지막 목적지인 바다 앞에 섰다. 수평선 너머로 조용한 응원처럼, 반가운 인사처럼 혹은 따뜻한 위로처럼 노을이 밀려오고 있다.
요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물미해안도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이 길에 ‘핫’한 여행지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스릴 만점의 스카이워크를 체험할 수 있는 남해보물섬전망대다. 스카이워크는 투명 강화 유리를 공중에 설치해 그 위를 걷게 만든 시설이다.
하네스를 착용하고 스카이워크에 오른다. 유리 바닥 아래로 까마득하게 절벽과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몸이 하늘과 바다 사이에 붕 떠 있는 기분이다. 바닥 폭은 1m가 채 되지 않는다. 유리가 부서지지 않을까, 줄이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몸에 연결된 줄을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중간 지점에 강사 겸 안전요원이 기다리고 있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줄에 몸을 의지한 채 바다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포즈다. 겁에 질린 여성 참가자들의 경우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다. 함께한 친구들은 짓궂은 장난으로 일행을 놀리기도 한다. 담력이 센 참가자들은 갖가지 고난도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발로 난간을 힘껏 밀어 바다 쪽으로 몸을 던진다. 그네를 타듯 공중으로 휙 떠오르는 몸.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탄성이 터져 나온다. 단단한 줄로 연결되어 있어 떨어질 염려는 없다. 그래도 다리가 덜덜 떨리고 머리털이 곤두서고 손에 땀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즐겁고 아찔한 시간을 보내다 반 바퀴를 더 돌면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네스를 벗고 카페로 들어서면 남해 바다의 풍광이 눈에 들어오고 밖에서 스카이워크를 걷는 또 다른 여행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겁먹은 모습을 보며 나도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