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익아파트가 좋은 걸 누가 몰라요? 돈이 안 맞으니까 못 사는 거지.”(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거주민 A(62)씨)
3월 7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대교아파트 주차장.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양쪽에 차가 주차된 도로 사이를 지나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차에서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익숙하다는 듯 문을 열고 나와 “이쪽으로 더 빼, 왼쪽으로!”를 외쳤다. 준공한 지 50년이 다 돼가는 이 단지는 지하 주차장이 없어 주차난이 심하다.
평균 나이 50세를 채워가는 ‘반백 살’ 여의동 재건축 단지에는 입구마다 플래카드가 가득했다. 대교아파트 입구에는 삼성물산·GS건설·DL이엔씨·HDC현대산업개발·롯데건설 등에서 재건축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 승인을 축하하며 ‘성공적인 재건축 사업을 기원합니다’라는 문구로 다가올 수주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최고 65층까지 재건축이 허용된 시범아파트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직 재건축 추진 단계인 삼익아파트에는 하나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등 신탁사에서 재건축 성공을 기원하는 플래카드를 미리 걸어 뒀다. 여의동 대교아파트는 2월 24일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재건축 추진위원회 설립 승인을 받았다. 1975년 지어져 입주 48년 차를 맞은 대교아파트는 576가구 규모 단지로 전용면적 95~160㎡의 중·대형 가구로 구성됐다.
추진위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을 활용해 본격적인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재건축 정비계획안 입안을 위해 재건축 밑그림이 되는 ‘주민기획안’을 작성한 뒤 서울시에 제출할 방침이다. 조합설립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현재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율 75% 확보를 위한 동의서를 받고 있다.

‘한국의 맨해튼’ 되나…여의도 재건축 본격화 기대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로 탈바꿈할 채비에 나선 여의동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서 신통기획 자문방식 도입 등으로 재건축 속도감이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흘러나오고 있다. 재건축 기대감 영향으로 급매가 사라지면서 이 일대 매매는 끊긴 상황이다. 재건축 기대감에 매도인들은 매물을 거두거나 호가를 올리고, 하락장에 매수인들은 더 싼 가격을 찾으면서 거래절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비 업계에 따르면 여의동 삼부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지난 1월 아파트 최고 높이를 250m(용적률 500%)로 설계한 정비 계획안을 영등포구청에 제출했다. 새로 도입된 신통기획 자문방식을 적극 활용해 재건축 속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삼부아파트가 제안한 최고 높이를 층수로 계산하면 대략 55~ 56층이 된다.
신통기획이란 재건축·재개발 계획 수립에 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가 직접 공공성과 사업성을 모두 고려한 정비계획안을 제시하는 개발 방식을 말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으로, 상당수 재건축 추진 단지가 이 기획에 참여를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 서울시는 지난 1월 신통기획에 자문방식을 도입했다. 자문방식은 기존에 서울시가 직접 기획해 민간에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방식과는 다른 방안이다. 앞으로는 주민제안(안)이나 지구단위계획 등이 세워진 지역의 경우 서울시의 기획설계 용역 발주 없이 자문만 거치게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여의도 노후 아파트의 용도지역을 올려주는 데 우호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 후 여의도 일대를 국제금융지구로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용적률 종상향 등을 포함해 여의도 일대 재건축 규제 완화를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제3종 일반주거지역이었던 여의도 한양아파트의 용도지역을 일반상업지역으로 두 단계 올려준 게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용적률은 기존 최고 300%에서 최고 600%까지 상향해 54층으로 재건축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대한 신통기획을 확정하고 최고 65층으로 재건축할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에서 용도지역을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복합 용도를 도입하고, 용적률을 공공기여를 전제로 기존 300%에서 400%로 올렸다.
이외에 여의도 대교아파트도 최고 59층으로 추진위원회 구성을 정식 승인받고 주민기획안을 작성 중이다. 여의도 광장아파트 역시 신통기획 자문제도를 활용해 재건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급매 사라지자 거래 ‘뚝’…노후 단지 올해 거래 단 7건
이들 아파트에서는 최근 급매가 사라지면서 거래가 끊겼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1970년대 준공된 여의도 아파트의 올해 거래 건수는 단 7건이다. 1월에 6건, 2월 들어서는 단 1건에 불과했다. 2월 3일 시범아파트 전용면적 79㎡가 16억2700만원에 거래된 게 가장 최근 거래다.
인근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손님이 없는 게 아니라 집주인은 미래 가치를 봤을 때 이 가격에 파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매물을 거두고 있고, 매수자는 더 싼 가격을 찾고 있어 거래가 없다”면서 “현재 나와 있는 매물도 중개업소에서 ‘미끼 매물’로 올린 것들이 많고, 실제로 문의해보면 그 가격보다 더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의동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여의도 특성상 실거주하는 집주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대부분 여의도 안에서 움직이길 원한다”면서 “그런데 거래가 없어 갈아타기를 할 수 없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거래절벽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의도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재건축으로 이곳이 크게 변화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잘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현재는 여의도 역시 대외적 변수로 인해 매수와 매도 세력 간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재건축되면 서울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다만 고밀화하더라도 용적률을 높이는 만큼 건폐율을 낮춰 공원이나 도로로 확보해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여부 촉각…서울시 “현시점 검토 無”
다만 여의도는 지난 2월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됐지만 아직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재건축 아파트 거래 활성화까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4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한이 만료되는 서울 여의도를 비롯해 강남, 목동 등 지역과 관련해 서울시는 3월 9일 “현 시점에선 지정 해제 여부를 검토한 바 없다”면서 “구역 지정 만료 시점에 재지정·해제 등 조정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남·목동에 대한 구역 지정을 풀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선을 그은 것이다. 서울시는 자치구 등의 의견을 취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은 전체 면적의 9.2%(55.99㎢)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이 구역은 일정 면적 이상 토지·주택 등 매매할 때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거주 목적 매매만 허가돼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는 ‘갭투자’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 올해 1월 강남 3구와 용산구를 뺀 전국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 지정을 풀면서 시장에서는 마지막 남은 토지거래허가제도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특히 4월 말부터 서울 주요 구역들의 지정 기한 만료가 다가온다. 양천·영등포·성동·강남 등 재건축 단지(4.57㎢)는 4월 26일, 삼성·청담·대치·잠실 등 국제교류복합지구 및 인근(14.4㎢)은 6월 22일이다. 공공재개발후보지와 신통기획 재건축·재개발 예정지(2.64㎢)는 8월 30일, 강남·서초 자연녹지지역(27.29㎢)은 내년 5월 30일로 기한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