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일라’ 속 장면. 사진 IMDB
영화 ‘아일라’ 속 장면. 사진 IMDB

지난 2월, 튀르키예(옛 터키)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은 헤아릴 수도 없다. 그들은 1992년에도 지진의 악몽을 겪었다.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고 언제 또다시 땅이 흔들릴지 모르는 상황, 한국전 참전 용사 슐레이만은 아일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잃을까, 위험도 마다치 않고 집으로 들어간다.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젊은 시절, 보병사단의 하사로 근무했던 슐레이만은 유엔(UN)의 요청에 가장 먼저 응답했던 조국의 부름을 받아 한국전에 파병된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할 걸 알면서도, 그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연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생명과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1950년 10월, 한 달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동양의 낯선 땅은 폐허더미였다. 길에 버려진 채 썩어가는 시신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집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슐레이만은 죽은 엄마 곁에서 울고 있던 다섯 살 어린 소녀를 발견한다. 이 우연한 만남이 평생 가슴에 품게 될 소중한 인연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언제 어디에서 죽음이 들이닥칠지 모를 전쟁의 아수라장, 친자식도 버릴 판에 어느 누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국의 아이를 돌볼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슐레이만은 바쁜 출근길에도 떠돌이 개들이 마실 물을 챙겨주던 청년, 개미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사람, 나를 해치지 않는 한 적군도 죽이면 안 된다고 믿는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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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주검들 속에 홀로 버려진 아이를 그가 외면할 리 없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말조차 잃어버린 아이는 그가 내민 손을 꼭 잡는다. 슐레이만은 달빛 아래에서 발견한 둥근 얼굴을 가진 아이라며 ‘아일라(Ayla·달)’란 이름을 지어준다.

아일라는 슐레이만과 동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다. 비록 전쟁터를 전전하는 날들이었지만 아일라는 행복했다. 다시 말도 하고 까르륵 웃기도 했다. 슐레이만이 ‘아빠’라는 따뜻한 이름으로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스물다섯 살 슐레이만에게도 아일라는 가슴으로 품은 소중한 딸이었다.

쓰러진 전우들은 한국 땅에 묻혔지만, 복무 기간을 마친 전우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슐레이만은 연장 근무를 신청했다. 전장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살아서 돌아갈 확률은 줄어들 터였다. 아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며 매일 가슴 졸이고 계실 부모님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연인이 그립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일라를 두고 떠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이별을 잠시 연장했을 뿐, 한국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었다. 아일라를 고향으로 데려가는 일은 한국과 튀르키예,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상명하복에 충실해야 할 군인이었다. 결국 슐레이만은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울먹이는 아일라의 작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그에게도 설레는 일이었다. 그러나 맨발로 뛰어나와 반겨 주리라 믿었던 연인은 다른 남자의 약혼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부모님이 정해준 아가씨, 니멧과 결혼한다.

자기에게 무엇이 좋은지 가장 모르는 사람이 자신일 때는 의외로 많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며 직진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단순한 계획과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에두르는 것 같은 운명의 장난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깊은 행복과 성숙을 가져다주었구나, 하고 깨닫는 일도 드물지 않다.

실연의 상처는 쓰디썼지만, 하늘은 그에게 더 아름다운 인연을 선물했다. ‘남의 나라 아이가 나보다 중요하냐?’며 떠나버린 옛 연인과 달리, 니멧은 남편의 마음을 깊이 헤아렸다. ‘당신의 딸은 내 딸, 당신의 약속은 내 약속’이라며 그의 편이 되어준 것이다.

아내의 도움과 위로가 큰 힘이 되었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휴전 후에도 재건을 위해 오랜 노력이 필요했던 한국에서 전쟁고아를 찾을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졌다.

기적 같은 재회는 2010년 4월, 한국전 발발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던 방송국 제작진을 통해 서울에서 이뤄졌다. 85세의 슐레이만도, 인생의 골짜기를 홀로 달려온 아일라도 노년에 접어든 지 오래였지만, 그들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가슴 아프게 헤어지던, 바로 그날의 아버지와 딸이었다.

놓은 손을 다시 잡기까지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그러나 시간조차 무한한 우주에서 보면 60년도 찰나,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어제 헤어지고 오늘 다시 만난 것이라고 왜 말할 수 없겠는가.

우리가 감동하고 사랑해야 할 아름다운 영화 ‘아일라’는 튀르키예의 잔 울카이 감독 작품이다. 2017년 10월에 개봉, 500만 명의 튀르키예 관객이 극장으로 달려가서 눈시울을 적셨다. 영화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던 실제 주인공 슐레이만은 이스탄불을 방문한 아일라와 함께 시사회에 참석했다. 같은 해 12월, 그는 아일라의 배웅을 받으며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세계 역사의 거센 물결 속에서, 우리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달려와 준 이방인의 눈에 비친 오래 전 우리의 초상화가 아프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어려운 시절을 딛고 눈부시게 성장한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우리에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두 가지 힘이 있어. 바로 선(善)과 사랑이지.” 슐레이만이 말한다. 지진과 전쟁 때문에 사랑할 틈이 없고, 먹고 살려면 착해선 안 된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거짓말하고 욕설을 내뱉고 타인의 삶을 침략하며 살 것인가, 착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 것인가, 인간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

슐레이만의 선과 사랑은 아일라의 삶을 비추는 한줄기 등불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영화를 만나는 관객의 마음에도 꽃을 피운다. 전쟁 없는 시대를 운 좋게 살고 있지만 삶 또한 전쟁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당신이 포기하지 않은 선과 사랑의 씨앗은 언제, 어떤 이의 가슴에서 향기로운 꽃으로 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