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글로벌 배터리 수요에서 미국과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0년 29%보다 훨씬 큰 45%에 달할 전망이다. 유럽 수요가 더 크겠지만, 한국 기업들은 배터리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큰 미국에서 사업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앤드컴퍼니(이하 맥킨지)의 파트너인 제이컵 플라이슈만은 3월 15일 인터뷰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전략에 대해 이같이 조언했다. 그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자국 내 배터리 생산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가 크다는 점,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는 점 등을 거론하며 “한국 기업이 중국의 경쟁사보다 구조적으로 미국에 진출하기 좋은 조건에 있다”고 설명했다. 플라이슈만 파트너는 “경쟁력이 강한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전체적인 공급망을 잘 통합해 비용 효율화를 이뤘다”라며 “한국도 비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급망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맥킨지 유럽 배터리 부문의 공동 리더인 플라이슈만 파트너는 배터리 셀 제조, 소재 채굴 등 영역의 기업을 대상으로 자문해주는 배터리 산업 전문가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최하고 한국전지산업협회와 코엑스에서 주관하는 ‘제12회 더 배터리 컨퍼런스 2023’에 참석해, ‘배터리 산업을 바라보는 글로벌 시각’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 세계 배터리 수요를 전망한다면.
“전기차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2020년에는 전 세계에서 300GWh(기가와트시) 정도의 배터리 수요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10년 후인 2030년에는 4700GWh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중 40% 정도는 중국, 25%는 유럽, 20%는 미국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수급 불균형 문제는 없을까.
“시장이 연간 30%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경우엔 수요가 넘칠 수 있고, 어떤 경우엔 공급이 넘칠 수 있다. 수급 불균형은 완성된 배터리 제품뿐 아니라 원재료, 정제된 재료 등 모든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 글로벌가치사슬(GVC)에서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는 얘기다. 맥킨지는 지역 단위로 공급 과잉·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 여기에 ‘원재료가 부족해질 위험도 있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원재료 자체가 희소해지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이 워낙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 기업들은 사용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어떤 기회가 생길까.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기업이 승자가 될 기회가 열려 있다. 3년 전과 오늘날 시장을 지배하는 제조 기업이 다르다. 향후 10년 사이 선도 기업이 또 바뀔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위험이 있는 전체적인 공급망에서도 기회가 있다. 분리막이든지 전해질이든지 음극재, 양극재 등 모든 것을 포함해서 봤을 때 제조의 흐름은 아시아에서부터 유럽, 미국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배터리 부품이 되는 재료의 공급망은 아시아 지역에 상당히 집중돼 있고, 유럽과 미국에는 거의 없다. 기회는 공급망이 유럽, 미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현지에서 배터리를 공급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배터리 제조 비용 측면에서도 기회가 있다. 제조 비용은 지난 10년간 감소 추세를 보이다, 지난 2년 동안 올라갔다. 니켈, 리튬, 코발트 같은 원재료 비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가팩토리(초대형 생산 기지) 건설 비용도 관련 자원 부족으로 꽤 늘었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어떻게 하면 상승하는 비용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이 대목에서 미국에서는 배터리 산업이 정부의 인센티브 때문에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참고하면 좋다.”
한국 기업은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 기업과 경쟁도 만만치 않다. 경쟁력을 높일 전략을 조언한다면.
“2030년 배터리 시장에서 미국과 유럽의 수요만 45%에 달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한국 기업은 미국 내에서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있다. 미국에서는 IRA로 배터리 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중국 경쟁사들보다 미국 시장에서의 이점이 많다. 전체적인 공급망을 하루아침에 옮기긴 어렵겠지만, 일단 기가팩토리를 미국 내에 건설한 뒤 순차적으로 옮겨가는 전략을 취할 수 있겠다. ‘글로벌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파트너십’이다 한국 기업 홀로 글로벌화할 수 없기 때문에 현지 기업과 손을 잡아야 한다(현재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의 배터리 3사가 미국에서 추진 중인 추가 생산 능력은 767GWh에 이른다).
또 중국 기업과도 어느 정도는 협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한 배터리 제조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재료를 소싱해주는 협력 업체를 발굴하기도 했다. 한국도 이처럼 중국 기업과 협업하되, 실제 배터리 생산은 미국에서 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만큼 이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도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미국보다 이점이 많지 않은 이유는 IRA 수준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법이 없고 수입과 관련한 여러 관세 등,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도 ‘유럽판 IRA’라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준비 중이지 않나.
“CRMA는 유럽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주요 원재료를 확보할 것인가’와 관련한 법안이라고 볼 수 있다. 자원을 어떻게 개발하고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유럽에 없는 공급망을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등을 고민한 법이다. 배터리 재료 정제와 관련 생산 능력은 중국에 집중돼 있는데, 이를 개선하겠다는 접근이다.
반면 IRA는 (물론 굉장히 광범위한 법이지만) 배터리 영역에 국한해서 보면 전체 배터리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IRA를 통해 주는 인센티브를 살펴보면, 셀은 1kWh(킬로와트시)당 35달러(약 4만5000원), 셀과 모듈을 합친 경우에는 1kWh당 45달러(약 5만8000원) 정도의 지원금이 책정돼 있다. 이는 비용의 35%에 달하는 수준으로 인센티브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CRMA는 이런 측면에서 IRA에 못 미친다. 그래서 사업을 유럽에서는 소폭 확장(작은 발걸음), 미국에서는 대폭 확장(큰 발걸음)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중국 기업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공급망을 잘 통합했다.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만큼 가격 경쟁력이 있다. 미국의 중국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이 있다. 한국도 공급망 전체 혁신을 통해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배터리 수요를 충족하려면 어떤 점을 우선시해야 할까.
“기가팩토리에서 가능한 한 더 많은 생산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비 생산 성능 향상, 적절한 인력 투입 등이 동반돼야 한다. 어떻게 엔지니어 인재 풀을 확보할 것인가가 아주 중요하다는 얘기다. 당연하지만 목표로 한 생산능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현재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기가팩토리들을 차질 없이 건설하고, 계획한 대로 생산 과정에 돌입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