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월 15일 부산항에 도착한 아마데아호 탑승객들이 부산 탐방을 위해 관광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2 관광객들이 부산 신창동 국제시장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1 3월 15일 부산항에 도착한 아마데아호 탑승객들이 부산 탐방을 위해 관광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2 관광객들이 부산 신창동 국제시장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배만 3년 만에 온 게 아니지예. 지도 이 일을 3년 만에 하러 나온 겁니더.”

3월 15일 오전 8시 부산 초량동에 있는 부산항 국제여객제2터미널 앞 주차장. 커다란 배에서 내린 외국인들이 입국 절차를 밟는 동안 그들을 기다리는 60대 한국인 여성 가이드 A씨가 구수한 사투리를 쏟아냈다. A씨 뒤로 나란히 주차된 관광버스 10여 대가 보였다. 각각의 버스 앞에는 여행 가이드가 한 명씩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3년 동안 택배기사로 일한 사람도 있고, 그냥 쉰 분도 있지예. 이래 봬도 모두 여행사에서 엄선한 베테랑입니더.” A씨가 동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날 부산항에는 승객 500여 명과 승무원 300여 명 등 총 800여 명을 태운 독일 국적 2만9000t급 크루즈인 아마데아호가 입항했다. 3월 12일 일본 후쿠오카항을 출항해 13일 강원도 속초항에 들어온 아마데아호는 속초에서 하루 동안 머문 뒤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 배에 탄 승객 대다수는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 유럽 국적 관광객이었다. 국제 크루즈가 국내에 입항한 건 2020년 2월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의 입항 제한 조치 이후 3년 만이다.

심사를 마친 외국인들이 터미널 출구로 쏟아져 나왔다. 군데군데 조장으로 보이는 이들이 숫자가 적힌 깃대를 들고 무리를 인솔했다. 1조는 1번 버스, 5조는 5번 버스에 타는 식으로 탑승이 이뤄졌다. 대부분 은퇴 연령대인 외국인 관광객들은 터미널 관계자, 가이드 등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동백섬부터 가는 버스도 있고,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으로 향하는 버스도 있습니더. 일부는 경주로 가고요.” 자신이 맡은 11조 등장에 분주해진 A씨가 이쯤에서 대화를 끝내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마데아호가 3월 15일 오전 부산항 국제여객제2터미널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아마데아호가 3월 15일 오전 부산항 국제여객제2터미널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7년 전 부산에 1조4000억원 경제 효과 안겨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크루즈 관광이 3월 13일 속초 입항을 시작으로 3년 만에 재개되자 속초·부산·제주·인천·여수 등 국내 주요 기항지 경제권은 흥분에 휩싸였다. 코로나19와 거리 두기 조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경기 둔화 등을 차례로 겪으며 잔뜩 움츠러들었던 지역 경제가 모처럼 활력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대형 선박을 활용하는 크루즈 관광의 특성상 한 번 입항할 때마다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관광객이 특정 지역에 몰린다. 해당 지역 입장에선 경제 활성화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는다. 정부에 따르면 크루즈 관광 최대 호황기였던 2016년 기준 부산은 1조4000억원, 제주는 6000억원의 지역경제 효과를 누린 것으로 추산된다. 부산항에서 만난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관계자는 “3월 15일 오전 9시 30분 기준 아마데아호에서 하선한 승객은 420여 명”이라고 밝혔다.

이날 부산항 인근 국제시장에서 만난 상인들도 크루즈 관광 재개에 들뜬 모습이었다. 밀면을 판매하는 식당 주인 이경건씨는 “크루즈 관광객이 시장에 와서 뭐라도 하나 사고 먹어주면 그게 다 매출이지 않나”라며 “수년간 세워졌던 장벽이 하나둘 제거되니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가방과 의류를 파는 상인 B씨는 아마데아호를 타고 온 독일인 노부부에게 제품을 보여주며 “크루즈 투어? 웨어 아 유 프롬?(Cruise tour? Where are you from?)” 하고 말을 건넸다. B씨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한 것”이라며 웃었다.

다만 경기 하강 국면이다 보니 크루즈 관광 재개에 심드렁한 반응도 있었다. 국제시장에서 문구류를 판매하는 박지설씨는 “최근 전기료·가스요금 인상으로 힘들어하는 상인이 주변에 많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보다 요즘이 더 고통스러운 것 같다”며 “외국인 관광객이 조금은 도움을 주겠지만, 그게 얼마나 힘이 되겠나”라고 했다.

부산을 경험한 아마데아호는 3월 16일 제주항에 입항했다. 같은 달 19일에는 독일 선적의 4만3000t급 유로파2호가 승객 544명을 태우고 인천항에 입항했다. 3월 10일 홍콩에서 출발한 유로파2호는 일본 오키나와·나가사키, 부산을 거쳐 인천항에 들어왔다. 또 오는 4월 4일에는 677명을 태운 미국 선적의 3만t급 실버 위스퍼호가 전남 여수항에 입항한다. 해수부는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부산 90회, 제주 50회, 인천 12회, 속초 6회, 여수 3회 등 총 161회의 크루즈 국내 입항이 신청된 상태라고 밝혔다.

“2027년까지 50만 명 이상 한국 입항 추진”

해수부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위기를 견딘 우리나라 크루즈 산업의 장기적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자 ‘제2차 크루즈 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공항과 항구를 연계하는 플라이 앤드 크루즈(Fly & Cruise)를 비롯해 환황해권·환동해권 등 다양한 노선의 크루즈 유치 활동을 전개하고, 크루즈 상품 개발 지원과 대국민 크루즈 체험단 운영 등도 추진한다. 한국관광공사는 기존 우리나라의 5대 기항지(속초·부산·제주·인천·여수)에 신규 기항지로 서산을 추가해 총 6대 기항지로 크루즈 관광을 홍보할 계획이다. 송상근 해수부 차관은 “속초·부산·제주·인천·여수 등을 거점으로 한 크루즈 도시를 육성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여행수지 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라며 “2027년까지 50만 명 이상이 한국에 입항하도록 다양한 조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팬데믹 위기가 아직 완벽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대규모 국내 유입이 바이러스 재확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크루즈에 승선하는 모든 인원이 우리나라 방역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탑승객은 입국 전 검역 정보 사전 입력 시스템(Q-code) 등을 통해 건강 상태를 체크해야 하고, 확진 또는 감염 의심 증상을 보이는 외국인은 하선할 수 없다. 해수부 관계자는 “방역 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관계자들은 엄격한 방역 수칙 준수와 별개로 국제 크루즈 산업은 이미 팬데믹을 극복한 상태라는 입장이다. 이민규 제주관광공사 프로젝트 매니저(PM)는 “작년 9월 글로벌 크루즈 운항(항만기항) 횟수는 6483회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월평균 운항 횟수인 6338회를 웃돌았다”며 “2021년 475만 명까지 떨어졌던 전 세계 크루즈 관광객 수도 지난해 2500만 명으로 2019년(2967만 명)에 거의 근접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