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세계 무역 성장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0년 13.8%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세를 걷고 있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는 2023년 세계 무역 성장률 전망치를 3.4%에서 1%로 대폭 낮췄다. 세계 GDP(국내총생산) 대비 무역 비중도 2008년 61%를 기록한 후 하락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물론 미·중 무역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세계화 속도 둔화의 결정적 요인으로 분석된다. 저비용, 고효율을 고려한 세계 각국의 기업이 분업해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공급망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화 선봉에 섰던 이들은 자국 중심의 생산 및 공급망 체제로 전환을 꾀하며 탈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트렌드를 ‘파편화된 세계화(fragmented globalization)’라고 정의했다. 그는 “지난 30년간이 급격한 세계화 시대였다면, 이제는 파편화된 세계화 시대”라며 “세계경제 및 무역이 지역 등의 단위로 파편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 기업과 정부의 변화와 역할을 강조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는 세계화 속도 둔화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AP연합
미·중 무역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는 세계화 속도 둔화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AP연합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기업과 정부는 ‘세계화의 가속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조직, 국가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긴장, 갈등으로 탈세계화가 가계는 물론 기업, 정부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세계화는 무역, 투자, 관광, 교육, 비즈니스 네트워크라는 다층적인 구조를 형성해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인데, 단번에 그 연결이 끊어지긴 어렵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총장
현 알리안츠 수석 경제 자문, 전 하버드대학기금 
최고경영자(CEO)
모하메드 엘 에리언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총장
현 알리안츠 수석 경제 자문, 전 하버드대학기금 최고경영자(CEO)

수십 년간 세계화의 이점은 명백하고,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특히 생산, 소비, 투자의 연결은 소비자가 더 매력적인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했고, 기업은 시장을 확대하고 공급망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연결은 민간 및 공공 차입의 비용도 낮췄다. 각국 정부는 상생 파트너십에 참여하며 협력 관계도 구축했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 발달로 원격 근무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국경은 무의미해졌다. 

2016년 ①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2017년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세계화에 대한 반발은 눈에 띄는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중국과 관세 전쟁에 돌입했고, 두 나라 갈등은 더욱 심화했다. 이는 탈세계화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세계경제가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양대 블록으로 재편되고 있다. 두 국가는 글로벌 패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고, 이는 미국 등 서방 대 중국·러시아로 대표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 간 대립 구조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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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세계화가 끝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보다는 지난 30년간의 급격한 세계화가 이제 ‘파편화된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미국 등 서방 국가가 경제 제재를 가했고, 이에 러시아는 천연가스 무기화로 맞섰다. 세계경제 및 무역이 지역 등의 단위로 파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권 침해 국가와 환경에 해를 끼치는 국가에 대한 서방 국가 소비자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기업들은 ‘세계 공장’ 중국을 벗어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은 중요한 수출품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②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 ③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생산 기지 우방국 이전)을 추진하고 있고, 이런 추세는 향후 몇 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기업들은 효율성보다 외부 충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선택할 것이다. 공급망에 대한 접근 방식은 기존 ④ ‘적기 생산(Just In Time·재고 최소화)’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상황 대비(Just In Case)’ 방식으로 바뀔 전망이다. 바로 눈앞의 상업성보다 미래 위기 대응, 지속 성장 등의 문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경영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생기겠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세계경제가 작동하는 새로운 모델에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따라 그들의 정체성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는 미국의 프렌드쇼어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 물론 멕시코 정부 스스로 인정했듯이 정책 입안자들이 인프라, 청정에너지, 규제 완화 등에서 진전을 보지 못한다면 큰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지정학적 리스크, 기업의 전략, 사회적 가치 변화(인권 침해 국가와 환경에 해를 끼치는 국가에 대한 반감 증가) 등에 따라 지구촌이 파편화된 세계화 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파편화된 세계화’라는 단어가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파편화된 세계화는 현 세계경제를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점점 더 블록으로 나뉘고 있다. 그리고 파편화된 세계화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야기하고 잠재적 성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각국 정부와 다자 간 기관이 새로운 경제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는 완전히 탈세계화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순조로운 항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정부와 협업해 공급망 재구성이라는 까다로운 과정을 용이하게 하고,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그들의 사고와 운영 방식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투자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정학적, 사회·정치적,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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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영국을 뜻하는 브리튼(Britain)과 탈퇴를 뜻하는 엑시트(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한다. 영국은 2016년 6월 23일(이하 현지시각) 국민투표를 실시, EU 탈퇴를 결정했다. 영국이 43년간 몸담았던 EU에 이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이후 브렉시트 전환 기간을 거친 후 2020년 12월 31일 EU에서 탈퇴했다. 

기업의 해외 진출을 뜻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 개념으로, 기업이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한 국가로 생산 시설을 옮겼다가, 다시 본국으로 이전하는 것. 해당 국가에서 임금 상승 등으로 인한 비용 문제도 있지만 본국의 일자리 창출과 공급망 안정을 위한 정책 인센티브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동맹국들끼리 핵심 기술의 공유 및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미국은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도시 봉쇄 등이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겪으면서 프렌드쇼어링에 집중하고 있다. 믿을 만한 동맹끼리 뭉치면 상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미국과 적대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를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도 반영됐다.

Just In Time(JIT)은 입하 재료를 재고로 두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상품 관리 방식을 뜻한다. 물건이 팔리는 양에 따라 생산 라인이 가동되는 체계이므로 재고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따라 Just In Case(JIC)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JIC는 안정적으로 재고를 확보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비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