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오픈AI가 공개한 생성 AI(Generative AI) 챗GPT의 등장이 ‘아이폰 모먼트’에 비유되며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 초연결 인프라를 확장하며 웹2.0 시대의 진화를 촉진했던 것처럼 챗GPT는 개별 사용자에게 최적화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플랫폼이 독점한 데이터와 이익을 개인에게 돌려주려는 웹3.0 시대의 도래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터넷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웹1.0(읽기)은 서비스 제공자가 제작한 웹사이트에 접속해 콘텐츠를 읽는 일방적 소통이었다. 웹2.0(읽기·쓰기)에서는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상호작용이 가능해졌다. 사용자들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웹 생태계가 포털에서 플랫폼 중심으로 전환된 배경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소통이 가능해지며 개인 정보, 검색 기록 등 온갖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어졌고 플랫폼 기업의 중앙 서버로 모였다. 플랫폼 기업들은 데이터의 통제권을 독점했고 데이터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를 키웠다. 이렇게 성장한 기업이 구글, 메타(옛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다.
분산화된 웹 생태계 ‘웹3.0’
웹3.0(읽기·쓰기·소유)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중앙집중적 생태계에서 벗어나 개인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을 개인에게 돌려주려는 분산화된 웹 생태계다. 블록체인의 분산원장 기술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중앙 서버에 갇혀 있던 데이터를 개인 네트워크에 분산해 저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여기에 컴퓨터가 웹 페이지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여 사용자에게 맞춤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시맨틱(semantic) 기술이 더해지며 완전하게 개인화된 인터넷 환경이 마련됐다.
기업들은 이미 웹 생태계의 변화에 주목해왔다. 웹2.0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구글, 메타 등 플랫폼 거인들은 발 빠르게 웹3.0 시대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변신을 꾀하고 있다. 소비재 기업들은 멤버십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등을 활용해 고객과 더욱 친밀하며 개인화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나이키가 자체 개발한 웹3.0 플랫폼 닷스우시(.Swoosh)는 가상 의류를 선보이는 허브로, 고객들은 가상 의류를 공동 제작하고 로열티를 받는다. NFT를 활용해 프로 선수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특별한 경험을 통해 고객과 커뮤니티 빌딩을 강화한다. 스타벅스가 기존 리워드 프로그램을 웹3.0 서비스로 확장한 ‘스타벅스 오디세이’도 대표적인 예다. 다양한 ‘X2E(XtoEarn)’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개인의 데이터나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에 따라 보상이 가능한 웹3.0 생태계에서 게임하거나(Play to Earn), 공부하면서(Learn to Earn) 돈도 벌 수 있는 개념이다.
웹3.0이 발전하는 데는 무엇보다 개인화된 최적의 정보를 제공해 줄 AI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챗GPT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 친화적이라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데 있다. 챗GPT는 사용자 경험(UX)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크게 개선해 기업들이 웹3.0 서비스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고객관계관리(CRM) 분야 선두 주자인 세일즈포스는 챗GPT 기술을 자체 CRM 소프트웨어에 탑재한 ‘아인슈타인GPT’를 선보였다. 이 기술은 마케팅이나 영업 부문에서 고객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에 활용되거나 고객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고객 경험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전략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웹3.0 전략을 확대하려는 기업들이 이 같은 기술을 마케팅이나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개인화된 콘텐츠를 생성해 고객의 충성도와 몰입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일률적으로 작성해 이름만 바꿔 넣은 이메일이 아니라 잘 아는 친구로부터 온 것 같은 친밀한 이메일을 발송한다거나 개인의 니즈에 꼭 맞춘 카피 문구를 개발하는 일을 자동화할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도 인간처럼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는 AI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
DAO에 활용되는 챗GPT
챗GPT는 거대 기업뿐 아니라 개인이 웹3.0 생태계에 쉽게 접근하고 협업할 수 있는 막강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웹3.0의 핵심 참여자인 크리에이터들이 커뮤니티나 블록체인에 기반한 탈중앙화 자율 조직인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등을 구성하고 운영하며 수익화하는 데 챗GPT를 가상 비서처럼 활용할 수 있다.
예로, 챗GPT는 DAO 설립을 위한 아이디어 및 기초 조사부터 스마트 콘트랙트를 생성하거나 코드의 취약한 부분을 찾고 코드를 최적화하는 일, 기존 콘트랙트 감사 등을 진행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DAO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콘텐츠부터 NFT 콘텐츠까지 시간과 비용 투입이 큰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도 챗GPT가 대신할 수 있다.
이 밖에 참여자들과 상호 소통 과정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직 내 중재와 조정 역할을 하고 비정상적인 활동을 걸러냄으로써 DAO가 건강하게 지속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개인화된 학습 경험을 제공하거나 새로운 분야에서의 시뮬레이션을 제공해 리스크 요인을 줄이는 등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물론 지금의 기술로는 앞에 기술한 역할 모두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술 개발에 거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고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많은 학습을 통해 진화가 빨라지는 AI 특성상 머지않아 웹3.0 생태계의 지형을 바꾸는 데 혁신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삶의 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기에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문제를 짊어진 사회 구성원이 문제 해결을 위해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참여하여 기여한 만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웹3.0 방식의 접근이 더욱 필요해지는 이유다. 챗GPT는 개인이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DAO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 요구되는 다양한 업무에 강력한 지원군이 됨으로써 정책 수립의 효용성을 높이고 사회 전반의 혁신을 촉진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광장과 타워’에서 15세기 말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 도입으로 교황과 주교를 정점으로 한 위계 타워에 신자들의 수평 네트워크가 도전하는 종교 개혁이 촉발되며 인류 첫 네트워크 시대가 열렸다고 기술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에 비견되는 챗GPT는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개인이 기존의 국가주의적 접근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류 난제를 풀고 사회 혁신을 일으키는 새로운 네트워크 시대의 촉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