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 1월 입주를 시작한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왼쪽)’와 오는 5월 입주 예정인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 2 11월 입주 예정인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힐스테이트청량리더퍼스트’ 공사 현장. 사진 김송이 기자
1 올 1월 입주를 시작한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왼쪽)’와 오는 5월 입주 예정인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 2 11월 입주 예정인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힐스테이트청량리더퍼스트’ 공사 현장. 사진 김송이 기자

“전세 매물이 쌓여있어요. 입주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된 아파트가 있는데, 아직 꽤 많은 가구가 세입자를 찾지 못해 공실로 남아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 

3월 15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청량리역 인근. 청량리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청량리수산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미 준공돼 입주를 시작한 단지 옆으로는 준공까지 시간이 남아 한창 층수를 올리거나 기초공사를 하고 있는 단지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1월 입주를 시작한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 1층 상가는 공인중개소 한 곳을 빼고는 텅 비어있었다. 공실 상가 곳곳에는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있기도 했다. 입주가 시작된 단지라고 하기엔, 한산한 모습이었다.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는 청량리3구역을 재개발한 단지로 지하 6층~지상 40층, 2개 동, 총 220가구 규모다.

올 1월 입주를 시작한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 
1층 상가 곳곳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김송이 기자
올 1월 입주를 시작한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 1층 상가 곳곳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김송이 기자

입주 시작되자 전셋값 ‘뚝’…“매물 쌓여” 

청량리역 일대를 재개발한 아파트가 속속 입주를 시작하면서, 일대 아파트 전셋값이 요동치고 있다. 전세 물량이 쌓이면서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전셋값을 내리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 전용면적 84㎡의 전셋값은 현재 최저 5억3000만원부터 최고 7억원까지 형성돼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7억원 중반대 매물이 많았지만, 호가가 또다시 내려간 것이다. 일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거래된 전용 84㎡의 전세 보증금은 대부분 5억원대다.

인근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입주 지정 기간까지 중도금을 못 내면 집주인들은 12%에 달하는 연체 이자를 내야 한다”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하는 수 없이 전세 보증금을 낮추면서 가격이 2억원 이상 내려간 매물이 많다. 작년만 해도 7억~8억원이 시세였는데, 지금은 5억~6억원대가 평균 가격”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소 관계자도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전셋값을 낮춰 3월 31일까지인 입주 기한 내 임차인을 찾으려 한다. 그때까지 세입자를 못 찾으면 연체료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자금이 없는 사람들은 호가를 낮추고 싶어도 7억원대에서 전셋값을 더 이상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셋값을 낮춰 임차인을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청량리역 일대는 단기간에 전세 물량이 늘어나면서 수요자 우위 시장이 형성돼 있다. 현재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와 있는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 전세 매물은 76건, 월세는 62건으로 전체 물량(220가구)의 60%를 넘는다. 전세 매물 76건 중 66건이 전용 84㎡다. 

다른 단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오는 5월 입주 예정인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 바로 옆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도 현재 119건의 전세 매물이 네이버 부동산에 나와있다. 아직 입주까지 두 달 정도가 남은 만큼, 앞으로 매물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단지 최저 호가는 전용 84㎡ 5억4000만원이다. 8억원대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 수준이다.

신축 아파트들의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구축 아파트의 전셋값이 더 높은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청량리역에서 500m가량 떨어진 ‘동대문롯데캐슬노블레스(2013년 입주)’ 전용 84㎡는 3월 6일 5억900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 최저 호가보다 6000만원 높은 가격에 전세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올해 약 3500가구 입주…‘전셋값 하락 지속’

업계에서는 청량리역 일대 신축 아파트의 전셋값 하락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청량리역세권 3개 구역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입주 물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5월 입주 예정인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1152가구)’과 7월 입주인 ‘롯데캐슬 SKY-L65(1425가구)’의 규모만 2577가구다.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은 동부청과시장 구역을, 롯데캐슬 SKY-L65는 청량리4구역을 재개발한 단지다. 주거형 오피스텔까지 합하면 입주 물량은 더 많다. 롯데캐슬 SKY-L65에도 오피스텔 528실이 있고, 주거형 오피스텔인 171실 규모의 ‘힐스테이트청량리더퍼스트’는 오는 11월 입주 예정이다. 청량리역 일대에서 올해 예정된 입주 예정 물량만 약 3500가구에 달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 시장은 수요와 공급을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입주 물량이 늘어나면 전셋값은 바로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지금처럼 하락장에서는 전셋값 하락률이 매매가격 하락률보다 더 높아 전세가율이 계속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다만, 청량리 일대에 예고된 각종 호재로 전세 수요가 증가하면 전셋값도 점차 안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선, 청량리역에는 현재 있는 지하철 1호선,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중앙선, KTX강릉선 등 6개 노선 외에 GTX B, C노선, 면목선(청량리~신내동), 강북횡단선(청량리~목동) 등 4개 노선이 신설될 예정이다.

청량리역 주변 재개발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청량리6구역(1493가구)은 최근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해 재개발을 추진 중이고,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청량리7구역(761가구)은 오는 5월 착공 예정이다. 인근 청량리8구역(610가구)도 시공사 선정 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입주 물량이 많고, 입주 기간이 다가올수록 전셋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수요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진입할 기회다. 지금은 공급 과잉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전세 매물이 쌓였지만, 2년 후에는 어느 정도 가격이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박 위원은 “올해 입주를 시작한 단지들이 앞으로 2년 뒤 전세 계약을 할 때 시장은 아무도 모른다”면서 “그해 입주 물량과 금리 동향에 따라 역전세난이 일어날 수도 있고, 반대로 전셋값이 지금보다 오를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