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한·미 동맹은 두 개의 거대한 군사연습과 훈련을 실시했다. 프리덤 실드 연습과 워리어 실드 훈련이 그것이다. 매년 전반기에 실시되던 한·미 연합연습은 미군이 증원되어 북한의 침략을 방어하고 역습하는 최대 규모의 연합군사연습이다. 그간 팀스피릿, RSOI, 키리졸브 등 이름을 바꿔왔지만, 가장 중요한 훈련임에는 변함없었다.
45년간 지속되던 한·미 연합연습은 문재인 정권에서 남북 대화를 추진하면서 2018년 절반만 진행되다가 중단됐다. 당시 정부는 비핵화 협상을 위한 신뢰 구축 조치의 일환으로 포장했지만, 미·북 협상 실패로 비핵화의 거짓 평화가 깨진 후에도 한·미 연합연습은 재개되지 못했다. 이로써 북한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신들의 가장 큰 위협인 한·미 연합연습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출범으로 한·미 동맹이 글로벌 포괄 동맹으로 발전하면서 한·미 연합연습과 훈련은 프리덤 실드와 워리어 실드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는 실패했다.
만능의 보검을 다시 꺼내든 북한
그래서 북한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간 약해진 한·미 동맹, 미국과 대화를 빌미로 끌어냈던 중국 지원, 무엇보다도 스토커에 가깝게 북한에 구애하는 종북 정치세력 등 그간 호의적인 조건이 일시에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독재정권을 혐오하는 미국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정권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눈치만 보던 이전 정권의 정책을 모두 되돌려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북한은 이제 다시 핵이라는 ‘만능의 보검’을 꺼내 들어야만 했다.
사실 북한은 2017년 한 해 동안 3대에 걸친 핵 개발 역량을 모두 쏟아부으면서 위기를 최대치로 키웠다. 200kt(킬로톤)이 넘는 파괴력으로 전략핵 능력을 입증한 6차 핵실험(9월 3일)과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거리로 하는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11월 25일)는 위기를 최고조로 높이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위기를 최대한으로 고조시켰으니 평화와 협상에 대한 갈증은 더욱 높아지기 마련이다. 2018년에 확보했던 그러한 승리를 반복하려면 역시 최대의 위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북한이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전략적 기조로 자력갱생과 정면 돌파전을 선언한 이유이다.
그러나 2017년 같은 요행이 그리 쉽게 반복될 리 없다. 애초에 2017년의 놀라운 성과는 김정은 집권 후 5년간 핵 개발에 국가의 명운을 건 결과이자, 김일성 때부터 3대에 걸쳐 핵 개발에 투자해온 가업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미 보여줄 것을 소진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8차 당대회에서 몇 개의 신형 무기를 콕 짚어서 그 개발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김정은은 사업총화 보고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ICBM용 다탄두, 신형 핵잠수함, 전자무기, 자폭드론이나 무인정찰기, 군사정찰위성 등을 언급했다.
이런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이다. 5개년 계획에 따라 2021년부터 북한은 다양한 무기 체계를 시험해왔다. 2021년 9월부터는 순항 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이 시험발사를 시작했고, 2022년 봄부터는 정찰위성 발사라는 미명하에 화성-17의 시험발사를 반복했다. 그러나 국방 분야에서 북한이 가장 공들여온 것은 다름 아닌 전술핵이다.
출구는 전술핵뿐인 북한
현재 북한의 무기 체계 가운데 그나마 한⋅미 동맹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전술핵뿐이다. 전술핵은 원래 미국이 고안한 개념이다. 1950년대 유럽 전선에서 소련이 절대다수의 기갑전력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위협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핵포탄을 개발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즉 애초에 핵이란 서로 절멸될 위험을 느껴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절대적 무기였다.
그러나 전술핵은 절대적인 병력 열세를 상쇄하기 위해서 실제 전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핵이었다. 그리고 전술핵은 한반도에 배치되어 절대다수의 북한군에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주한 미군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술핵이 철수한 지 30여 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물론 수적으로 우세를 자랑하던 북한이지만, 세계적 수준으로 첨단화된 한국군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전략핵무기는 전쟁 자체를 막는 위협 수단은 될 수 있을지언정, 스텔스전투기나 이지스구축함, 네트워크 능력으로 연결된 육군 기계화 전력 등 첨단전력에 직접적인 대응은 어렵다. 그래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로 전술핵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통상 핵무기는 세 가지 핵심 구성 요소로 나눌 수 있다. 핵탄두, 운반 수단(미사일) 그리고 플랫폼이다. 북한은 최초에 핵 WMD(대량살상무기) 능력을 추구하면서 투 트랙 전략을 채택했다. 운반 수단과 플랫폼을 하나로 하여, 핵뿐만 아니라 재래식 공격 능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한편, 핵탄두는 또 다른 개발의 주축으로 추진되었다. 통상 운반 수단과 플랫폼 개발이 핵탄두 개발보다 빨랐다. 그래서 북한이 1980년대 중반부터 스커드-B와 C, 노동미사일 등을 개발해왔지만, 미사일에 장착할 만한 핵탄두가 공개된 것은 2016년 3월이 처음이다.
지금 북한이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전술핵도 역시 투 트랙 연구개발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당연히도 미사일과 플랫폼 개발이 더 빨랐다. 특히 북한은 2018년 2월 열병식에서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을 내세우면서 스커드를 대체할 주력 탄도미사일로 진작에 낙점했다. 그래서 KN-23 단거리미사일은 8륜 트럭, 궤도형 차량, 열차, 잠수함, 심지어는 호수 속의 수중 발사대 등 가용한 모든 플랫폼에서 발사됐다.
뒤늦게 등장한 전술핵탄두, 그 진위는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플랫폼 개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 군의 다연장로켓을 닮은 KN-24, 600㎜ 직경의 초대형 방사포인 KN-25가 개발되었다. 북한의 KN-23에 대한 믿음과 집착은 꽤 높은 편이라, KN-23의 크기를 줄이고 4연장 발사대로 만든 ‘신형전술유도무기’도 등장했다. 그리고 화살-1과 화살-2로 알려진 순항미사일 두 종까지도 공개했다. 그러나 핵심은 핵탄두다.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물질로 만들 수 있는 핵탄두는 최대 100여 개 수준이다. 과거에는 KN-23이나 KN-24 같은 나름 대형 미사일에만 탑재할 전술핵탄두를 만들 것으로 예상됐는데, 김정은은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600㎜ KN-25 방사포나 심지어 순항미사일에까지 탑재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가 필요했다.
북한은 3월 28일 노동신문 등 국가 공식 매체 보도를 통해 신형 전술핵탄두 ‘화산-31’을 공개했다. 직경 50cm 미만, 길이 90cm 정도로 추정되는 이 핵탄두는 크기로 보아 그간 훈련을 통해 지겹도록 쏘아댔던 미사일에 탑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공개한 것은 사실 핵탄두의 외피일 뿐이며, 내부의 폭탄 구조까지 다 완성됐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순항미사일 등에 탑재하려면 무게도 200㎏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 또한 알 수 없다. 결국 7차 핵실험으로 터뜨려서 그 능력을 확인시킬 가능성이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7차 핵실험의 가능성은 작다. 최악의 경제 사정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섣부른 핵실험은 중국의 지원 단절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게 핵실험을 해도 북한이 얻을 실리도 적다. 리스크에 비해 이익이 적으면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나 북한은 늘 상식적인 실익보다는 김씨 일가의 자존감을 선택해온 국가다. 그래서 7차 핵실험은 현존하는 위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