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경북 영주 하면 사람들은 으레 무섬마을과 부석사, 소수서원을 떠올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오지 마을인 무섬마을은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로 유명하고, 부석사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유명하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하지만 이제 영주 여행의 ‘패러다임’이 조금은 바뀔 때가 된 것 같다. 영주를 여행하는 새로운 방법은 바로 ‘맛’이다.
왼쪽부터 전통묵집의 순두부 정식. 부석태로 만든 진한 맛의 한결청국장. 중앙식육식당의 소갈빗살.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자랑하는 명동감자탕의 맑은 감자탕. 사진 최갑수
왼쪽부터 전통묵집의 순두부 정식. 부석태로 만든 진한 맛의 한결청국장. 중앙식육식당의 소갈빗살.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자랑하는 명동감자탕의 맑은 감자탕. 사진 최갑수

삼겹살보다 한우가 싼 고장

영주를 대표하는 맛은 한우다. 영주 사람은 굳이 수입산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삼겹살 가격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대략 400g에 7만원 선이다. 지금은 KTX이음이 운행하면서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한 곳이 됐으니, 기찻값을 빼더라도 당일치기로 한우를 먹고 오는 것이 오히려 남는 장사다.

영주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은 ‘곰탕과 닭계장’. 간판과는 달리 유명한 한우 맛집이다. 재미난 사실은 영주 사람은 등심이나 안심, 채끝, 부챗살 등을 잘 먹지 않는다는 것. 영주에서는 한우 하면 무조건 갈빗살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곳에서 맛보는 갈빗살과는 달리 유달리 고소하고 식감도 쫄깃하다. 

일단 접시에 담겨 나온 갈빗살의 모습이 다르다. 눈이라도 내린 듯 하얀 마블링으로 뒤덮인 갈빗살은 마치 살치살처럼 보인다. 굽기 시작하자마자 고기에서 기름이 자글자글 배어 나온다. 한 젓가락 입으로 가져가면 초콜릿처럼 진한 맛이 입속으로 녹아든다. ‘중앙식육식당’은 갈빗살 노포로 스타일이 약간 다르다. 고기는 숙성육보다는 생고기를 사용해 약간 질긴 편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주방과 계산대 뒤 냉장고에서 고기를 거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우에 이은 영주의 또 다른 자랑은 청국장찌개다. 영주에는 부석태라는 품종의 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콩 중에서 가장 알이 굵은데, 청국장과 간장, 고추장, 두부를 만들었을 때 구수한 맛이 훨씬 진하다. 식감도 부드럽다. 

풍기역 앞에 자리한 ‘한결청국장’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청국장집이다. 이 집의 별미는 ‘콩탕’이다. 말 그대로 콩으로 만든 탕이다. 콩을 삶아서 거칠게 간 후, 비지탕이나 찌개같이 만들어 낸다.

영주의 번성했던 시절을 
증언하는 근대역사문화거리. 사진 최갑수
영주의 번성했던 시절을 증언하는 근대역사문화거리. 사진 최갑수

영주 분식 어드벤처

분식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영주는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쫄면, 떡볶이, 만두가 영주에 있다.

쫄면 하면 인천 신포동을 떠올리지만, 영주에는 ‘중앙분식’과 ‘나드리’라는 쫄면계의 양대 거성이 있다. 중앙분식은 ‘오직’ 쫄면만 판다. 간장쫄면과 일반쫄면. 간장쫄면은 이름 그대로 매운 양념 대신 간장 양념을 넣어서 비벼 먹는다. 이 집은 주문과 동시에 면을 삶는다. 쫄깃한 면발이 일본 사누키 우동 뺨 때릴 수준이다. 쫄면 하면 학생들이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영주에서는 어른도 즐겨 먹는다. 간장쫄면이 등장한 이유도 이것 때문. 매운맛을 꺼리는 어른을 위해 개발한 메뉴다. 영주 사람은 ‘간쫄(간장쫄면)’을 시켜 반쯤 먹다가 탁자 위에 놓인 양념장을 뿌려 먹는다. 이 집은 단무지도 독특하다. 망고를 썰어 놓은 듯 굵고 투박하게 썰어 담아내 준다. 단무지도 직접 만든 것이다. 인근에 자리한 나드리는 돈가스, 튀김 등의 메뉴도 갖추고 있다. 중앙분식에 비해 다소 맵고 화끈한 편이다.

젊은이들이 영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은 떡볶이다. 영주를 대표하는 떡볶이는 ‘랜떡’과 ‘랜금떡’이다. 매장이 ‘랜드로바’ 매장 앞에 있어서 이렇게 부른다. 랜드로바가 ‘금강제화’로 바뀌면서 떡볶이집에 ‘금’ 자를 넣어달라고 부탁해 한 집은 ‘랜금떡’이 됐다고 한다. 랜금떡이 원조고, 옆에 있는 랜떡은 인기 유튜버 ‘쯔양’이 다녀가며 유명해졌다. 꾸덕꾸덕한 고추장소스가 전형적인 경상도식 떡볶이다.

‘혜정이네 만두’의 찐만두와 ‘동양순대’의 순대, ‘태극당’의 인절미 카스텔라도 맛봐야 한다. 태극당 가까운 ‘오백빵집’은 상호 그대로 모든 빵을 500원에 판다. ‘명동감자탕’의 감자탕도 맛보자. 우리가 흔히 먹는 붉은색 감자탕이 아니라 맑은 국물의 감자탕이다. 담백하고 개운한 맛이 자랑. 돼지국밥의 뼈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사진 최갑수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사진 최갑수

외나무다리 정겨운 오지 마을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면 영주 봄나들이에 나서보자. 봄 영주 여행에 어울리는 곳은 무섬마을이다. 영주 남동쪽 외진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낙동강의 가장 큰 지류인 내성천이 산과 들을 휘감아 돌며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지는 곳에 있다. 340여 년 전, 반남 박씨가 들어와 터를 잡으면서 만들어졌는데 이후 선성 김씨가 들어왔고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는 고색창연한 전통 한옥 30여 채가 남아있는데 대부분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이다. 

무섬마을에는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다리 폭은 약 30㎝에 불과하다. ‘ㅠ’ 모양으로, 약 60㎝ 높이의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통나무를 반으로 쪼갠 상판을 얹어 만들었다. 물이 얕은 곳을 따라 휘어져 있는데, 길이는 150m 정도 된다. 외지인이 건널라치면 꼭 한 번씩 빠지고 만다. 하지만 물의 깊이는 고작 허리 높이니 그다지 걱정할 건 없다.

지금은 다리가 하나뿐이지만, 옛날에는 외나무다리가 세 개 있었다. 상류의 다리는 장보러 나갈 때, 가운데 다리는 아이들이 학교 갈 때, 하류의 다리는 농사지으러 갈 때 소를 몰고 건넜다고 한다.

여행수첩

먹거리 풍기 읍내 정도너츠의 생강도넛이 별미다. 튀겨낸 찹쌀도넛을 진득하게 섞어 좋은 생강과 깨, 땅콩 가루 등에 버무려 내놓는다. 카페 하망주택은 1980년대 이층 양옥 주택을 개조한 카페다. 소수서원 가는 길에 순흥묵밥촌이 만들어져 있다. 진한 다시마 국물을 우려내고 옛날 방식 그대로 묵을 만들어낸다. 영주 시내에 자리한 전통묵집식당은 오전 6시 30분부터 문을 연다. 일찍 가면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가족도 볼 수 있다. 아이들 옆에는 책가방이, 아빠 옆에는 서류 가방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아빠는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다. 

근대역사문화거리 영주는 한때 철도 교통의 요충지였다. 중앙선과 영동선이 놓이자 사람들이 몰렸다. 당시에 들어섰던 이발관과 정미소, 교회가 지금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화려한 한때를 증거하고 있다. 영광중학교 주변에 영주역 관사 두 곳, 근대한옥, 이발관, 정미소, 교회가 각 한 곳이 남아있다. 1940년대 건립된 풍국정미소, 옆에 자리한 영광이발관은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958년 세워진 영주제일교회는 고딕 양식을 자랑한다. 아이들과 손잡고 산책 삼아 걸으며 구경해도 좋을 듯싶다.

해밀여행사 ‘KTX이음 영주 한우열차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1등급 영주 한우를 즐기면서 세계문화유산 부석사와 소수서원, 옛 영주 역사와 관사들이 있던 레트로한 풍경의 관사골 등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매주 화·목·토·일요일 서울 청량리역에서 오전 9시에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