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가 270만 명이 넘는 외국인 여행 유튜버 ‘리빙바비(LivingBobby)’가 자신이 맛본 스테이크 중 최고를 ‘한우(Hanwoo)’로 꼽은 사실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한우의 맛에 10점 만점에 10점을 매겼다. 다만 그는 “너무 비싸다”며 가격 부문에서 감점했다. 최종 점수는 20점 만점에 18점. 감점을 반영해도 1등은 ‘한우’의 몫이었다. 유명 셰프인 ‘고든 램지’나 셰프 겸 유튜버 ‘구가(Guga)’가 만든 스테이크보다 더 높은 점수를 서울 마장동에서 맛본 한우에게 줬다. “한국에 오면 한우를 꼭 먹어야 한다”는 게 그의 총평이었다.
세계적으로 품질이 좋은 소고기를 생산하는 나라로 아르헨티나와 일본, 폴란드, 미국, 호주 등이 주로 거론되지만, 최근 ‘한우’에 대한 국제시장의 평가도 높아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나 미국, 호주 등이 워낙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쇠고기를 생산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 면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육량과 육질 등 품질에서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게 국내 축산업계의 평가다.
이 같은 한우의 품질 고급화는 50년에 걸쳐 양질의 유전자를 갖춘 아비 소와 어미 소를 교배하며 우수한 씨수소를 확보해 온 보육종 개량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내에서 한우 품종 개량을 전담하는 기관은 농협경제지주 산하의 한우개량사업소다. 국내 축산 농가가 번식에 사용할 정액을 생산해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3월 14일 충남 서산 운산면에 있는 한우개량사사업소를 찾았다. 한우개량사업소는 서산의 유명 관광지인 해미읍성에서 북쪽으로 7㎞ 거리에 있다. 서산 운산면은 지방도로 옆으로 초원 언덕이 넓게 퍼져있다. 흡사 제주의 오름을 보는 듯하다. 사람의 발길도 드물다. 사업소 관계자는 “인적이 드물어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 예방에 유리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한우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소를 축산업계에선 성지로 여긴다. 혹시라도 전염병이 돌 경우, 국내 축산업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하다. 그만큼 방역 절차도 까다롭다. 지역에 들어오는 모든 차량은 소독 절차를 거쳐야 한다. 차에서 내린 사람도 한 명씩 소독실에서 제균 절차를 밟는다. 씨수소가 생활하는 사육 공간은 관리가 더 꼼꼼하다. 일반인이 찾기 힘든 언덕 꼭대기에 외부인 출입 통제 지역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사업소 관계자는 전했다. 한우개량사업소의 모태는 김종필 전 총리가 1969년 설립한 ‘삼화축산주식회사’다. 전두환 정부 때 축협중앙회가 부지를 인수했고, 1984년부터 후보종모우를 선발한 뒤, 1987년부터 보증종모우를 선발해 ‘보증정액’ 공급을 시작했다. 사업소의 연면적은 1004만㎡(약 304만 평)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의 3.4배 수준이다. 아직 이른 봄, 초원은 초록색보다 노란색에 가까웠다. 소는 보이지 않았다. “풀이 초록색을 띠기 시작하는 5월부터 방목 사육을 한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우개량사업소에선 씨수소와 씨암소, 검정우, 육성우, 송아지 등 3000여 마리를 사육 중이다. 이 중 씨수소는 보증씨수소 90마리, 후보씨수소 195마리 등 총 285마리가 있다.
씨수소는 3단계 체계로 관리한다. 가장 밑 단계는 ‘당대검정우’이다. 24개월 월령의 소 900마리를 선발해 체중과 체적(체격), 초음파 검사를 거쳐 우수한 소를 선발한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들이 ‘얼평(얼굴 평가)’이라고 부르는 외모 평가도 실시한다. 이 과정을 거쳐 후보씨수소 66마리를 선발한다. 선발되지 않은 834마리의 검정우는 안타깝지만, 거세한 후 농가에 팔린다.
66마리의 후보씨수소는 쉽게 말해 ‘국가대표 상비군’이다. 후보씨수소는 26개월 동안 자손 능력 평가를 받는다. 후보씨수소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송아지들의 평균 성장 속도 등을 평가해, 최종적으로 보증씨수소 30마리를 선발한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따로 없다.
보증씨수소로 선발되지 않은 후보씨수소들은 ‘공판장’으로 가게 된다. 엄격한 평가를 받아 선발된 소인 만큼 시장에서 높은 값을 쳐주겠다 생각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비거세우’로 자란 후보씨수소들은 축질 등급이 거세우만 못하기 때문이다. 통상 2~3등급의 등급 판정을 받는다고 한다. 거세우 1마리의 가격이 1000만원 선이라면, 후보씨수소는 500만~600만원 선에 팔린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보증씨수소가 된 한우들은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다. 충분한 일광욕과 하루 2시간의 운동이 일과다. 너무 많이 운동하면 체력 소모가 심할 수 있어, 무리하지 않는 게 철칙이다. 이렇게 관리를 받으며 통상 주당 2~3회 정액을 채취한다고 한다.
1회 채취 시 얻을 수 있는 정액의 양은 평균 5~7㏄. 소 정액 1㏄에는 11억 마리의 정자가 들어있다. 정액을 1회 채취할 때마다 농가에 보급하는 ‘정액 스트로우(str)’ 350여 개를 만들 수 있다. str는 교배할 때 쓰는 정액 키트다. 볼펜심 하나만 한 크기로, 빨대처럼 생겼다고 해서 ‘스트로우’라고 부른다.
한우개량사업소는 매년 220만 str의 보증정액을 농가에 공급한다. 농가 공급은 인터넷 추첨 방식을 거쳐 결정된다. 1str의 공급가는 1등급 1만원, 2등급 5000원, 3등급 3000원이다.
경매는 씨수소의 품번을 공개하고 진행한다. 모두가 훌륭한 개체지만 농가에서 특별히 선호하는 개체도 있다. 대표적인 게 ‘KPN(Korea Proven bull’s Number)-1416’이다. 인터넷 경매에서 KPN-1416의 정액이 당첨될 확률은 4%. 평균 경쟁률이 25 대 1에 달한다. 구하기 어려운 정액인 만큼 농가 간 암거래도 이뤄진다고 한다. KPN-1416의 정액 1str는 암거래에서 80만~100만원 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우개량사업소는 1987년 1호 보증씨수소 KPN-001을 생산한 이후 KPN-1533까지 총 1533마리의 보증씨수소를 선발했다.
엄격한 씨수소 선발 절차와 육종 개량을 통해 한우의 생산성과 품질은 빠르게 성장했다. 1974년 358㎏에 불과했던 거세우 출하 생체중(우시장 거래 당시 체중) 평균은 2021년 761㎏으로 403㎏이 증가했다. 체중이 두 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1등급 이상 출현율도 1993년 10.7%에서 2021년 74.9%로 64.2%포인트 증가했다. 우시장에 나오는 한우 4마리 중 3마리는 1등급 이상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 같은 육량·육질 개선으로 축산 농가의 소득은 연간 2000억원 늘었다.
최근 한우개량사업소에선 ‘동결수정란 생산 기술’과 ‘암소 개량 유전체 기술’ 등을 개발 중이다. 동결수정란은 살아있는 소의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한 후 체외수정란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우수한 암소의 난자를 이용해 단기간에 많은 수정란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암소 개량 사업은 씨수소처럼 암소도 좋은 유전 정보를 갖춘 개체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선별하는 작업이다.
정준 한우개량사업소 소장은 “한우의 유전 자원 보존 및 개량을 통해 양질의 소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농가 소득 증대도 기대한다”면서 “지속적인 연구와 신기술 보급을 통해 더 나은 한우를 보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